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킬러’로 키운 트럼프父, 13세 아이를 군사학교 보내고…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3-05 09:5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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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하노이 담판 결렬 후에도 기자회견에서 김정은을 두고 ‘그만큼 독특한 사람도 흔치 않을 거다(quite a guy, quite a character)’라고 했다. 찬사까진 아니지만 꽤나 긍정적인 칭찬에 가깝다. 워싱턴에 돌아가선 ‘매우 영리하고 날카로우며 종잡기 어렵다(mercurial)’고도 했다. 그러면서 “어떤 사람들은 ‘그를 좋아해선 안 된다’고 하지만 나는 ‘왜 그를 좋아하지 말아야 하지?’라고 반문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트럼프를 두고 전 세계 독재자들을 치켜세우는 버릇이 또 도졌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오토 웜비어 사망에 대해 김정은을 변호하는 듯한 발언으로 거센 비난도 자초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독재자 칭찬이 그들을 동경하거나 두둔하려는 것일까. 그건 누구도 못 말리는 승부 근성에서 나온, 대단한 인물들을 상대하는 ‘나는 한 수 위’라는 셀프 칭찬이 아닐까 싶다.



출처=Classmates.com
트럼프는 하노이 담판에서도 승부사 본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작은 거래를 큰 거래로 키우면서 판을 흔들었다. 그는 김정은을 향해 “더 통 크게 가자(go bigger). 다걸기(all-in) 하라”고 재촉했다. 당황한 김정은이 끝내 거부하자 다음에 보자며 악수하고 철수해 버렸다. 그래 놓고 다음 게임을 기약하자며 립서비스를 내놓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어려서부터 ‘킬러’로 길러졌다.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는 뉴욕의 부동산업자로 자수성가한 인물. 아들에게 루저(실패자)가 되지 않으려면 킬러가 돼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13세 아들을 혹독한 군사학교에 보냈다. 프레드는 브루클린의 험악한 동네에서 아파트 임대료를 받으러 다닐 때 아들을 데리고 다녔다. 프레드는 아들에게 문 한쪽 옆으로 비켜서 있으라고 했다.

 그 이유를 묻자 답하길 “저 작자들은 때로 문을 향해 바로 총을 쏘거든”.


그렇게 자란 트럼프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한다는 뉴욕 부동산업계의 대표주자가 됐다. 킬러는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다. 트럼프는 아예 자신은 누구도 신뢰하지 않는다고 자랑해왔다. “최고의 능력자들을 고용하고, 그들을 신뢰하지 말라.” 그는 대통령이 돼서도 사법부든 정보기관이든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노골적인 불신을 표출했다.

김정은과의 담판을 앞두고도 트럼프는 별도의 두 개 라인을 가동시켰다. 일단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에게 전적인 협상 권한을 주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협상 테이블에 앉아서는 그동안 배제시켰던 매파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거친 요구안을 내밀었다. 오직 자신에 대한 충성심만 강요하는 트럼프에게 참모들 간 협력은 애초부터 아무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김정은은 플랜B를 준비하지 못했다. 폼페이오-비건 라인과 만든 합의문 초안에 트럼프까지 구슬리면 샴페인을 터뜨릴 만한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했으리라. 하지만 승부는 피했어야 한다. 그토록 원하던 톱다운식 담판에서 트럼프의 일격에 휘청거리는 처지가 됐다. 어쩌면 결렬이라 하기도 애매한 결말에 아직 어리둥절해 있는지도 모른다. 최선희가 전한 대로 ‘앞으로 조미 거래에 의욕을 잃지 않으시나 하는…’ 딱 그런 심정일 것이다.

옹립된 젊은 독재자는 산전수전 다 겪은 트럼프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 최강의 권력을 쟁취하고도 낮은 지지도와 숱한 도전 속에 분투하는 트럼프와 인민 100% 지지라는 미명 아래 권력층에 얹혀 있는 김정은이다. 국가 파워의 격차는 제쳐놓더라도 승패는 진작 정해져 있었다. 트럼프는 하노이에서 김정은이 착각했던 현실을 모질지만 은근하게 일깨워줬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