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경호원들 “회담 잘 안됐습네까?… 미국은 믿을수 없어”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3-04 14:10:52
공유하기 닫기
3월 2일 오전 10시 반경(현지 시간)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 호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하노이에서의 마지막 공식 일정인 호찌민 묘소 참배 후 북한행 특별열차를 타기 위해 동당역으로 떠난 직후였다. 김 위원장 일행과 경호원 등이 머물렀던 멜리아 호텔에선 일부 경호원이 후발대로 남아 김 위원장 ‘흔적 지우기’ 등 철수 준비에 한창이었다.

멜리아 호텔 측은 김 위원장이 호텔을 ‘체크아웃’한 지 1시간가량 지나자 경호를 일부 완화했다. 일반인 숙박객이 북측 숙소인 17∼22층에 아예 올라가지 못하도록 엘리베이터 버튼을 막아뒀던 장치도 뗐다. 전날부터 이 호텔에 묵고 있던 기자는 22층부터 차례로 버튼을 눌러봤다. 19층에 불이 들어왔다. 19층에 도착해 호텔방들이 늘어선 통로로 나서자마자 한창 짐을 옮기고 있던 북한 경호원 2명과 눈이 마주쳤다. 짧게 깎은 스포츠형 머리에 검은색 슈트를 입고 인공기 배지를 왼쪽 가슴에 달고 있었다. 김 위원장의 리무진을 에워싼 밀착 경호로 이른바 ‘방탄 경호단’으로 불린 호위사령부 소속 경호원들이었다.



위협적인 걸음걸이로 기자에게 성큼성큼 다가온 북측 경호원들은 “어디서 오셨습네까?”라고 물었다. “남쪽에서 온 기자”라고 하자 한 경호원이 “이쪽으로 와보라”며 팔을 잡아끌고 짐을 옮기고 있던 화물 엘리베이터 칸으로 데려갔다. 경호원 간부로 보이는 인물은 경호원들에게 “철저히 조사하고 여기(베트남) 공안에 넘기라”고 지시했다.

경호원들은 가장 먼저 휴대전화를 빼앗아 숙소 사진을 찍은 것이 없는지 일일이 검사했다. 그사이 화물 엘리베이터를 통해 김 위원장과 북측 대표단이 머물던 20∼22층에 남아 있던 짐들이 검은색 캐리어에 담겨 옮겨졌다. 매트리스를 아예 통째로 객실 밖으로 빼오는 장면도 포착됐다. 김 위원장의 머리카락, 지문 등 생체 정보를 지우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호하는 음식 정보도 비밀이었으나 2월 27일 스테이크가 메인 요리였던 만찬을 차렸던 폴 스마트 메트로폴 호텔 총괄셰프를 통해 일부가 드러났다. 그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은 고기 익힌 정도를 ‘미디엄 레어’에서 ‘베리 레어’, 트럼프 대통령은 ‘웰던’을 희망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 요리사로부터 들은 이야기라면서 “김 위원장이 캐비아, 랍스타, 푸아그라 등 고급 식재료를 좋아하고 즐긴다”고 전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월 26일 당시 특별열차를 타고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 도착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방탄 경호단’이 밀착 호위를 하고 있다. 랑선성=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이렇게 10여 분간 조사가 이어져 질문이 뜸해질 즈음 기자는 이들에게 “북-미 정상회담 결과가 아쉽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한 경호원이 “회담이 잘 안 됐습네까? 기자 선생이니 잘 알지 않습네까?” 하고 질문을 던져왔다. 왜 합의가 결렬됐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는 듯했다.

“이번 회담에서 합의를 내지는 못했지만 다음에도 회담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기자가 답하자 옆에 있던 이 경호원은 “단번에 (합의가) 될 수야 있겠느냐” “미국은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 대통령은 4년에 한 번씩 바뀌기 때문에 (회담이 잘되려면) 미국에만 기대선 안 된다.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 민족이 빨리 통일이 돼야 한다”며 “우리 민족이 세계 최고의 민족 아니냐. 근데 지금 미국이 한반도 반쪽을 차지하고 (한국에) 이래라저래라 하게 둬선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경호원은 “남쪽이 통일 사업에 더 힘을 써야 한다. 남쪽 사람들 모두 통일에 사명을 갖도록 해야 한다”며 “우리(북측)는 다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분위기가 누그러지자 경호원들도 입이 풀리기 시작했다. 한 경호원은 지난해 자신이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자 선생도 다음에 평양에 오시라”고 했다. 다른 한 경호원은 기자에게 대뜸 군 복무를 어디서 했는지 묻기도 했다. “서울 근처에서 복무했다”고 하자 “그럼 3야전(사령부) 소속이냐?”며 호기심을 보였다. 기자가 경호원에게 “(군에) 몇 년 근무했느냐”고 묻자 “우리는 이게 일생의 사명”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대화는 경호원들의 간부가 다가서면서 20분 만에 끝났다. 이 간부는 기자에게 “니 어찌 (여기에) 올라왔나. 직접 말해보라우”라며 경위를 캐묻더니 경호원들에게 “빨리 내려보내라우”라고 지시했다. 이들은 이날 평양으로 떠났다.

하노이=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