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멀어져 간다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4-03 1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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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 논설위원
상대를 돕자는 의도였는데 되레 씻기 힘든 상처를 남겼다. 분명 제대로 과녁을 겨냥했다 믿었는데 저 멀리 빗나간 화살만 쌓여간다. 하지만 어쩌랴. 모든 일이 꼬인 원인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제멋대로 성급하게 판단한 자신의 탓인걸. 자업자득이다.
국내 개봉된 덴마크 영화 ‘더 길티’에서 수렁에 빠진 주인공의 심경을 대변한다면 아마도 이렇게 정리할 수도 있다. 거의 1인극에 가까운 이 영화는 인간 심리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주인공은 정의에 대한 과도한 신념에 갇힌 경찰관. 긴급신고 접수부서에서 울먹이는 여성으로부터 의문의 전화를 받고 직감적으로 납치사건을 떠올린다. 가정폭력의 피해자와 폭력전과의 전남편, 단숨에 사건 구도를 그렇게 정리한 뒤 선의와 정의 구현을 위해 물불 안 가리고 싸운다. 그 악전고투 과정에서 잘못된 선택이 반복되고 상황은 악화된다.

이 영화는 인간의 예단과 속단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과소평가해서는 큰일 난다는 경고를 남긴다. 공권력의 말단세포 중 하나인 경찰관의 사례가 이럴진대, 국가 공권력 총사령탑의 경우라면 그 위험과 파장의 규모는 상상 이상의 것일 터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이 영화는 현 국정 운영의 허실을 진단하는 데 착실한 실마리를 주기도 한다.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장담한 정부 출범 때의 과녁에서 갈수록 멀어지는 실상 말이다. 흑백논리에 집착해 현장을 무시하고 뒷감당 못 할 사태를 만든 사람들. 이미 정해놓은 결론에 현실을 끼워 맞춰 빚어진 문제들이 한데 뒤엉킨 상황이다.



인사 참사와 더불어 부동산 투기 논란으로 물러난 청와대 대변인을 둘러싼 막장 드라마 같은 현실로 시끌벅적하다. 진보를 자처한 매체조차 ‘도덕성 자질 흠결로부터 자유로운 후보자를 찾기 어려울 정도’라 개탄할 만큼 ‘품행제로’ 후보자들. 그럼에도 청와대는 ‘사전에 파악된 내용’이라고 막무가내로 둘러대다가 어쩔 수 없이 2명을 낙마시킨 뒤에는 ‘국민 눈높이에 미흡했다’는 상투적 핑계를 댔다. 후보자들 문제가 규정상 위법은 아니라는 식의 억지는 국민의 매를 버는 행태라는 것을 역대 정권의 사례를 보아 뻔히 알면서도 그런다.

그뿐인가. 올 공직자 재산공개를 통해 ‘진보’ 명찰을 단 정권의 윤리적 수준이 형편없이 낮다는 것, 입만 열면 욕했던 과거 정권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만천하에 자백한 꼴이 됐다. 잠시 고개를 수그렸던 청와대는 금세 원기회복을 한 듯 강변을 쏟아냈다. 인사 검증에 대해 ‘뭐가 문제인가’라고 반박한 국민소통수석은 ‘포르셰를 타면 왜 문제냐’ ‘무 자르듯 집이 세 채면 된다, 안 된다 기준을 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대담하게 속내를 밝혔다.

공정과 정의에 대한 국민 갈증을 방패 삼아 정권 쟁취의 꿈을 이룬 분들이 막상 스스로의 공정성과 정의로움을 측량하는 저울에 심각한 오작동이 발생했는데 도무지 상황 파악을 못 하는 듯하다. 일찍이 맹자는 수오지심, 자기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을 강조했다. 어떤 쇄신보다 수치심을 느끼는 감각의 쇄신이 시급하다. 이 같은 감각장애는 일상생활은 물론 공적 업무의 수행에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는 요인이다.


청와대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당신들이 그럴 줄 알았다’는 비웃음에 대드는 게 아니라 ‘당신들이 그럴 줄 몰랐다’는 배신감에 성실히 응답하는 자세다. 평판은 유리그릇처럼 쉽게 깨지며 한번 깨지면 결코 제대로 복원되지 않는다는 옛말을 새겨야 할 때다. 진보는 좀 다른가 싶어 그 윤리의식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의 신뢰를 저버린 죄, 진짜 진보들이 오랜 세월 쌓아온 평판을 한꺼번에 까먹은 죄가 오늘도 차곡차곡 쌓여간다.

그래도 부끄럽기는커녕 여전히 억울하다면 이런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이념전쟁에 매달리면서 선의의 개념을 오해하고, 정의라는 용어를 편협하게 학습한 것이라는 추정이다. 불순한 선의, 불온한 정의를 감춘 선동전략으로 어쩌다 전투에서 이길지는 몰라도 종국적으론 전쟁에서 패배자가 될 수 있다. 살아있는 권력이라고 마냥 으스대느라 역사의 교훈을 외면하다 보면 가까운 미래에 가혹한 실패의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 어쩌다 운이 좋을 때도 있지만 항상 운에 기댈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구나 나라 살림을 맡겠다는 사람들이라면.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