아침을 바꾸는 새벽배송… 유통-외식산업 판도까지 바꾸나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6-3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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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식품 새벽배송 업체인 마켓컬리의 배송 트럭이 새벽에 배송을 하는 모습. 마켓컬리 제공
워킹맘 조모 씨(38)는 이제 새벽배송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 육아휴직 때 친구 추천으로 처음 경험한 새벽배송 서비스는 매일 아침을 거르던 그에게 ‘선물’ 같은 존재였다. 처음엔 가끔 고등어나 불고기 등을 구매하는 정도였지만 이제 그는 국, 찌개 요리는 물론이고 쌀, 우유, 계란, 두부, 아이 간식까지 정기적으로 구매하는 우수 고객이 됐다. 조 씨는 “새벽배송을 이용하니 집에서 아침을 차려 먹는 횟수가 늘었다”며 “이제 대형마트나 동네 슈퍼마켓에 가서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올 필요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 4년 만에 80배 수준으로 커진 새벽배송

새벽배송은 전날 특정 시간까지 주문한 상품을 다음 날 아침에 배송해주는 서비스다. 3년 전만 하더라도 주로 소규모 업체들이 새벽에 집 앞으로 이유식이나 아침밥, 와이셔츠 등을 직접 갖다 주는 틈새시장이었다. 그러던 중 스타트업인 ‘마켓컬리’가 2015년 ‘샛별배송’을 선보이며 시장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출시 초기 ‘서울 강남지역 엄마들의 장보기 필수 앱’으로 입소문을 탄 마켓컬리는 서비스 시작 3년 만에 월 매출 100억 원을 달성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마켓컬리의 성공에 자극받은 국내 식품기업과 유통 대기업들은 최근 2년 사이 새벽배송 서비스를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2017년 GS리테일이 온라인몰을 통해 ‘GS프레시’를 시작했고, 한국야쿠르트도 지난해 7월 가정간편식 브랜드 ‘잇츠온’의 새벽 정기배송 서비스를 도입했다. 홈쇼핑업계에서는 지난해 8월 현대홈쇼핑이 처음 뛰어든 데 이어 올해 7, 8월 롯데홈쇼핑과 CJ ENM 오쇼핑부문도 새벽배송 서비스를 시작한다. 특히 올해 초 이커머스 강자로 불리는 쿠팡까지 ‘로켓프레시’를 통해 이 시장에 뛰어들며 새벽배송 시장의 판은 더 커지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 새벽배송을 시작한 롯데에 이어 신세계도 최근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를 확대하며 본격적으로 새벽배송 서비스를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스타트업은 물론이고 식품기업과 이커머스업체, 유통 대기업까지 뛰어들면서 2015년 100억 원대에 불과하던 새벽배송 시장 규모는 2018년 4000억 원으로 늘어났다. 올해는 8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서비스가 처음 시작된 이후 4년 만에 무려 80배 수준으로 시장이 커진 것이다.



○ 왜 새벽배송에 뛰어들까




그동안 신선식품의 새벽배송은 기존 유통업체들조차 쉽게 진출하기 힘든 영역이었다. 일단 새벽배송의 주요 품목인 식품은 재고 및 품질 관리가 까다로운 편이다. 새벽에 배송해야 하기 때문에 인건비가 높아 배송 원가도 비싸다. 새벽배송은 물류센터, 배송차량, 배송기사 등 기본적인 물류 시스템이 있어야만 가능해 지금까지 새벽배송이 이뤄지는 범위는 물류센터와 가까운 서울 등 수도권에 국한됐다.

하지만 1, 2인 가구 및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고 주 52시간 근로제가 정착되며 새벽배송에 대한 수요는 점점 커지고 있다. 집에서 편하게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가정간편식(HMR) 시장이 2016년부터 연평균 30%씩 성장하며 3조 원 규모로 커졌다. 어렵게 요리할 필요 없이 푸짐하게 집에서 한 끼를 차려 먹을 수 있는 대안이 많아진 것이다. 유통업체들은 비교적 온라인화가 덜 되고 객단가(1인당 구매액)가 높은 신선식품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아직까지 신선식품은 온라인 판매가 덜 이뤄진 분야일 뿐만 아니라 패션 및 생활용품과 달리 재구매율이 높아 성장 잠재력이 높다”며 “배송 및 결제 편의성을 높이고 온라인에서 차별화된 신선식품을 판매하기 위한 업체 간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스타트업에 시장의 주도권을 잃을 수 있다는 기존 유통업체의 위기감도 새로운 업체들이 새벽배송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 중 하나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급속도로 커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커질 시장인데 이미 물류 경쟁력은 물론이고 상품 경쟁력까지 갖춘 대형마트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무엇보다 신생 업체들에 기존 마트 고객을 뺏기기 시작했다는 위기감이 기존 유통업체들을 새벽배송 시장에 뛰어들게 했다”고 말했다.



