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을 예술로 만들고… 하늘로 떠난 큰무당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2-25 09: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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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비단꽃길’. 한국 무속문화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한 만신 김금화 씨가 직접 출연한 영화다. 작은 사진은 밝게 웃는 김금화 씨. 마운틴픽쳐스 제공
“하늘과 땅의 매개자이자 중개자, 그렇게 끔찍한 것이 무당이오.”

영화 ‘만신’의 실제 주인공이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큰무당으로 손꼽히는 국가무형문화재 제82-2호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 보유자 김금화 씨가 2월 2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1931년 황해도 연백의 가난한 집안에서 둘째로 태어난 고인은 12세 때 무병(巫病)을 앓다가 17세에 외할머니이자 만신(萬神·무녀)인 김천일 씨에게 내림굿을 받고 무당이 됐다. 한평생을 무당으로 살아온 고인의 인생은 말 그대로 끔찍한 것이었다. 6·25전쟁 시기 인민군에게 핍박받고 그 뒤 빨갱이라고 괴롭힘을 당했으며, 새마을운동 시기에는 혹세무민하는 미신으로 몰려 박해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1972년 명창 박동진 선생(1916∼2003)의 주선으로 참가한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해주장군굿놀이’로 개인연기상을 받은 후 그에게 예인(藝人)이라는 극찬이 쏟아졌다. 특히 외국인의 반응이 뜨거웠다. 1982년 한미 수교 100주년을 맞아 미국 로스앤젤레스 녹스빌 국제박람회장에서 ‘철무리굿’을 선보였다. 그는 마력 같은 힘으로 관객을 열광시켰고 예정에도 없던 연장 공연을 석 달간 했다. 이후 독일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 유럽과 중국 일본 등 세계 곳곳을 누비며 서구에 우리 전통문화를 알려왔다. 1985년 국가무형문화재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 보유자로 인정됐다.

고인은 생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무형문화재라고 무슨 영화가 있었겠소. 그래도 고마운 게지. 우리야 배운 가락대로 꿋꿋하니 버텼을 뿐인데, 그걸 민속이다 문화재다 연구하고 아껴주는 세상이 옵디다. 이제 떠나도 굿은 남겠구나!”라고 말했다.


고인은 사도세자, 백남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위한 진혼제와 세월호 희생자 추모위령제를 지냈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그의 굿에 매료됐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한국에서 그의 굿을 접하면서 “샤먼 김금화가 내 왼쪽 다리가 아플 거라고 알려줬는데 여기 와서 보니 오른쪽이었다. 아마 시차 때문인 듯하다”고 고인과의 만남을 술회했다.

2014년에는 고인의 일생을 담은 영화 ‘만신’이 개봉됐다. 박찬경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토론토 릴 아시안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장편영화상을 받았다. 앞서 2013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비단꽃길’도 고인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유족으로는 아들 조황훈 씨(자영업)가 있다. 조카 김혜경 씨는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 이수자다. 빈소는 인천 청기와장례식장, 발인은 25일 오전 6시 40분. 032-583-4444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