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비밀이야” 인터넷 거인기업의 ‘유령 노동자’를 아시나요?

최현정 기자
최현정 기자2019-05-24 07: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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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즈의 마법사’
미국 소설 ‘오즈의 마법사’에서 위대한 대마법사 오즈의 정체는 장막 뒤에서 레버를 조작하던 평범한 남자였다. 서커스단에서 쓰던 도구와 복화술로 정체를 숨기고 대마법사 행세를 한 것이다.

비슷한 일이 현재 실리콘밸리에서 벌어지고 있다.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이라는 위대한 기술 뒤에서 수천만 명의 ‘진짜 사람’이 인터넷 음란 콘텐츠를 모니터링하고 있다면 믿겠는가.



실리콘밸리가 감추고 싶어 하는 이들 ‘유령 노동자’의 실태를 공개한 책이 나왔다. 메리 L. 그레이 와 시드하스 수리의 새 책 ‘유령 업무 : 실리콘 밸리가 새로운 글로벌 언더클래스 구축을 막는 방법’(Ghost Work: How to Stop Silicon Valley from Building a New Global Underclass)이 그것이다.

출처=Houghton Mifflin Harcourt 출판사
두 아이의 엄마인 칼라(43) 씨는 작은 침실 한 구석에 마련한 사무실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보며 자신이 읽고 있는 인터넷 게시물이 불쾌한지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그녀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운영하는 아웃소싱 회사인 UHRS의 독립 계약 직원이다. 매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유명 테크 기업 플랫폼에 올라온 텍스트와 사진을 공부하고, 이용자들이 페이지에서 머물 것인지 나갈 것인지를 판단 내린다.

인터넷 신조어가 보이면 옆방에 있는 10대 아들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이 말이 좋은 말이야? 나쁜 말이야?” 아이들이 키득거리며 불쾌하지 않다고 하면 칼라 씨는 화면에서 ‘아니오’를 클릭한다.


자료사진 출처 | ⓒGettyImagesBank
유령 노동자는 구글 검색부터 아마존 에코 같은 ‘스마트’ 디지털 도우미까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인공지능을 훈련하는 데 도움을 준다. 칼라 씨는 이 책의 저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언어는 누가 그것을 읽고 쓰느냐에 따라 많은 다른 의미”라며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소프트웨어는 비꼬는 말을 구분하는 것은 고사하고, 언제나 엄지손가락과 음경의 차이를 구분하는 건 아니다”라고 전했다.

플랫폼 콘텐츠를 평가하는 조앤(39) 씨도 컴퓨터 능력 밖의 일을 하기 위해 고용된 유령 노동자다. 커뮤니케이션 석사 학위를 받고 전임 기술 작가로 일했던 조앤 씨는 팔순 노모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노모를 돌보며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됐다.

조앤 씨는 아마존의 온라인 인력시장 서비스 MTurk를 통해 의뢰받은 일을 한다. 여분의 침실을 홈 오피스로 바꾼 그녀는 트위터와 Match.com. 같은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평가하는 일을 한다. 가장 돈을 많이 받는 건 성적인 사진을 골라내는 일이다. 몇 년 연습 후에 조앤 씨는 매일 10시간 동안 이런 일을 하면서 평균 40달러(4만 8000원)를 번다.

자료사진 출처 | ⓒGettyImagesBank
유령 작업의 부상은 기술로 인하여 인간 노동자가 급속히 불필요해질 것이라는 가정에 어긋난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업무가 꾸준한 고용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노동자들이 생계가 곤란할 정도로 적은 수입만 받는다는 게 문제다.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MTurk 및 TaskRabbit 에서 소득의 대부분을 얻는 노동자의 25%는 다른 직업을 구하지 못해 일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의 40%가 건강 보험에 가입 할 여력이 없다고 한다. 앞서 등장한 조앤 씨의 경우 MTurk를 통해 일한 첫해에 연봉 4400달러(한화로 약 525만 원)를 벌었다.


물론 돈 때문에 이 일을 하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인도 델리에서 기계공학자로 일했던 락샤(34) 씨는 몇 년 전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후 UHRS에서 유령작업을 해왔다. 그는 시간당 평균 150개의 과제를 수행하고 매달 200시간 이상을 기록하며 성인 콘텐츠를 검토하는 것부터 Bing 검색에 사용되는 단어 분류까지 모든 일을 한다.

그는 “온라인에 있는 어느 누구도 나의 장애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이 일을 한다”라며 “이 일을 해야만 한다. 나는 바빠야만 한다”라고 말했다.

자료사진 출처 | ⓒGettyImagesBank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적으로 2000만 명이 이런 계약직 근로자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기업이 이 유령 노동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길 꺼려한다.

실례로 2016년 페이스 북에서 상위에 표시되는 인기 급상승 주제어인 ‘트렌드’를 선정하는 것이 “사내 팀”이라는 폭로가 나왔지만, 페이스 북은 “체계적 편향의 증거가 없다”며 넘어가려 했다.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마케팅 자동화 서비스인 리드지니어스의 설립자 프라야그 나룰라 CEO는 유령 노동자를 인정하는 것이 시장 반응을 생각하면 다소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벤처 캐피털 투자자들은 자동화된 ‘기술’을 강조해야 스타트업을 더 높이 평가한다.” 콘텐츠 판단에 인간이 관련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자료사진 출처 | ⓒGettyImagesBank
아마도 언젠가는 인간의 판단을 완전히 대체하는 AI가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유령 작업 역시 더 많아질 것이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콘텐츠의 양이 늘기 때문이다.

조앤 씨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희망을 느끼고 있다. 지난 2년 간 그녀의 연간 MTurk 수입은 거의 4배로 증가하여 연간 16000달러(약 1909만 원)까지 올랐다. 그녀는 현재 시간당 평균 7.25달러(약 8650원) 이상을 버는 MTurk 근로자 상위 4% 안에 들어간다.

자료사진 출처 | ⓒGettyImagesBank
△ 유령 노동자가 주로 하는 네 가지 업무 영역

-포르노그래피 : 알고리즘은 사진이 성기노출인지 가슴노출인지 판별하는데 문제가 있다. X등급 셀카를 골라내는 일은 여전히 사람들이 더 잘한다고 한다.
-언어 이해 : 인간 언어의 뉘앙스는 대부분의 알고리즘을 교란시킨다. 농담으로 쓴 것인지, 아니면 빈정댄 것인지 알고리즘은 혼동한다.
-잘못된 분류 : 알고리즘은 이미지에 대한 단순한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혐오 발언 : 2016년 히틀러를 사랑하는 성차별적 악플러로 변모한 마이크로 소프트의 AI봇을 기억할 것이다. 알고리즘은 혐오 발언을 알아내는 데 여전히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