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그만” 잔소리보다 여가활동 함께하는게 효과적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6-02 14:20:02
공유하기 닫기
A 씨(21)는 고교 2학년 시절 심한 게임 이용장애(게임중독)에 시달렸다. 1인칭 슈팅게임에 푹 빠져 식사를 거르기 일쑤였다. PC방에 가려고 수업을 빼먹는 일도 있었다. 자려고 누워도 게임 장면만 생각났다. 누적 가입자가 100만 명이 넘는 게임에서 전국 랭킹 100위 안에 들 정도로 몰두했지만 게임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게임 시간이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결국 A 씨는 무단결석으로 고교 졸업에 필요한 수업일수를 채우지 못할 수준에 이르자 2017년 선생님의 설득으로 국립중앙청소년디딤센터의 게임중독 치료 과정에 입교했다. 4개월간 PC는 물론이고 스마트폰을 전혀 쓰지 않았다. 처음에는 견디기 어려웠지만 진로 교육을 받으며 게임이 아닌 자신의 미래로 눈을 돌리게 됐다. A 씨는 현재 한 대학 청소년지도학과에 진학해 청소년 상담사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5일(현지 시간)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한 ‘제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면서 어떻게 하면 게임중독을 치료할 수 있는지에 관심이 쏠린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청소년 상담가 등 전문가의 조언을 통해 게임중독이 우려되는 자녀를 도울 방법을 정리했다.

① 장기전을 각오하라




게임을 하면 뇌에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돼 쾌감을 느낀다. 같은 자극을 얻으려면 전보다 더 오래, 더 자주 게임을 해야 한다. 이 과정이 반복돼 게임에 점차 몰입하면 게임중독에 빠질 수 있다. WHO는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하는 상태가 12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를 게임중독으로 본다는 기준을 내놓았다.

명심할 점은 게임을 통해 쾌감을 얻는 뇌 속 ‘보상 회로’가 수개월에 걸쳐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이 회로를 끊고 뇌를 게임중독 이전의 상태로 정상화하는 데에는 통상 12개월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다. 국립중앙의료원 이소희 정신건강의학과장은 “부모가 인내를 갖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게임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처음부터 장기전을 각오해야 한다”고 말했다.



② 게임 대신 즐길 수 있는 활동을 함께 고민하라




일시적으로 PC나 스마트폰을 완전히 차단하는 이른바 ‘디지털 디톡스(해독)’는 극약처방이지만 게임 과몰입에서 벗어나는 데 일정 부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디딤센터(031-333-1900)나 국립청소년인터넷드림마을(063-324-2293)에선 청소년을 대상으로 짧게는 열흘, 길게는 4개월가량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는 숙식형 치료 과정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미 게임에 심각하게 중독돼 금단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라면 잠시 PC를 못 쓰게 하는 것만으로 실질적 치료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부모 눈을 피해 게임을 하려다가 관계만 나빠지는 경우도 많다. 궁극적으로는 운동이나 보드게임 등 다른 여가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게임을 잊도록 해야 한다. 디딤센터 최경찬 치료팀장은 “게임에만 빠져 있을 땐 잊고 살던 교우관계의 즐거움과 진로에 대한 고민, 목표의식을 되찾아주는 데 초점을 두는 게 좋다”고 말했다.



③ 게임일지를 스스로 쓰게 하라




게임을 얼마나 자주, 오래 하는지 자녀가 스스로 기록하는 건 그 자체로도 효과가 있다. 폭식증 등 섭식장애를 치료할 때 하루에 먹은 음식을 모두 기록하게 함으로써 스스로 식습관의 문제를 알도록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자녀가 자신의 게임 습관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면 게임 이용 규칙을 만드는 게 다음 단계다. 일주일에 몇 시간 게임을 할지 구체적으로 합의하고 반드시 숙제 등 할 일을 끝낸 후에 게임을 하도록 약속하는 방식이다.



④ 근본 원인을 찾아 해결하라



청소년 중 상당수는 학업이나 교우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게임에 몰입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이 게임을 하는 이유 1위는 ‘게임이 재밌어서’(34.7%)지만 2위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31.3%)였다.

문제는 게임에 중독되면 점점 더 친구 사이에서 고립되는 등 악순환에 빠진다는 점이다. 국제성모병원 기선완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전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는 “이런 경우 게임에 빠지게 된 근본 원인을 찾아 함께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