톈안먼 학살 ‘탱크맨’ 동상 美에 세워져…탱크맨은 어떻게 됐을까

phoebe@donga.com2019-06-06 1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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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원 의원 낸시 펠로시(오른쪽)와 중국 반체제 인사 양지안리(왼쪽)는 6월 4일 워싱턴 DC의 미 국회 의사당 서 잔디밭에서 중국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 학살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집회에서 탱크 맨 동상을 공개했다. 사진출처 | (GettyImages)/이매진스
중국 톈안먼(天安門) 사태의 상징인 ‘탱크맨(Tankman)’ 동상이 미국에 세워졌다.

공산주의 희생자들을 기념하기 위한 재단은 6월 4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열린 집회에서 중국 민주화의 상징인 탱크맨 동상을 공개하고 톈안먼 광장 대학살 30주년을 기념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미 하원은 톈안먼 민주화 운동 탄압에 대한 투명하고 독립적인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중국 인권 문제에 목소리를 내온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이날 톈안먼 민주화 운동 탄압 피해자들을 위해 싸워온 ‘어머니들’을 언급하며 “그분들 자녀의 영웅적인 행동은 미국 의회 공식 역사에 계속 쓰이게 될 것”이라며 “중국이 아직도 역사를 부정하려 하기에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미국에 거주하는 중국 민주화운동가 양지안리 씨도 동상 제막식에 함께 했다.

탱크맨은 1989년 6월 당시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나타난 탱크를 맨몸으로 막아선 시민을 말한다. 당시 탱크와 장갑차는 오랜 시위로 지쳐 잠든 대학생들을 그대로 짓밟아 죽게 했다. 중국 정부가 1991년 밝힌 톈안먼 시위 사망자 수는 241명이지만, 지난해 비밀 해제된 영국의 외교기밀문서에는 사망자가 1만 명이 넘는다고 나와 있다.

중국 텐안먼 사태 당시 맨몸으로 탱크를 저지하고 있는 베이징 시민. 출처=유튜브 캡처
톈안먼 학살 당시 탱크맨을 촬영해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AP통신 카메라 기자 제프 위디너(Jeff Widener) 씨는 4일 공개된 AP통신 기사에서 1989년 6월 5일 새벽 탱크가 접근한다는 소리로 듣고 발코니로 달려갔다고 전했다.

그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한 남자가 쇼핑백을 들고 걸어 나왔다. 그때는 ‘저 남자가 내 사진을 망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정말이지 제대로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그냥 탱크맨을 지켜보고 기다렸다. 중국 군인들은 그 사람을 쏘지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남자는 탱크를 막기 위해 적어도 두 번 움직였고, 탱크 안에 있던 군인과 대화하기 위해 포탑에 올라갔다고 한다. 결국 그는 푸른 옷을 입은 남자 두 명에게 붙들려 현장에서 쫓겨났는데, 그 후로도 그 사람의 신원은 전혀 밝혀진 게 없다. 여전히 그는 탱크맨으로만 알려져 있다.

당시 영상 카메라맨을 포함해 적어도 5명 이상의 사진작가가 이 광경을 촬영했지만 위그너 씨의 버전이 가장 유명했다. 이 사진은 타임지가 선정한 역대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 100장에 들어갔다.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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