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면 너무 힘든 인생”… ‘평타’가 목표인 ‘무나니스트’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3-06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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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는 2000년생과 기성세대 사이에 원활한 소통을 위해 ‘웹뉴(웹툰 뉴스) 컬래버레이션’을 시도했다. 취재팀이 만나 심층 인터뷰한 2000년생들의 생각을 웹툰 작가들에게 보내 매회 관련 내용을 4컷 웹툰에 담았다. 2회 ‘무나니스트의 탄생’ 웹툰은 ‘아만자’로 유명한 김보통 작가가 ‘평범’을 추구하게 된 2000년생의 성장과정에서 영감을 얻어 그렸다.  

 올해 연세대에 입학한 신입생 전효민 씨(19·여). 명문대에 입학해 세상이 ‘핑크빛’으로 보일 1학년 새내기지만 그에게는 ‘트라우마’가 있다. 그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일대를 지날 때면 소름이 돋는다. 중학생 때부터 대입 수시 컨설팅까지 대치동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공부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전 씨에게 그곳은 ‘사교육에 미쳐 있던’ 공간이었다.
그렇게 힘든 수험생활을 마치고 명문대에 입학한 그의 꿈은 무엇일까. 기성세대는 이해가 안 되겠지만 전 씨는 ‘평범하게 살고 평범하게 돈 벌고 평범하게 죽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전 씨는 취업률을 살피며 전공을 선택했고, 졸업 후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또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라고 꼽을 정도로 적당히 ‘때’도 묻었지만 ‘먹고살기 힘들지 않을 정도만 벌면 된다’고 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전 씨는 경쟁을 거치며 남들과 다른 ‘튐’이 얼마나 피곤하고 어려운지를 일찍 깨달은 것뿐이다. 그는 그렇게 무난함을 추구하는 ‘무나니스트’(무난’과 사람을 뜻하는 ‘ist’의 합성어)가 됐다. 2000년생들 사이에 유행어다.





○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는 무난함이 좋아”

4일 전국 대학에서 열린 입학식은 2000년생에게는 사회 전면에 나서는 신고식이었다. 가장 꿈이 큰 스무 살, 새로운 출발점에 섰지만 취재팀이 만난 2000년생의 목표는 당찬 포부보다는 ‘무난함’에 가까웠다. 기성세대는 ‘패기 없다’ ‘꿈이 작다’고 꾸짖겠지만 이들은 ‘부모만큼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깨달은 것뿐’이라고 항변한다.

재수생 조예원 씨(19·여)의 어머니는 의사다. 조 씨는 “부모님 덕분에 대치동에 살았고 명문고를 졸업했다”면서도 “일과 가정에 모두 헌신한 어머니를 존경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해도 바쁜 삶은 싫고 자기가 만족하는 무난한 삶이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조 씨는 꿈이 있었다. 무대에 오르는 꿈을 꾸며 고교 1학년 때 연예기획사에 들어갔던 적도 있지만 ‘스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소수라는 걸 어린 나이에 알았다. 그는 한때 꿈을 좇았던 것을 후회한다. 조 씨는 “3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서울 중위권 대학을 노리고 입시를 준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상수 중앙고 교사는 “요즘 세대의 꿈에서 기성세대가 말했던 정치인, 장군 같은 큰 목표는 사라진 지 오래”라고 말했다.

마케팅 전문가들에 따르면 2000년생의 문화도 ‘평타’(기본을 의미하는 게임 용어)를 최선으로 여긴다. ‘롱패딩족’이 대표적이다. 선배 격인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생)에서도 바람막이나 패딩 점퍼가 유행하긴 했지만 머리부터 무릎 아래까지 하나의 색으로 덮어 버리진 않았다.



○ 적응 잘하는 ‘인싸’가 되고픈 세대

이런 심리는 2000년생 사이의 유행어인 ‘인싸’에 투영됐다. ‘인사이더’를 의미하는 인싸는 무리에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아싸(아웃사이더)’의 상대적 의미다. 취재팀과 취업정보업체 ‘캐치’가 2000년생 142명에게 물은 결과 87명(61.3%)이 ‘스스로 인싸라고 여기거나 인싸를 지향한다’고 답했다.


