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살 VS 초록매실, 신토불이 음료의 완성판

마시즘
마시즘2019-06-15 16:28:02
공유하기 닫기
“여기 90년대 말미를 장식한 음료가 있다”

X세대의 음료 시대를 줄여 표현한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코카콜라와 칠성사이다라는 양대산맥 사이에서 ‘우리만의 음료’를 찾는 모험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탄산음료에 보리를 섞기 시작했고(맥콜VS보리텐), 잊혔던 식혜음료를 판매했고(비락식혜VS잔치집식혜), IdH…아니 갈아만든 배가 나왔다(갈아만든 배VS갈아만든 모든 것).



이런 역사를 되짚어 올라가다 보니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결국 90년대 마지막 왕관을 차지한 녀석은 어디였을까? 코카콜라, 롯데칠성, 해태음료 … 쟁쟁한 브랜드가 있었지만 주인공은 의외의 곳에 있었다. 바로 웅진식품이다. 아니… 거기 학습지 회사, 아니 정수기 회사 아니었어??

인삼 회사에서 식품회사로
대추음료 사명 바꿨네
비락식혜의 인기는 음료계에 ‘가장 한국적인 소재를 찾아야 한다’는 질문을 던졌다. 비락식혜의 왕관을 전승한 것은 국산 배를 사용한 ’갈아만든 배’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대추음료 열풍이 있었다.

1995년 10월 웅진인삼에서 출시된 ‘가을대추’는 붉은 음료 시대를 만들었다. 첫 달에 50여 만개의 캔 제품이 팔렸고, 3개월 만에 2,000억대 시장을 만들게 되었다. 어른들에게는 추억이 있는 음료였고, 젊은 세대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주는 맛이었다. 해태음료 큰집대추, 롯데칠성 홍대추, 제일제당 진한대추 등 대추음료만 30여개가 생겨서 제사상보다 대추를 많이 볼 수 있었다.


(가을대추 아시는 분 계신가요)
하지만 그 와중에도 모두 어떤 생각을 했다. ‘대추… 다음 음료는 무엇이지?’ 가장 유력한 것은 ‘감’ 음료였다고 한다. 달콤한 홍시, 사각사각 단감, 가을 단감 (…) 등 감 스쿼드가 짜였다. 인삼 회사에서 식품회사로 사명까지 바꾼 ‘웅진식품’의 예측은 달랐다. 다음은 수박이다! 가을대추 했으니까 여름수박. 잘 되면 겨울 감귤, 봄 감자… 이런 거 나오는 거 아냐?

아니다. 아시다시피 1996년은 ‘갈아만든 배’, 배 주스의 시대가 되었다. 야심 차게 낸 여름수박이 깨진 웅진식품은 이대로 사라지는가.

쌀뜨물과 혁명 사이
아침햇살의 탄생
가을대추의 성공으로 뜨거워졌다가, 여름수박의 매출 부진으로 아이스버킷을 당한 웅진식품은 엎친데 덮친 격으로 IMF 구제금융까지 맞아 웅진의 ‘골칫덩이’가 되고 있었다. 구원투수가 돌아왔다. 가을대추를 기획했던 조운호(당시 실장)을 웅진식품으로 돌려보낸 것. 그리고 30대인 그를 사장의 자리에 앉힌 것이다. 주변에서는 드디어 이곳을 사장시키려고 하는구나 싶었다고.

그렇게 1999년 1월 ‘아침햇살’이 탄생한다. 쌀 추출액 43%, 현미 추출액 30%로 만든 아침햇살은 ‘곡물음료’라는 아예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개인적으로 맛으로 돋보이는 음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은은한 맛을 내는 음료라기보다는 ‘쌀을 먹는 우리 문화’에 집중하여 개발부터 홍보까지 진행한 것이 효과적이었다. 아침밥을 못 먹는 바쁜 가정에 내린 햇살이랄까(물론 내 친구들은 쌀뜨물 마신다고 놀렸다).

(여러 쌀음료가 있지만, 역시 아침햇살이 상징적이다)
아침햇살은 역대급 기록을 경신한다. 출시 7개월 만에 5,500만 병을 팔았고, 9개월 반 만에 1억 병을 팔았다(음료업계 최단 기록이었다). 여러 미투제품(유사제품)이 나왔지만, 오랫동안 공들여 특허까지 낸 기술은 쉽게 유출되지 않았다. 아침햇살이 드디어 90년대 음료의 마지막 왕관을 받는 순간이었다.


음료계의 연타석 홈런
깨물어 주고 싶은 그것, 초록매실
2000년대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90년대 음료 춘추전국시대를 지나 어떤 음료가 왕좌에 올랐을까. 바로 1999년 11월에 출시된 ‘초록매실’이었다. 널 깨물어주고 싶어. 으악 저리 가.

보통 중소 음료업체의 상품은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 히트한 작품 하나로 꾸준히 사랑받는)’ 스타일을 고수한다. 그런데 웅진식품에서 아침햇살 후속작으로 초록매실을 성공시켰다. 아침햇살이 가진 최단 기록 1억병 판매 기록도 초록매실이 깼다. 바로 여기에 허준, 그리고 조매실 아니 조성모 씨가 있었다.

최대 시청률 63.7%를 자랑한 MBC 드라마 <허준>에서 매실즙을 통해 치료하는 역병을 치료하는 장면이 나왔다. 허준 선생님이 말하면 그것이 답인 시기였다. 허준이 매실의 효능에 대해 줄줄 읊자 전 국민들이 매실을 사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매실엑기스 하나씩은 있어서 잘못 마신 이들이 방바닥을 뒹굴던 시기였다(그게 접니다).

(한국음료광고는 조성모 전과 조성모 후로 나뉜다(아니다))
매실음료의 선구자였던 ‘초록매실’도 허준의 효과를 봤다. 허준의 매실 에피소드는 5월 초에 방영이 되었는데, 4월 55억이었던 매출액이 6월에는 100억으로 올랐다. 조성모 씨가 광고한 ‘초록매실’ 역시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여성들에게는 선풍적인 인기를, 남성들에게는 조매실이라는 별명을 얻게 한 광고였다. 2006년 석류청년… 이준기 씨가 등장하기 전까지 가장 시청자들에게 기억 남은 음료 광고가 아닐까?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웅진식품의 음료는 더욱 빛을 볼 수 있을까?
가을대추의 시작, 아침햇살과 초록매실의 성공으로 웅진식품의 음료는 독특한 색깔을 갖게 되었다. 보다 한국적이거나, 자연적인 음료를 내는 곳. 덕분에 ‘자연은’ 시리즈가 여전히 인기가 있고, ‘하늘보리’ 등의 히트상품들이 이어 나오며 영역을 굳혀가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났다. 웅진식품은 웅진의 무리한 사업 확장의 여파로 한앤컴퍼니에 매각이 되었다. 또 대중들의 음료 선호가 ‘신토불이’에서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소재’로 변해갔다. 하지만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침햇살과 초록매실이 나온지도 벌써 20년이 더 되어가는 2019년. 다시 한번 옛 음료들이 주목을 받는다고 한다. 단종되었던 가을 대추도 다시 세상에 나온다.

과연 웅진식품의 음료는 다시 한번 빛을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