톈안먼 시위 30주년… 기억하는 홍콩, 지우는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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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2019-05-30 10:2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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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홍콩에서 열린 톈안먼 시위 30주년 대행진에서 참가자들이 “무력진압의 진상을 규명하라”고 요구하고있다. 홍콩=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25일 오전 11시 반경(현지 시간) 홍콩 몽콕의 한 재래시장 인근 빌딩. 그는 좁디좁은 1층에서 건물의 10층이 톈안먼(天安門) 시위 기념관임을 확인한 뒤 다시 인도로 나왔다. 기념관은 낮 12시부터 문을 열기에 시간이 좀 남았다. 한국 기자라고 인사하자 홍콩 출신 윌슨 찬 씨(60)가 놀라는 모습이다. 자신은 캐나다의 양로원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친척들을 만나러 2주간 휴가를 냈어요. 온 김에 잠시 보러 온 거죠.” 기자의 정체를 믿지 못하겠는지, 처음엔 홍콩에 돌아온 이유로 친척을 내세웠다.》

찬 씨와 함께 근처 허름한 찻집으로 향했다. 홍콩 밀크티의 진한 향기 너머로 찬 씨는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1989년 톈안먼 시위 당시 그는 서른 살이었다. 그해 6월 4일 톈안먼 광장에 모인 학생들이 무력 진압에 피를 흘리는 모습을 방송으로 목격했다. “이렇게 잔인하면 안 된다고…. 몹시 격동해서 베이징의 학생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길로 홍콩 거리에 나와 톈안먼 학생들을 지지하는 시위에 참가했다.



“사실 그때부터 계속 잊지 못했어요. 슬프고 고통스러운 이 사건이 매년 생각난다고 아들에게 말했죠. 그래서 30주년인 올해엔 돌아와서 보기로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짊어진 “역사의 책임”이라며 다음 달 4일 홍콩에서 열리는 촛불집회까지 톈안먼 시위 30주년 행사들에 참여할 계획이다.



○ 좁은 기념관에 몰려든 전 세계 시민들




기념관은 2012년 홍콩 침사추이에서 처음 개관했다가 건물주가 규정 위반 등을 이유로 소송을 걸면서 2016년 문을 닫았다. 지난달 말 이곳으로 옮겨 다시 열었다. 톈안먼 시위 과정 등 역사 소개와 함께 당시 무력 진압으로 숨진 학생들의 유품, 사망통지서 등이 전시돼 있었다. 톈안먼 광장에 당시 걸렸던 플래카드 “인민은 우리를 지지한다”가 눈에 띄었다.

기념관은 83m² 규모로 작은 편이다. 건물 외부엔 기념관을 알리는 간판도 없다. 거기에 10층이라니…. 좁은 1층에서 작고 낡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관람객들이 오기는 올까. 문을 연 직후엔 고작 서너 명에 불과했다. 두세 시간 지나자 학생 단체관람을 포함해 사람들이 몰려들어 순식간에 꽉 찬 느낌이 들었다. 기념관 관계자는 한 달간 약 2500명이 찾았다고 말했다. 관람객의 10∼20%는 중국 본토에서 왔다고 했다. 2012년 기념관을 처음 열었을 때 2개월 만에 2만 명이 온 것에 비하면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다.

20대 남성에게 말을 걸었다. 상하이(上海)에서 왔다는 그는 인터뷰 요청을 끝내 거절했다. 중국에서 온 안(安)모 씨(29·여)가 어렵게 인터뷰에 응했다. 출신 지역은 끝내 밝히지 않았다. 그는 “교과서에도 안 나오니까 궁금해서 왔어요. 중국에선 언론 제한 때문에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조차 잘 모르니까요.” 그는 “톈안먼 시위를 겪은 세대에게는 민주(民主)가 무엇인지 마음에 새긴 계기가 됐지만 지금 (저와 같은) 세대는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는 (톈안먼 시위가) 완벽히 실패했다고 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일본 등에서 온 관람객들도 눈에 띄었다. 미국 뉴욕에서 온 여성(30)을 만났다. 성을 밝히지 않은 채 케이트라고 이름을 소개한 그는 “중국 정부가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밝히지 않으려는 건 세계가 무시할 수 없는 문제다. 세계는 중국 정부가 정의를 세우고 희생자 가족들을 위해 진실을 밝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조국을 사랑해 기념집회 참여했다”



관람객들은 실명 공개 인터뷰를 꺼렸다. 얼굴이 카메라에 노출되는 것 자체에 극도로 예민했다. 기념관 관계자들은 얼굴을 정면에서 찍지 말라고 수차례 신신당부했다. 중국 본토인뿐 아니라 홍콩인들마저 대부분은 인터뷰를 사양했다.

