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살롱 황제’ 이경백이 강력부 검사에게 한 얘기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3-05 11: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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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2012년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의 한 조사실. 당시 서울 강남 유흥업계를 주름잡던 ‘룸살롱 황제’ 이경백 씨는 검사에게 진술하며 ‘월정’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논현지구대가 4개 팀인데 각 팀 총무에게 월정 200만 원씩 줬죠.”



이 씨는 총무를 맡은 고참 경찰관에게 매월 정해진 금액을 상납했다. 일원화된 수금 창구를 무시하고 따로 이 씨의 업소를 찾아오는 경찰관도 있었다. 그들은 대개 정복 차림으로 나타나 “내 이름을 못 들어봤나 보지? 깐깐한 사람이라고 소문이 났을 텐데…”라고 말하곤 했다. 이 씨는 이들을 ‘각개전투’, ‘독고다이 슈킹’ 등의 속칭으로 분류했다.

이 씨가 아무에게나 준 것은 아니다. 총무가 “팀을 정리했다”는 의사표시를 해야 부하 직원들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보고 거래를 텄다. 태도가 미지근하면 “다른 총무들처럼 착착 치고 나오지 않는다”며 적게 줬다. 말이 상납이지, 경찰관들을 방패로 고용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씨는 당시 룸살롱 13곳을 운영하며 5년간 약 3000억 원을 벌었다. 단속 공무원들에게 매달 수천만 원 정도 쓰는 것은 사업 리스크를 줄이는 가장 ‘가성비’가 좋은 수단이었다. 그의 상납 리스트에 오른 경찰관 중 18명이 구속되고 66명이 징계를 받았다. 이 씨는 검사에게 이런 말을 했다.


“제가 자선사업가라서 돈을 줬겠습니까. 단속을 제대로 맞으면 그만큼 피해가 크고, 안 맞으면 그만큼 이익이 크니까 상납하는 거죠.”

유흥업의 경쟁력은 고객의 욕망을 채워주면서도 문제가 안 되도록 막아줄 때 극대화된다. VIP들은 그런 곳에서 돈을 뿌린다. 버닝썬, 아레나 등 유명 클럽들이 화류계의 강자로 떠오른 요즘에도 업(業)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잘되는 클럽일수록 경쟁업소의 신고가 많고, 단속에 걸려 영업정지라도 당하면 기회비용이 크다. 그때나 지금이나 단속을 차단하려는 동기가 강할 수밖에 없다.

폭행시비로 시작된 버닝썬 사건이 마약 투약과 유통, 약물 성폭행 의혹 등으로 커지면서 그동안 베일에 가렸던 욕망의 치부가 드러나고 있다. 클럽 안으로 공권력이 미치지 않도록 단속 경찰관들을 관리해야 할 절실한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도 보인다. 실제로 버닝썬 대표가 전직 경찰관을 통해 경찰에 2000만 원을 건네려 했던 정황도 나왔다. 수익 모델을 지키려는 업주와 유혹 앞에 선 경찰관이 존재하는 이상 ‘빅딜’이든 ‘스몰딜’이든 거래는 계속된다.

유흥업주와 경찰관의 유착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경찰 수뇌부는 강수를 둬 왔다. 강남지역 관서 경찰관들을 수백 명씩 물갈이했고, 업주와 전화 통화만 해도 징계를 하기도 했다. 버닝썬 사건 수사를 지휘하는 원경환 서울경찰청장도 4일 기자간담회에서 “유착이 확인된 경찰관은 용서하지 않겠다. 연루된 직원이 아무리 많아도 모두 처벌하겠다”고 결연하게 말했다.

하지만 유착 경찰관들을 ‘썩은 사과’로 간주해 도려내는 식의 대책은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업주가 단속 경찰관과 ‘직거래’하거나 경찰관이 유흥업소에 직접 투자해 수익을 챙기는 등 수법이 한층 정교해질 뿐이었다.


한때 음주단속에 걸린 운전자들이 경찰관에게 뒷돈을 찔러주는 일이 흔히 있었다. 요즘 그런 관행이 사라진 것은 둘 간의 거래가 오가던 시장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경찰은 ‘1인 단속’을 없애고 의경 등 여러 명이 공개단속을 하도록 했다. 또 음주측정기에 저장된 기록은 바로 출력해 음주운전 입건자 명단과 매일 대조하도록 의무화했다. 경찰관이 봐줄 수 있는 여지가 없으니 운전자 역시 기대할 게 없어져버렸다. 뒷돈 주고받는 사람도 잡아야겠지만 거래가 이뤄지는 시장을 잡아야 버닝썬 같은 사건이 줄어든다.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