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라 그렇겠지… 이러다가 ‘조현병 골든타임’ 놓칩니다

조혜선 기자
조혜선 기자2019-05-05 11: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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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GettyImagesBank
A 씨(37·여)는 중학생이 된 무렵부터 말수가 점점 줄고 등교를 거부하는 날이 늘었다. A 씨 부모는 ‘사춘기라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A 씨의 이상 증세는 심해졌다. 고등학생이 된 A 씨는 “시계 소리가 시끄럽다. 집 안에 있는 시계를 모두 치워라” “집에 빛이 들어오는 게 싫다”고 소리치는 일이 잦아졌다. A 씨 부모는 “딸이 고등학교 졸업 후 병원에 입원하고 나서야 조현병 진단을 받고 17년 넘게 약을 먹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청소년기에 나타난 조현병 증세를 ‘사춘기 현상’으로 잘못 알아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치면서 병을 키우는 사례가 적지 않다. 조현병은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직후 한 달 동안 약을 먹으면 환자의 70∼80%에서 병세가 사라지는데 청소년은 상대적으로 발견이 늦어져 치료 효과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B 씨(26)는 12년 전인 중학교 2학년 때 “내 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가족들에게 호소했다. 고등학생이 돼서는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큰 소리로 욕을 하는 등 폭력적인 성향까지 보였다. B 씨는 증상이 처음 나타나고 3년이 지난 고교 2학년 봄 무렵에야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B 씨의 어머니(56)는 “일찍 알았더라면 만사 제치고 치료를 받게 했을 텐데 사춘기라 그런 줄 알고 3년간 방치한 게 한스럽다”고 말했다.

비교적 빨리 조현병 진단을 받더라도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증세가 악화될 수밖에 없다. 지난달 24일 경남 창원에서 75세 할머니를 살해한 장모 군(18)은 2018년 조현병 진단을 받았지만 입원 치료를 거부해 증세가 악화되면서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조현병을 포함한 아동·청소년기 정신질환에 대한 주기적인 실태조사와 관련 시설 확충을 1일 보건복지부에 권고했다. 인권위는 정신질환이 10대 중후반부터 24세 이전에 집중되고 있지만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 특화된 시설과 프로그램 부족으로 초기 검진과 치료가 늦어져 질환이 만성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인권위가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신질환의 최초 발생 시기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때가 12.4%, 고교생 29.5%, 대학생 20.9%였다.

인권위는 아동·청소년기 정신질환 실태(역학)조사를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내용을 ‘정신건강복지법’에 포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실태조사 횟수만큼 방식도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전국 초중고교에서 해마다 ‘학생 정서행동 특성평가’를 실시하지만 중고교생은 학생이 직접 설문지에 증세를 표기하는 방식이어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조현병 증세가 있어도 문제아로 낙인찍힐까 봐 솔직하게 적지 않는 학생이 많다”고 말했다.

또 인권위는 아동·청소년을 위한 정신의료기관과 정신재활시설을 시도별로 한 곳 이상 설치하고 특수치료 결정 시 당사자에게 치료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권위가 2017년 정신의료기관 입원 경험이 있는 10∼24세 1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의사나 치료 담당자로부터 즉각적 도움을 받지 못한 경우가 40%, 자신의 병명과 치료 계획에 대해 설명을 듣지 못한 경우가 33%나 됐다. 2016년 기준 국내 정신의료기관은 1513곳이지만 아동·청소년 전문 정신건강의료기관은 21곳뿐이다.


김소영 ksy@donga.com·한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