그들은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기념관 관계자는 “중국 정부의 통제 강화로 홍콩에서도 표현과 언론의 자유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그 배경을 설명한다.


홍콩 야당과 시민단체가 주최한 26일 30주년 기념집회 및 대행진에는 2200여 명(주최 측 추산)이 모였다. 지난해 1100명의 두 배였다. 톈안먼 시위 30주년의 역사적 의미를 기리려는 홍콩 시민들이 용기를 낸 것은 아닐까.

대행진 현장에서 찬 씨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핑판류스(平反六事)’라는 팻말을 들었다. ‘6·4를 바로잡아라’라는 이 말은 6월 4일 일어난 무력 진압의 진상을 규명하라는 뜻이다. 남편, 아들과 함께 참여한 카르멘 싯 씨(54)는 “중국인으로서 나는 내 조국을 사랑한다. 그래서 나는 내 조국이 톈안먼 시위에서 나타났던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조국이 더 나아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싯 씨의 말을 들으며 기념관에서 한 관람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중국 정부가 톈안먼 시위 거론 자체를 막는 것에 대해 “정부의 잘못을 말하고 비판하는 것 역시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것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그 어느 때보다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중국 시진핑(習近平) 정부가 곱씹어볼 말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 완벽한 통제에 톈안먼 사건 모르는 젊은이들

톈안먼 시위 때 중국군 전차를 막아선 중국 청년의 모습. 동아일보DB
인공지능(AI)과 음성 인식 기능을 총동원한 로봇 검열로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까지 톈안먼 시위 관련 내용을 삭제하는 완전한 통제 때문에 중국 본토 젊은이들은 톈안먼 시위를 잘 모른다. 베이징(北京)에서 만난 20, 30대 젊은이들은 톈안먼 시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모른다는 반응을 보였다.

중국 사회과학원 출신의 역사학자 장리판(章立凡) 씨가 28일 기자의 인터뷰에 응했다. “교과서에 거의 나오지 않고 미디어가 통제되다 보니 톈안먼 시위 이후에 출생했거나 당시 어렸던 지금의 젊은이들은 역사의 진실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톈안먼 시위를 겪은 중국 국민은 감히 톈안먼 시위에 대해 말할 용기가 없고, 겪지 않은 이들은 아예 모르는 것이죠.”

그는 “톈안먼 시위는 공산당을 전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판을 통해 부족한 점을 개혁하려는 것이었다. 당시 학생들은 공산당(지도부)에 하야를 요구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중국 당국은 톈안먼 시위와 무력 진압의 진실을 계속 숨기면서 아예 모른 체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는 역사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역사로부터 교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홍콩에서 벌어지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홍콩 시민지원 애국민주운동 연합회’(지련회)의 리처드 초이 부회장은 인터뷰에서 “중국 정부의 통제가 강화되면서 홍콩도 톈안먼 시위를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홍콩의 젊은 세대 역시 톈안먼 시위를 잘 알지 못하고 관심도 사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제 홍콩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톈안먼 시위를 잘 모른다”며 톈안먼 시위 기념에 대해 “기억과 망각의 투쟁”이라고 말했다. 26일 열린 30주년 기념 대행진의 대표 슬로건은 “인민은 잊지 않을 것”이었다. 이런 구호가 나온 건 역설적으로 톈안먼 시위의 역사적 의미가 중국인에게서 잊혀 가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 “역사 대면하지 않은 채 미래로 못 가”



취재에 응한 이들이 한결같이 말한 것은 “중국 당국이 톈안먼 시위 자체를 전혀 거론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초이 부회장은 “중국 당국은 당시 무력 진압이 옳았다고도 얘기하지 않는다. 거론하는 것 자체가 지금 (권력 안정에) 문제를 일으킬 것으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역사의 잘못을 받아들일 책임이 있고 그래야 용감하고 정확하게 앞으로 계속 걸어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뜻밖에도 일본 얘기를 꺼냈다. “일본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미래로 갈 수 없다고 중국 정부가 계속 비판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중국 정부가 톈안먼 무력 진압이라는 역사의 진실을 조금도 반성하거나 대면하지 않으려 하면 어떻게 미래로 향하겠습니까.”

한국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거쳐 한 걸음 한 걸음 새로운 역사를 걸어 왔다. 좌우로 나뉘어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당시 역사를 현재로 꺼내 성찰하고 토론하는 것만으로도 한국 사회는 전진하고 있다. 중국 지도부도 톈안먼 시위의 역사를 피하거나 두려워하기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 홍콩에서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