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구하는 일에 남녀 있나” 3·1운동 이끈 이화학당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4-02 12: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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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이화학당 중학과와 대학과 학생들이 외국인 교사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지난달 15일 이화여대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3·1운동, 여성 그리고 이화’ 학술대회를 열었다. 이화여대 제공
이화여대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이를 여성사적 관점으로 논의하는 ‘3·1운동, 여성 그리고 이화’ 학술대회를 지난 3월 15일 열었다.

3·1운동은 각계각층의 여성들을 포함해 다양한 사회구성원이 참여했던 운동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여성사학으로 이화학당 학생들도 3·1운동을 포함해 조국의 독립에 헌신했다. 김혜숙 이화여대 총장은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헌신해 왔으나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다”며 학술대회 개최 취지를 설명했다.



이화학당에는 유관순 열사 외에도 20여 명의 여성 독립운동가가 있었다. 학생들을 비롯해 교사들까지 독립 운동에 투신하면서 3·1운동 이후 이화학당은 일본 경찰의 집중 감시와 통제를 받았다. 이화학당은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결국 1919년 3월 중순 휴교에 들어갔다.

휴교 이후 기숙사를 떠나 서울, 평양, 해외로는 만주, 상하이까지 간 이화학당 학생들은 각지에서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노예달, 유점선, 신특실은 “나라와 민족을 구하는 일에 남녀 구별이 있을 수 없다”며 1919년 3월 5일 서울에서 시작된 학생연합 시위의 선두에 섰다. 이는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인권과 자유, 권리와 책임을 지니고 태어났음을 가르친 이화학당의 교육이념을 실천으로 옮긴 것이다.

이화의 학생들은 일제의 잔혹한 고문에도 무릎 꿇지 않았다. 평양에서 3·1운동에 참여한 김애은은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옥중에서 얼음물에 담그고, 인두로 지지는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그는 고문을 당하면서도 “여자의 몸으로 나라 일을 하다가 죽은들 어찌 한이 되리오”라고 말하며 굳은 독립 의지를 보였다. 충남 아산에 거주하던 이화학당 학생 김복희도 야간 봉화시위를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이화학당이 배출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해외에서 독립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애라 열사는 서울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는 과정에서 갓 낳은 아이를 잃기도 했다. 그는 남편이 만주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만주로 건너가 비밀결사 활동을 지속했다. 이 열사는 비밀문서를 가지고 한국으로 들어오다가 일본 헌병에게 붙잡혀 순국했다. 이화숙, 김원경은 이화학당을 졸업한 뒤 애국부인회의 회장과 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상하이 임시정부를 지원했다.

이번 학회는 분단된 우리나라의 역사적 접근을 넘어 다양한 관점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조망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허라금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원장은 이화인의 독립운동 참여에 대해 “3·1운동에 참여한 이화학당 학생들의 정신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이화여대 학생들의 움직임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이화여대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3·1운동과 이화’를 주제로 한 전시회를 지난달 4일부터 중앙도서관에서 진행하고 있다. 오는 5월 21일부터는 이화역사관에서 ‘이화의 독립운동가들’을 주제로 전시를 연다. 또 국가보훈처가 제100주년 3·1절을 맞아 대통령표창 독립유공자로 새로 추서한 이화학당 출신 여성 독립운동가 김복희 열사 등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알리고 그들에 관한 기록을 보관할 계획이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