인싸는 이전 신세대 사이에 자주 등장했던, 공부도 잘하면서 놀기도 잘하는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나 ‘엄친딸’과 다르다. 지난달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취업한 유고은 씨(19·여)는 인싸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인싸의 조건은 오직 하나, 성격이에요. 친구들 얘기에 리액션과 공감을 잘해주고 유행에 민감하면 됩니다.”

2000년생의 부모 세대인 X세대(1965∼1980년생)는 신세대답게 남들과 ‘다름’을 추구했다. 다름은 타인보다 뛰어난 우수성이 될 수 있다는 마음을 갖게 했고 성공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생은 노력해 얻은 ‘다름’으로 우수해져도 성공이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외환위기 직후에도 7∼8% 정도이던 청년(15∼29세)실업률이 2000년생이 중학교 2학년이던 2014년 9.0%가 됐다. 이들이 고교 입시와 대입을 거쳐 진로를 결정할 무렵 청년실업률은 9%를 넘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저성장과 높은 실업률이 만연한 사회 분위기에서 2000년생이 꿈보다 현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당연하다”며 “정부와 사회는 2000년생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관심을 갖고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 무나니스트 ::


‘무난’과 ‘사람’을 나타내는 접미사 ‘ist’의 합성어. 무난함을 추구하는 사람이란 뜻.




:: 인싸 ::

‘인사이더’의 줄임말. 자신이 속한 무리 안에서 여러 사람과 잘 어울리는 이를 뜻함 


:: 아싸 ::


‘아웃사이더’의 줄임말. 무리에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을 뜻함.  



[소통&20]패기 불어넣으려면? 도전실패 불이익 없는 환경 조성을 ▼

Q.

요즘 갓 입사한 2000년생은 시키는 일은 열심히 하는데 열정과 도전정신은 다소 부족해 보입니다.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중견기업 임원 50대 김모 씨)

A.

2000년생을 포함한 요즘 세대는 세월호 참사,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사회에 대한 신뢰를 쌓지 못했습니다. 믿을 건 자신과 부모뿐이며 학교나 회사가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뒤통수를 맞을 때를 대비하죠. ‘90년생이 온다’의 저자 임홍택 씨는 이런 특성을 가리켜 ‘고슴도치증후군’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올 초 SK하이닉스가 사내 벤처를 독려하기 위해 “사업화에 실패해도 재입사를 보장하겠다”고 밝혀 화제가 됐습니다. 2000년생이 도전적이길 원한다면 먼저 ‘도전해서 실패해도 불이익이 없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필요합니다.

요즘 세대가 긴 글 읽기는 버거워하지만 말하고 듣는 능력은 훨씬 뛰어나다는 게 고교 교사들의 공통된 진단입니다. 조덕연 동두천외고 교사는 “수학여행지를 정할 때 시키지 않아도 기획안을 만들어 투표에 부칠 만큼 관심사에는 적극적으로 행동한다”고 말합니다.

직원 평균 연령이 30대 초반인 제일기획 자회사 ‘펑타이코리아’의 ‘이달의 책’ 행사는 흥미를 유발해 변화를 이끈 대표적 사례입니다. 회사는 독서를 장려할 방법을 고민하던 차에 매달 직원들이 돌아가며 책을 직접 추천하고 추첨을 통해 책을 공짜로 증정하기로 했습니다. 책을 보고 독후감을 쓰라는 식의 ‘꼰대’기는 쫙 뺐습니다. 그랬더니 추첨에서 탈락한 직원들이 자비로 책을 구입했다고 합니다.

김동일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기성세대에게 ‘관점의 전환’을 주문합니다. “‘수학의 정석’으로 배운 사람들이 보면 요즘 애들이 수학을 못한다고 느낄 수 있지만 발표는 과거보다 더 잘하거든요. 세대 차이를 ‘세대 역량’으로 전환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특별취재팀

 

▽팀장

김윤종 정책사회부 차장 zozo@donga.com

▽정책사회부

김호경 조유라 기자 

▽사회부

홍석호 김은지 이윤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