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 사이클 선수 “남성부 따라잡았더니 경기 일시중단 당해”

celsetta@donga.com2019-03-04 14:5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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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 한셀만 선수 인스타그램 캡처(@nicole_hanselmann)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한 것도 잘못인가요? 그저 황당할 뿐입니다.”

주최측의 안일한 진행 탓에 우승을 놓친 스위스 정상급 여성 사이클 선수 니콜 한셀만(Nicole Hanselmann·27)이 억울함을 토로했다. 한셀만과 그의 팬들은 주최측의 행사진행 실수는 스포츠계에 여전히 남아 있는 성차별적 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했다. 이 소식은 사이클 전문 매체 사이클링뉴스(Cycling News)등 여러 해외 매체를 통해 알려졌다.

한셀만은 3월 2일(현지시간) 벨기에에서 열린 2019 오믈룹 엣 뉴스블라트(Omloop Het Nieuwsblad) 여성부 경기에 출전했다. 이 대회는 현지 언론사 엣 뉴스블라트(구 Het Volk) 주최로 1945년부터 시작됐으며 벨기에 사이클 시즌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여성부 경기는 2006년에 처음 열렸다.

이 날 경기는 남성 선수들이 먼저 출발하고 10분 뒤 여성 선수들이 출발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남성부와 여성부 경기를 따로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한셀만을 비롯한 정상급 여성 선수들은 10분 늦게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금세 속도를 올려 곧 남성부 후위 그룹을 따라잡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란 심판은 여성부 경기를 일시 정지시켰다.

한셀만 등 여성 선두그룹은 갑자기 내려진 일시정지 명령에 놀랐지만 지휘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남자 선수들이 저만치 멀리 간 다음 비로소 여성부 경기가 재개됐지만 한 번 무너진 컨디션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1위로 달리던 한셀만은 74위로 경기를 마무리해야만 했다.

그는 SNS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경기 당일 컨디션이 매우 좋았고 흐름도 잘 타서 1위로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속도를 내고 있는데 저 멀리 남성 후위그룹과 응급사태에 대비해 뒤를 따라가는 구급차가 보였다. 심판은 우리(여성 선두그룹)가 남성 그룹에 너무 가까워졌기 때문에 경기를 일시 중지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아주 당혹스러운 순간이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이어 “아마 5분에서 7분 정도 쉬었던 것 같다. 다시 출발했지만 흐름을 되찾을 수 없었다. 나를 비롯한 여성 선두 그룹이 너무 빨랐든지, 아니면 남성 후위그룹이 너무 느렸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한셀만의 팬들은 주최 측의 진행 미숙 탓에 뛰어난 여성 선수들이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며 함께 분노했다. 한셀만의 SNS에는 “불공정한 경기였다. 진정한 승자는 당신이다”, “주최측이 여성선수들을 저평가한 것 같다. 10분 늦게 출발시키면 정상급 여성 선수가 가장 느린 남성 선수를 따라잡지 못 할 거라고 예상했던 건가”와 같은 의견이 쏟아졌다. 자신을 사이클 애호가 남성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이 분야에는 아직 성차별이 만연하다. 여성을 남성보다 덜 중요하게 여기는 잘못된 관행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양에서 자전거가 처음 도입된 19세기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자전거 타는 여성’은 꾸준히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여성이 바지를 입고 안장에 올라앉은 모습은 정숙하지 못하며 자전거가 여성의 불임을 유발하고 남성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게끔 만든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사회 분위기가 변하고 여성해방운동가들이 지속적으로 노력함으로써 이런 편견은 점차 사라졌지만 프로 스포츠로서의 자전거, 즉 사이클링이 여성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셀만 선수가 출전한 ‘오믈룹 엣 뉴스블라트(1945년 시작)’는 2006년,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사이클 경기 ‘투르 드 프랑스(Le Tour de France·1903년 시작)’는 2014년에야 공식 여성부 경기 '라 쿠스(La Course by Le Tour de France)'를 마련했다. 21일간 계속되는 남성부 경기와 달리 여성부 경기는 투르 드 프랑스 마지막 날 단 하루만 진행된다.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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