○ 더 늦게 주문, 더 빨리 배송




새벽배송 시장이 점점 치열해지는 가운데 업체들은 경쟁적으로 차별화된 서비스를 내세우고 있다. ‘샛별배송’을 비롯해 ‘쿨쿨배송’ ‘아침배송’ ‘로켓프레시’ 등 새벽배송을 이르는 표현들도 다양해졌다.

새벽배송의 원조로 불리는 마켓컬리가 신선식품 위주로 서비스하고 있다면 이커머스업체인 쿠팡과 유통 대기업은 품목을 확대하고 주문 가능 시간을 최대한 늦추는 식으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쿠팡은 가입자 170만 명을 넘어선 ‘로켓프레시’를 통해 4100여 가지 신선식품을 서비스하는 것 외에 ‘로켓와우클럽’을 통해 오전 7시 전에 도착하는 새벽배송 서비스 품목을 약 200만 가지로 늘렸다. 여기에는 세탁 세제, 어린이 실내화, 가방, 골프공 등 각종 생필품과 공산품이 포함됐다. 27일 본격적으로 새벽배송을 시작한 신세계의 SSG닷컴은 신선식품, 유기농 식재료, 밀키트 등 각종 식품류는 물론이고 기저귀, 분유 등 육아용품과 반려동물 사료까지 총 1만여 가지를 새벽배송하고 있다.

이용 고객이 급증하면서 주문 시간을 늦추고 배송은 더 빨리 하는 등 업체들의 서비스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마켓컬리는 오후 11시까지 주문하면 다음 날 오전 7시 전까지 배송을 내세우고 있다. 이에 쿠팡은 밤 12시 전까지 주문하면 다음 날 오전 7시 전 배송으로 맞섰다. 그러자 새벽배송 후발주자인 신세계는 밤 12시 전까지 주문하면 다음 날 오전 6시경에 상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 아직까지 승자 없는 시장



여러 업체가 뛰어들면서 시장 규모는 커졌지만 새벽배송은 아직까지 ‘승자 없는 시장’으로 불린다. 이 시장의 선구자인 마켓컬리도 2015년 설립 이후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매출이 크게 늘었지만 영업손실도 덩달아 늘어난 탓이다. 2017년까지 누적 적자만 266억 원에 달한다. 쿠팡도 매출이 가파르게 증가하며 대형마트를 넘볼 수준이 됐지만 지난해 적자만 1조 원을 기록했다.

새벽배송의 수익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신선식품의 배송 시스템 자체가 고비용 구조이기 때문이다. 식재료를 당일 배송하려면 냉장·냉동 상품을 낮은 온도로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콜드체인 시스템’을 추가로 갖춰야 한다. 여기에 새벽에 상품 분류 및 배송 등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인건비가 낮보다 1.5배 이상 비싸다. 한 이커머스 관계자는 “고비용 비효율 수익구조에도 불구하고 신선식품 새벽배송은 성장 잠재력이 큰 시장이기 때문에 미래 전망을 보고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이 커지면서 이용하는 소비자가 늘자 불만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 업체에서는 오후만 되면 인기 상품이 자주 품절돼 이에 항의하는 고객이 많다. 택배기사들이 비밀번호를 알지 못해 공동현관문 앞에 물건을 놓고 가거나 오전 3시에 벨을 눌러 잠에서 깼다는 하소연도 있다. 낮보다 더 넓은 지역을 배송하는 택배기사들의 힘든 노동환경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좀 더 빠른 배송을 강조하느라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작용들이다.



○ 새벽배송이 바꾼 아침 식탁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새벽배송 시장은 우리의 일상과 관련 산업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각 가정에 냉장고를 없애겠다’며 반경 3km 내 30분 배송을 하고 있는 중국 신선식품 마트인 허마셴성(盒馬鮮生)처럼 말이다. 알리바바가 투자해 신유통의 하나로 키우고 있는 이곳은 2년 만에 중국 13개 도시에 90여 개 매장을 열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 마트가 입점한 지역은 상권이 발달하고 집값이 오를 정도다.

새벽배송도 대형마트에서 대량으로 장을 보고 냉장고에 쟁여 두는 소비 패턴을 점차 바꾸고 있다. 빠른 배송 속도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은 시장에 가서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오는 것을 번거롭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침밥을 챙겨 먹는 사람이 많아지고 새벽배송으로 차린 밥상 덕분에 주말 외식 빈도도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소비 패턴의 변화는 이미 오프라인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외식업체의 매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새벽배송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어떤 업체가 승기를 잡을지, 이것이 유통산업과 외식산업에 어떠한 파급 효과를 불러일으킬지 주목된다.

염희진 산업2부 기자 salthj@dogn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