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독면 쓰고 휴대용 청정기 들고… ‘숨쉴 구멍’ 찾아나선 시민들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3-06 12: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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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수도권과 충청권에 사상 처음으로 닷새 연속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되는 등 최근 한반도가 미세먼지로 뒤덮이는 날이 잦아지면서 시민들은 자구책을 찾고 있다. 왼쪽은 회사원 이승재 씨가 최근 산업용 방독면을 쓰고 출근하는 모습. 오른쪽은 경기 군포시의 한 헬스클럽에서는 남성이 미세먼지용 마스크를 착용한 채 운동을 하고 있다. 이승재 씨 제공·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수도권 전역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내려진 4일 오후 경기 군포시의 한 헬스클럽. 한 남성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트레드밀(러닝머신) 위를 달리고 있었다. 이 남성이 착용한 마스크는 미세먼지용 마스크였다. 마스크로 입과 코를 가린 채 달리는 것이 버거운 듯 마스크를 턱 아래로 내렸다 올렸다 하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그러나 트레드밀에서 내려올 때까지 마스크를 완전히 벗지는 않았다.

홍승현 씨(25)는 6개월 전 이 헬스클럽에 등록했다. 그전까지는 야외에서 운동을 했는데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목이 아프고 눈도 뻑뻑해 운동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환기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헬스장 역시 미세먼지 청정지대는 아니었다. 홍 씨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헬스장 공기도 답답하게 느껴져 마스크를 쓰고 운동을 한다”며 “불편하긴 하지만 운동을 안 할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 방독면 쓰고 출퇴근




5일 수도권과 충청권에 사상 처음으로 닷새 연속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되고 청정 지역이던 제주에서도 비상저감조치가 처음 내려지는 등 한반도가 미세먼지로 뒤덮이는 날이 잦아지면서 시민들은 자구책을 찾고 있다.

회사원 이승재 씨(31)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산업용 방독면을 쓰고 출퇴근한다. 미세먼지용 마스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껴 지난해 말 방독면을 구입했다. 얼굴의 절반가량을 가리는 방독면을 착용하고 다니면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아 신경이 조금 쓰이기는 하지만 미세먼지 차단 효과는 마스크에 비해 좋다.

‘코 마스크’를 사용하는 직장인들도 있다. 코 안에 끼우는 실리콘 형태의 이 마스크는 착용해도 겉으로 보기에는 티가 잘 나지 않는다. 주류업체 영업사원 류재성 씨(28)는 “영업직이라 사람 만날 일이 많기 때문에 일반 마스크보다는 코 마스크를 쓴다”며 “코 안에 넣는 형태라 숨쉬기가 조금 힘들고 이물감이 있긴 하지만 미세먼지를 마시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주부 임미란 씨(45)는 휴대용 공기청정기를 직접 만들었다. 공기청정기 필터에 팬을 달아 만들었는데 지름 15cm에 높이 39cm로 조금 큰 편이지만 시중에 판매되는 휴대용 공기청정기보다 성능은 더 좋다. 임 씨는 고깃집처럼 연기가 많이 나고 환기가 잘되지 않는 장소나 자신이 다니는 문화센터처럼 공기청정기가 없는 곳에 갈 때면 휴대용 공기청정기를 꼭 챙긴다. 임 씨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실내 공기도 나쁘다는 말을 들어 조금 귀찮아도 꼭 챙겨 나가려고 한다”며 “고깃집에서도 20분 정도 틀어 두면 매캐한 공기가 걷히고 시야가 맑아져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고깃집에서 한 남성이 휴대용 공기청정기를 옆에 둔 채 고기를 굽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 미세먼지 자구책에 ‘유난 떤다’는 시선도



재난 수준의 ‘미세먼지 공습’에 대처하기 위해 시민들은 여러 가지 자구책을 궁리하지만 이를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다. 시민들은 ‘주변 시선이 신경 쓰이지만 미세먼지 문제가 워낙 심각해 어쩔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직장을 그만둔 손모 씨(34·여)는 공기청정기가 없는 사무실에서 일했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엔 실내에서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손 씨는 어쩌다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로 일을 할 때면 상사들로부터 싫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실내에서 유난스럽다’,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느냐’는 것. “오래 살려고 별짓을 다 한다”는 막말에 가까운 핀잔을 주는 상사도 있었다고 한다. 손 씨는 결국 사무실 책상에 공기청정기를 놓고 일반 마스크 대신 코 마스크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산업용 방독면을 쓰고 외출하는 재수생 김정현 씨(19·여)는 길거리에서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이 부담스럽다. 김 씨는 “사람들이 숨쉬기조차 힘든 나라에 살면서 너무 안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방독면의 효과에 만족하지만 가끔은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미세먼지에 대한 시민들의 이런 반응이 결코 유난스러운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일부 기업과 행정기관이 ‘미세먼지 재난’에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상엽 고려대 안암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시민들은 경각심을 갖고 미세먼지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각자 노력하고 있는데 정작 공공장소에 공기청정기나 환기시설이 마련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개인의 자구책에 기댈 것이 아니라 기업과 행정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윤태 oldsport@donga.com·김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