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출된 한국여성 여행경보 지역서 피랍… “희생 군인 2명 애도”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5-13 10:53:14
공유하기 닫기
채널A 화면 캡처
비가 몰아치던 5월 11일(현지 시간) 오후 6시 4분. 프랑스 파리에서 20km 떨어진 벨리지빌라쿠블레 군 공항에 비행기 한 대가 착륙했다. 아프리카 무장 세력에 납치됐다가 5월 10일 프랑스군의 구출 작전으로 풀려난 프랑스 남성 두 명과 함께 베이지색 점퍼와 검은색 바지 차림의 40대 한국인 여성 장모 씨가 잠시 후 활주로로 내려섰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장이브 르드리앙 외교장관, 플로랑스 파를리 국방장관, 최종문 주프랑스 한국대사 등이 그들을 맞았다. 최 대사는 마크롱 대통령에게 “프랑스의 구출 작전을 통해 한국 피랍자가 구출된 데 사의를 표하며 그 과정에서 프랑스 군인 2명이 숨진 데 깊은 애도를 표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뜻을 전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장 씨는 장기 여행 중인 지난달 4월 12일 부르키나파소에서 접경 국가인 베냉으로 이동하던 중 국경검문소 부근에서 납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말리 중부에서 활동하는 지하디스트(이슬람 원리주의자) 그룹 ‘카티바 마시나’의 소행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가족들은 “장 씨가 험지 여행을 취미로 즐겼다”고 했다. 1년 전, 행선지는 밝히지 않은 채 여행을 간다고만 하고 드문드문 연락하다가 3월 말 언니와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지난달에 이어 이달에도 감감무소식이자 가족들이 실종신고를 하려던 참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장 씨가 피랍된 지 29일째인 5월 10일에야 피랍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가 인질 구출 작전을 벌이고 결과를 공식 발표하기 전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을 통해 알려온 것. 프랑스 당국은 장 씨가 당시 여권 등 신분증을 모두 분실한 상태여서 국적이 한국인지 북한인지를 판단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도 전해졌다. 외교부도 현지 공관에 들어온 영사 조력 신청이나 가족의 신고도 없는 상황에서 한국인 인질 존재 사실을 사전에 파악하기 어려웠다는 입장이다.




장 씨가 피랍된 곳은 정부 여행경보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부르키나파소는 원래 전역이 ‘철수권고’(3단계 적색경보) 지역이었지만 2015년 6월 북부 4개 주를 제외하고는 ‘여행자제’(2단계 황색경보) 지역으로 여행경보가 한 단계 낮춰졌다. 베냉은 현재 여행경보가 발령돼 있지 않다. 프랑스의 경우 베냉이 과거 식민지였다는 특수성을 고려해 반감으로 인한 보복공격이 우려된다며 접경 지역에 가장 강력한 여행경보인 ‘여행금지’(4단계)를 발령한 상황이다. 우리 외교부는 곧 두 국가에 대한 여행 주의도를 상향 조정할 방침이다.

여행을 자제하거나 철수하라는 정부 권고에도 불구하고 위험 지역을 다닌 장 씨의 안전불감증도 문제라는 지적이 높다. 여행자들이 위험을 자초하고는 추후 문제가 생겼을 때 정부에 뒤늦게 도움을 청하거나 심지어 책임을 떠넘긴다는 비판이 따른다. 이 때문에 장 씨의 치료비와 파리 체재비, 귀국에 드는 항공비 등을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지원할지도 향후 논쟁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장 씨가 긴급 구난활동비 사용 요건에 해당되는지 검토해야겠지만 통상 국내에 연고자가 있고 자력(경제적 능력)이 있는 경우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프랑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장 씨를 포함한 인질에 대해 “이기적이고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르드리앙 외교장관은 현지 인터뷰에서 “정부의 여행 관련 권고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장 씨는 구출 후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통화한 뒤, 첫날밤을 파리 근처 프랑스 군 병원에서 보냈다. 프랑스 당국의 건강검진 후 이상이 없을 경우 이르면 5월 13일 신병이 인도될 예정이다. 장 씨는 가급적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한기재 기자 / 파리=동정민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