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다크월드 ‘사바하’의 두 설계자…장재현 & 강혜정

스포츠동아
스포츠동아2019-02-22 1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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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바하’를 통해 매력적인 다크월드를 펼친 장재현 감독(오른쪽)과 제작자인 강혜정 대표. 데뷔작으로 성공을 맛본 감독과 베테랑 제작자가 만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야기를 관객에 선사한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영화 ‘사바하’ 장재현 감독 & 제작자 강혜정 대표

장재현 감독
무궁무진한 불교의 세계에서 영감
덕심으로 찾고 과학적으로 다듬고
내가 보고 싶은 영화 찍으려고 했죠
강 대표와는 농담을 해도 쿵짝 맞아



강혜정 대표
회사 입장선 독박위험 있었지만
빈틈없는 세계가 설계돼 있었다
감독은 마음껏 하라 해야 작두 타
겁 없는 사람들을 발굴하고 싶다




한국영화에 ‘다크월드’가 열렸다. 인간의 심연을 파고드는 악에 대한 어둠의 세계가 영화 ‘사바하’를 통해 탄생했다. 3년 전 가톨릭 구마의식을 다룬 ‘검은 사제들’을 통해 다크월드를 시작한 장재현 감독이 그 세계를 더욱 공고히 했다.


기독교와 불교의 밀교, 불교에서 출발한 신흥종교와 무속신앙이 뒤섞인 ‘사바하’는 신을 찾으려다가 악과 마주한 이들의 이야기다. 낯설고 섬뜩한 세계관을 완성한 주역은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은 장재현 감독(38)과 영화사 외유내강의 강혜정 대표(49)다. 경험 많은 노련한 제작자는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로 압축해 설득력 강한 상업영화로 완성했다. 개봉을 하루 앞둔 19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사바하’의 설계자들을 만났다.



● “홀리듯 시작한 작업, 종교보다 장르적으로”

-어떻게 시작했나.


강혜정(이하 강)


“모든 걸 떠나 시나리오의 힘이다. ‘검은 사제들’이나 ‘곡성’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기분이었다. 홀리듯이 결정했다. 물론 감독이 거둔 앞선 성적(544만 명)이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오긴 했다. 제작을 하겠다니 류승완 감독(외유내강의 공동제작자이자 감독 그리고 강혜정 대표의 남편)은 ‘뭘 해도 회사 입장에선 플러스는 없다’고 하더라. 맞다. 재능을 이미 인정받은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 잘되지 않으면 책임은 우리의 몫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거부할 수 없었다.”

-‘검은 사제들’ 이후 왜 ‘사바하’인가.

장재현(이하 장)

“‘검은 사제들’ 자료 조사를 하다가 불교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살짝 엿봤다. 공부를 시작했다. 오랫동안 내가 가진 담론이 기독교 헤롯 왕과 아기예수 탄생의 이야기다. 두 줄기가 섞이면서 ‘사바하’가 나왔다. 종교보다 장르로 풀고 싶었다.”




-여러 제안이 있었을 텐데 외유내강과 손잡은 이유도 궁금하다.



“‘검은 사제들’이 조금 여성적인 면이 있다. 반면 외유내강이 해온 영화들은 주로 남성적이다. 내가 좀 유리하게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했다.(웃음) 감독은 늘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도, 커뮤니케이션도.”





“미스터리 스릴러라고 해도 비현실적인 장르가 뒤섞인 영화는 우리도 처음이다. 처음부터 장 감독은 ‘저를 믿어주세요’라고 했다. 자신감이 있었다. ‘그래, 우리 같이 가 보자’ ‘너는 너의 싸움을, 나는 나의 싸움을 해보자’ 했다.”

장재현 감독은 데뷔작인 ‘검은 사제들’로 한국형 오컬트의 세계를 열고 영화나 드라마 콘텐츠 확장에 기여했다. 기대 속에 내놓은 ‘사바하’는 신흥종교의 비리를 파헤치는 박목사(이정재)가 강원도 일대에 퍼진 사슴동산의 존재를 추적하면서 악의 실체에 접근하는 이야기다. 누구도 하기 어려운 시도를 맡은 강혜정 대표는 동료인 류승완 감독과 ‘부당거래’ ‘베를린’ ‘베테랑’은 물론 ‘군함도’까지 선 굵은 영화를 제작해왔다.



-‘다크월드’라고 불리는 감독의 세계가 더욱 공고해졌다.



