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그 자리서… 100년 후배들 “대한독립만세”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2-28 10:33:25
공유하기 닫기
2월 2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3·1운동 100주년 맞이 플래시몹 동작을 연습하고 있는 서울시내 14개 고교 및 대학교 학생들. 이들의 학교는 100년 전 그날 만세를 불렀던 학생들의 출신 학교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긴 겨울방학이 끝나가던 2월 2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스포츠과학관에서 고려대 학생 박현지 씨(21·여)가 율동을 배우고 있었다. 박 씨가 아침나절부터 이곳에서 어설프게나마 몸을 움직이는 까닭은 3월 1일의 플래시몹(사전 약속된 시간과 장소에 모여 특정 행위를 한 뒤 흩어지는 퍼포먼스)을 위해서다. ‘100인 만세운동 플래시몹’이다.

올 3·1절에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서울에서 많은 행사가 열린다. 100인 만세운동 플래시몹은 3·1절 당일 종로 보신각에서 타종한 직후 그 앞에서 펼쳐진다. 여성은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고 남성은 흰 저고리와 바지를 입는다. 일견 평범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 만세운동 플래시몹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참가하는 학생 100명이 100년 전 보신각 앞에서 만세를 부른 학생들의 후배라는 점이다.



독립기념관이 제공한 ‘서울지역 중등급 이상 학생의 구속자 내역’에 따르면 100년 전 그날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학생들의 출신 학교는 경성의학·공업전문학교, 보성법률상업학교, 연희전문학교, 불교중앙학림, 배재고등보통학교, 휘문고등보통학교, 중앙학교, 경성고등보통학교,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정신여학교, 경신학교, 중동학교, 선린상업학교 등이다.

이 학교들 가운데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고교 및 대학은 총 14개교다. 고려대 동국대 서울대 연세대 등 대학 4개교와 경기고 경신고 배재고 보성고 선린인터넷고 이화여고 정신여고 중동고 중앙고 휘문고 등 고교 10개교다. 이 학교 재학생 102명이 플래시몹에 참여한다.

학생들은 대부분 자발적으로 모였다. 박 씨는 어릴 때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전북 정읍에 살던 외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시집을 빨리 갔다고 했다. 외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이던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먹을 게 없어 나무껍질을 벗겨 죽을 쒀먹었다고 했다. 박 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기사를 챙겨보곤 했다. 이들을 위해 행동에 나서지 못해 아쉽던 차에 대학 동아리 사이트에 올라온 플래시몹 참여 학생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박 씨는 “유튜브에서 플래시몹 동영상 보는 걸 좋아했는데 그 플래시몹으로 3·1운동을 기릴 수 있을 것 같아 참여했다”며 “기억에 남는 일 없이 지나갈 뻔한 겨울방학의 마지막을 의미 있게 보낼 것 같다”고 말했다.


어색할 법도 한데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한 연습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오전에 모인 학생 60여 명은 10명씩 6개조로 나눠 안무를 연습했다. 서로 마주 서서 손을 맞잡고 좌우로 몸을 비틀며 준비운동을 하고는 둥글게 모여 점프하거나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등의 동작을 익혔다. 안무 영상을 예습해온 덕에 평상시 몸을 쓸 일이 많지 않던 학생들도 곧잘 따라했다. 안무 보조로 지목된 학생이 “잘 못 춘다”며 손사래를 치자 안무를 가르치던 청년이 “독립운동도 얼떨결에 시작하기도 하고 다 그렇게 시작하는 거다”라며 끌어당기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중동고 노영화 군(17)은 “한국사 교과서에서 3·1운동에 우리 학교도 참여했다는 걸 알고 신기하면서도 뿌듯했다”며 “조금이나마 그 의미를 함께하고 싶어 친구들과 참여했다”고 말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