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덕의 꿈, 맥주 이색 직업 5

sodamasism2019-06-08 1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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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없고요 맥주나 마시고 싶어”

오랜만에 본 친척동생의 포부에 나는 귀를 의심한다. 분명 어릴 때는 곰돌이 젤리같이 귀여운 녀석이었다. 이렇게 꿈도 희망도 없는 취준생이 되었다니. 그제야 나는 이 녀석이 우리 핏줄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왜냐하면 나도 그랬거든, 아마 우리 아빠도, 할아버지도 그랬을 걸?

그렇다. 나는 지난 취준생 기간 동안 어떻게 하면 ‘맥주를 마시고 돈을 벌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해 왔다. 고민에 깊이 빠진 나머지 학업도 토익도 저승세계에 간 것이 문제지만. 이 녀석은 다르다. 너라면 가문의 숙원을 이룰 수 있어!

음료계의 잡플래닛 마시즘. 오늘은 맥덕들의 꿈, 맥주에 관련된 이색직업을 소개한다.

이 맥주는 말이죠…
맥주 역사학자
(사진출처 : 스미소니언 박물관)
2016년, 미국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에는 이색 채용 공고가 있었다. 바로 ‘맥주 역사학자’를 모집한다는 것이다. 업무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미국 전역을 돌며 수제 맥주를 마시고 전문가와 인터뷰를 할 것, 그리고 논문과 보도자료를 작성할 것이었다. 이 직업 연봉은 6만 4650달러로 3년 계약이었다. 3년 동안 맥주를 마시면서 연봉 7,000만원 정도를 벌 수 있다고?!

왜 이런 꿀같이 달콤한 채용을 한 것일까? 맥주 역사학자는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인의 맥주 문화를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특히 지난 몇 년간 크게 성장한 미국 수제 맥주 열풍의 원인을 정확하게 규정할 수 없어. 역사적, 경제적, 사회적인 분석이 필요했다고.

애주가들의 침샘을 자극하는 공고다. 하지만 맥주 ‘역사학자’이기 때문에 학력이 문제가 된다. 맥주는 기본이고, 미국사와 미국 경제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때문에 석박사 이상만 지원할 수 있다. 아니 맥주를 마시는데 석박사를 언제 따!

세계를 여행하며 맥주를 마신다
드링크 잇 인턴
(사진출처 : 월드 오브 비어)
학력의 문턱에서 멈춘 마시즘. 이번에는 맥주는 많이 마시는데 학력제한이 없는 곳이다. 바로 미국 플로리다의 ’월드 오브 비어(World of Beer)’에서 개최하는 ‘드링크 잇 인턴(Drink it intern)’. 맥주를 좋아하는 취준생이라면 이쪽이 최고다.

드링크 잇 인턴은 전 세계의 맥주 양조장을 방문하고 시음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내용을 영상으로 만드는 일을 한다. 대학생들이 많이 하는 대외활동의 맥주 버전이랄까? 드링크 잇 인턴에서 맥주만 마셔도 행복할 것 같은데 숙박비를 포함한 모든 경비 지원. 그리고 연봉 1만 2,000달러를 받는다고 한다.

없던 열정도 불러일으킬 남다른 조건이다. 문제는 경쟁도 남다르다는 것. 월드 오브 비어는 이력서가 아닌 1분짜리 영상으로 참가자 지원을 받고 있다. 학력과 이력서의 벽이 없어지자 온갖 사람들의 지원이 넘쳐났다. 본격 취업보다 더욱 빡센(?) 인턴제도랄까(안타깝게 2017년까지 하고 종료했다).

신의 물방울은 와인만이 아니야
맥주 소믈리에
(맥덕들의 승급전, 하이랭커만 달 수 있다는 마스터 시서론)
계약직과 인턴을 넘어 정석적인 직업으로 가보자. 맥주 마시는 일의 최고봉 그것은 바로 맥주 소믈리에가 아닐까? 일반적으로 꼽을 수 있는 맥주 소믈리에는 3종류다. 되멘스 아카데미의 ‘비어 소믈리에(beer sommelier)’, 세계적인 맥주 전문가 공인 인증 프로그램 ‘시서론(Cicerone)’, 마지막으로 맥주 대회 심사관이 될 수 있는 BJCP(Beer Judge Certification Program)이다.

