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다르크의 기상 일깨워준 ‘유관순 멘토’ 史愛理施 선교사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2-25 12: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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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 제막을 앞두고 막바지 제작 중인 사애리시 선교사(왼쪽)와 유관순 열사 동상. 한국선교유적연구원 제공
유관순 열사를 수양딸로 삼아 근대 교육을 받게 하고 잔 다르크의 기상을 일깨워준 사애리시(史愛理施·본명 앨리스 샤프·1871∼1972·사진) 선교사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국내외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개신교 단체들은 동상을 건립하고 기념사업을 추진한다. 그의 전기도 출간을 앞두고 있다.

캐나다 출신인 사애리시 선교사는 1900년 미국 감리회 한국선교연합회 소속으로 한국에 와서 선교 활동을 벌였다. 한국에서 만나 결혼한 남편 로버트 샤프 선교사와 함께 충남 공주에 선교 기지를 세우고 충청지역 선교를 책임졌다. 이 과정에서 공주 영명중·고등학교의 전신인 명설학교(명선여학교) 등 20여 개 교육기관을 세웠다. 한국 최초의 여성 목사 전밀라, 여성 경찰서장 노마리아를 가르쳐 공주지역 ‘근대 여성 교육의 어머니’로 불렸다.



한국선교유적연구원 측은 사애리시 선교사의 ‘최고의 순간’으로 유관순 열사와의 만남을 꼽는다. 그는 1910년을 전후해 충남 천안시 병천면 매봉교회(당시 지령리교회)에서 8세 남짓한 유 열사를 처음 만났다. 어린 유 열사의 두터운 신앙심과 주일학교에서 드러난 리더십에 호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유 열사를 수양딸 삼은 뒤 1914년 공주로 데려와 같이 살다가 1916년 자신이 교사로 일했던 서울 이화학당에 교비생(학교 경비로 공부하는 학생)으로 편입시켰다.

사애리시 선교사의 업적은 동아일보도 기록으로 남겼다. 본보는 1938년 9월 5일자로 ‘66세 백발 노구로 조선 부인 의복을 입고 감개무량한 은퇴식 답사를 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은퇴를 앞둔 그의 선교 기념비 제막식을 다룬 내용이었다. 1932년 4월 23일자에는 그가 선교 여행을 하다 실족해 다쳤다는 소식을 전했다.

1939년 은퇴해 미국으로 돌아간 사애리시 선교사는 말년을 로스앤젤레스 선교사 양로원에서 지내다 1972년 101세로 영면했다. 유품은 트랜지스터라디오 한 대. 그의 100세 생일에는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나중에 대통령이 된 로널드 레이건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축하 서한을 보냈다. 그는 “한국에서의 39년은 무척 만족스럽고 즐거운 일이었다”고 회고했다고 한다.


그를 기리는 한미 양국의 개신교인들은 최근 ‘앨리스 샤프 선교사 기념사업회’를 만들고 성금 3억5000만 원을 모금해 ‘유관순 열사와 사애리시 선교사 부부 동상’과 사애리시 비석 등을 제작했다. 동상은 높이 180cm의 전신상이다. 동상과 비석은 다음 달 1일 공주 영명고에서 제막한다. 서만철 한국선교유적연구회장(전 공주대 총장)은 “이날 미국의 교민 49명이 제막식 등 기념행사에 참석한 뒤 그의 선교 행로를 답사한다”며 “사애리시 선교사 기념사업은 올해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펼쳐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만간 유 열사와의 역사적인 인연을 비롯해 사애리시 선교사의 한국 선교 39년사를 담은 ‘선교사 史愛理施(사애리시) 전기’가 출간된다.

공주=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