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안밥우유, 우유에 타 먹던 그 과자가 음료로 나왔다?

sodamasism2019-06-17 08: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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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파가 가득한 동창회 모임 한 가운데에 앉는다. 음료를 마시지도, 글을 쓰지도 않는다. 그에게 허락된 행동은 오직 하나. 술게임 벌칙을 달게 받는 것 뿐이다. 멍석만 안 말았다 뿐이지. 등짝을 내려치는 손길에는 자비가 없다. 손맛이 가득한 망나니… 아니 친구들은 이렇게 외친다.

“인디안~밥! 오! 예!”

너희들이 인디안 밥을 알아?
언제적 인디안밥인가. 옛친구끼리 만나면. 즐거웠던 과거로 돌아가는 법인가보다. 그때도 나는 벌칙으로 맞은 기억밖에 없어서 더 과거의 따뜻한 기억을 꺼내놓곤 한다. 인생의 마지막 황금기. 인기와 부를 모두 가지고 있었던 그 때. 6살 유치원생 때를 말이다.

내가 유치원에서 가장 좋아하던 시절은 매주 토요일이었다(그때는 주5일제가 없었다). 평일에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우유를 토요일에 재고털이를 했다. 이렇게 넘치는 우유를 짬처리(?)하는 것이 나를 포함한 친구들의 일과였는데. 나는 토요일에 ‘인디안밥’ 과자를 사서 유치원에 갔다. 말아먹으면 정말 맛있거든.

당시 우유에 말아먹는 과자로는 죠리퐁과 인디안밥이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었다. 사또밥을 말아먹는 이도 있었지만 뭐 취향은 존중할 뿐이고… 콘푸로스트 같은 것은 알지도 못하던 시기였다. 나는 인디안밥 파였고 우유에 인디안밥을 부어 먹었다. 모두가 아시겠지만. 과자 자체로 즐긴 것은 아니다. 인디안밥을 다 먹고 난 다음에 남은 우유의 맛. 달콤하고 고소한 옥수수우유의 맛때문에 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세상의 맛을 알아가며 인디안밥과는 멀어졌다. 첵스초코와 코코볼을 먹어본 뒤, 또 콘푸로스트의 달달함을 느낀 뒤에 인디안밥은 밋밋하고 기름기 있는 과자일 뿐이었다. 그렇게 내 속에 인디안밥은 인디언처럼 사라지는듯 했다. 모자란 술을 더 사러간 편의점에서 인디안밥 우유를 보기 전까지는.

인디안밥 우유, 인디안이 드디어 음료에 왔구나


죠리퐁 라떼도 봤고, 바나나킥 우유도 봤지만 ‘인디안밥 우유’는 환호 그 자체다. 그 사이에 우리의 인디안은 회춘한 것도 모자라 굉장히 귀여운 디자인으로 변했다. 지난 죠리퐁 라떼가 모두가 기대한 죠리퐁우유 맛이 아닌 카푸치노 커피였다면, 이 녀석은 순수히 인디안밥을 타고 남은 우유를 지향하고 있었다. 그래! 이거지!

인디안밥 우유의 입구를 열었다. 이 누렇고 고소한 향기는 인디언의 주식이었다는 옥수수의 향이 분명하다. 사실 인디안밥 과자에는 기름기가 있어서 우유 위에 미끌미끌 기름기가 떴는데. 이 녀석에게 그런 것은 없었다. 맛은 옥수수 밀크를 잘 구현해놓았다. 고소한 맛이지만 엄청 달지는 않은 맛이 났다.

아쉬운 것은 역시 토핑. 맛도 맛이지만 씹는 맛이 있었던 인디안밥의 기본조합이 살짝 그리워진다. 과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인디안밥 한 웅큼 정도만 넣어 먹을 수 있게 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들기도 하다. 맥주에 달린 땅콩안주처럼 인디안밥도 조금만 넣어주면 참 좋을텐데.

추억은 음료를 타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보다 음료가 더 반갑다. 토요일을 기다리던 6살의 들뜬 마음이랄까? 검색을 하며 인디안밥이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안부를 묻는다. 로고의 변천사도 살펴보고, 인디안밥이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국립 인디언 박물관에 전시되었었다는 소식까지 듣게 되었다. 나도 아직 못이룬 세계화의 꿈을 인디안밥이 이뤄내고 말았구나. 장하다.

추억은 음료를 타고. 인디안밥은 우리를 찾아 과자칸을 건너 음료에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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