비어 소믈리에는 독일의 맥주 전문 교육기관 ‘되멘스 아카데미’에서 발급하는 것이다. 맥주 생산부터 테이스팅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쌓아야 받을 수 있다.

시서론의 경우는 ‘관광 안내원’이라는 의미처럼 맥주 감별능력이 중요하게 평가된다. 시서론은 4단계로 나뉘어 있는데 최고 단계인 ‘마스터 시서론’은 전 세계에 1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마지막으로는 맥주심판 BJCP다. 이곳에서 자격증을 따면 각종 맥주 대회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 시서론이나 비어소믈리에의 경우는 한국에서도 시험을 볼 수 있기도. 각각의 내용이 다르지만 맥주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렇게 마시면 맥주가 피곤할 것 같다.

답답하면 너희들이 만들던가…
브루 마스터
(마시즘의 꿈은 저렇게 맥주 로고 티를 입고 맥주를 만드는 것, 사진출처 : NOLA Brewing Co)
맥주를 마시는 직업을 갖고 싶다면, 그냥 맥주를 만드는 사람이 되면 된다. 미국에는 수제 맥주가 인기를 얻으면서 맥주를 직접 양조하고 판매하는 ‘브루마스터(Brewmaster)’가 늘어났다. 이들은 직접 맥주를 만들고 만든 맥주를 가게(Brewpub)에서 판매를 한다. 내 자식 같은 맥주이기에 손님들에게 설명도 확실하다. 맥주의 시작부터 판매까지 전 과정을 도맡아 하는 그야말로 마스터다.

미국에서는 뜨는 이색직업이다. 국내에도 약 300여 명의 브루마스터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하지만 맛있는 맥주를 만들고 서비스하는 일은 엄청난 노동을 필요로 한다. 일단 맥주통이나 재료들도 무겁고, 청소가 생명이라 항상 청결을 유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맥주를 만들기도 힘들지만, 가성비 맥주에 익숙한 사람들의 지갑을 열기도 힘들다. 이 많은 고난을 견뎌야 브루 마스터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는지도.

거품과 생맥주의 마에스트로
탭스터
(맥주 따르기의 장인, 사진출처 : 필스너 우르켈)
맥주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따르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잘 만든 생맥주의 경우는 따르는 방법에 따라서 맛의 깊이가 다르다. 마시즘이 일본에 갔을 때도 ‘생맥주를 잘 따르는 장인’이 출장 맥주 서비스 행사를 하고 있었다.

‘필스너우르켈’ 같은 경우는 전문적으로 생맥주를 따르는 직업을 따로 ‘탭스터’라고 부른다(보통은 비어마스터, 비어스페셜리스트 등으로 부르는 듯하다). 탭스터는 세계적으로 66명만 있는 전문가 집단으로 생맥주를 서비스하는 직원들을 교육한다.

따르는 방법이라면 둘째 가면 서러워할 ‘기네스’ 역시 이런 전문가가 존재한다. 아일랜드 본사에서 세계 각지의 기네스 매장에 방문하여 맥주를 따르는 방법(119.5초를 기다리는지…) 맥주에 대한 청결, 온도 등을 꼼꼼하게 체크를 한다고 한다. 작은 가게부터 세계적인 브랜드까지 작은 정성이 주는 소중함을 잘 아는 것 같다.

우리의 직업이
맥주가 된다면
“맥주를 마시면 돈을 준다니!”로 시작했던 우리의 직업탐방은 “차라리 돈을 내고 맥주를 마실래”로 끝이 난다. 되는 것도 어렵지만 맥주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험난한 과정을 감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노력 끝에 한 잔의 맥주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맥주만은 즐겁게 마시고 싶은’ 친척동생은 말한다. 그냥 마시즘 하면 안 돼?

어 안 돼. 이런 꿀벌은 나 혼자만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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