“시나리오를 쓸 때 초고만큼은 아무 간섭도 없이 하려고 한다. 처음부터 같이 작업하면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게 나오는 것 같다. 뿌리는 작가가 만들어야 선명하다. 그 뒤 대표님과 회의를 하면서 산만한 부분이 한층 간결해졌다. 워낙 경험 많은 분들이라 ‘어차피 편집될 거야’ ‘어차피 안 써’ 그러면서 뺀 부분도 있다. 처음엔 야속했지.(웃음) 하지만 ‘구력’은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가장 인상 깊은 건 감독의 엄청난 취재 분량이다. 하고자하는 바도 분명했다. ‘영원한 악도 영원한 선도 없다’ ‘선의 끝은 악, 악의 끝은 선일까’라는 의문을 담은 빈틈없는 세계가 설계돼 있었다.”



-취재 과정은 어디서부터 출발하나.



“종교 관련 교수님이나 실제 비슷한 일을 하는 분들까지 일단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사람과 책, 두 개가 전부다. 그리고 구 박사(구글 검색). 하하!”



-종교계 관계자들이 흔쾌히 만나주던가.



“‘검은 사제들’ 땐 이름 없는 신인이라 어려웠다. 고민하다 소설가 명함을 만들었다. 수도원에 가서 ‘영화하는 사람인데 이야기 듣고 싶다’고 하면 시선이 부정적이다.(웃음) 소설가라고 했더니 조금 애틋하게 보더라. 소설가는 뭘 촬영하지 않으니까.”

영화 ‘사바하’의 한 장면.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에서 박 목사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선교사’ 이야기를 꺼낸다.



“26살부터 2년 동안 아프리카 NGO단체에서 일했다. 덴마크 단체였다. 내 성격이 워낙 남들 안 하는 걸 하는 편이라, 유학을 가볼까 하는 과정에서 일하게 됐다. 남아공에 한국인이 거의 없다 보니, 한국인 선교사님 집에서 라면 얻어먹으면서 지낼 때가 있었다. 그때 들은 이야기다. 한 선교사님이 도움을 주던 현지인에게 살해당한 일이다. 그때 신에 대한 미움, 혼란스러움이 있었다. 그런 마음이 박 목사 캐릭터의 한 축을 구축했다.”



-데뷔작이 잘되니 두 번째는 부담이 더 컸을 텐데.



“그래서 기획 단계부터 고민했다. 영화감독은 욕망 덩어리의 직업군이잖아.(웃음) 감독은 보통 찍고 싶은 걸 찍는 경향이 있지만 내 좌우명은 ‘하고 싶은 영화보다 보고 싶은 영화를 찍자’이다. 지금, 극장서 내가 보고 싶은 영화 말이다. 촬영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멋있게 찍기보다 관객이 보고 싶어 할 만한 장면을 찍는다.”



-그 균형을 맞추기가 어려울 텐데.



“그래서 주변에 끊임없이 묻는다. 방법이 맞는 거냐고.”



-가치관이 색다르다.



“마니아적인 성향이 강해서 그렇다.(웃음) 더 조심하려고 한다. 상업영화라는 게 나의 결정으로 인해 하나의 소기업이 움직이는 일이잖아. 그러니 신중해야지. 감독이란 직업이 좋지만도 않다. 자존감이나 자괴감과 딱 붙어 있다. 그러면서 흥망성쇠의 상처도 곧바로 받는다.”


-장재현은 ‘욕망 덩어리’가 아닌가보다.




“엄청난 욕망 덩어리다. 하하! 그래도 절제를 많이 한다. 최대한 정직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영화 찍는 동안 강 대표님은 단 한마디의 간여도 하지 않았다. 지금도 기억나는 말이 있다. 촬영하기 전 대표님이 ‘마음대로 찍어라, 대신 촬영 회차와 예산은 맞춰달라’고 했다. 외유내강은 정말이지 감독이란 직책이 뭘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안다. 물론 공감한다. 고심하는 과정에서 나 역시 많이 배웠다.”





“오죽하면 주연배우들이 나더러 촬영장에 왜 이렇게 안 오냐고 묻더라. 감독, 프로듀서, 배우가 잘 만들고 있는데 왜 현장에 가서 이런저런 간여를 해야 할까. 나 역시 배우는 입장이다. 제작자는 책임지는 역할이지, 창작이 이뤄지는 현장에서 왈가왈부하는 역할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강혜정 대표는 ‘사바하’를 시작할 때는 물론 모든 과정을 마치고 관객에 내놓은 지금까지 “많이 두렵다”고 했다. ‘여교사’나 ‘너의 결혼식’ 같은 작은 규모의 영화부터 ‘군함도’ ‘베를린’ 등 대작을 두루 경험했지만 ‘사바하’는 조금 다른 면에서 그를 자극하는 듯하다.

“늘 의심한다. 내 선택이 최선의 결과를 내는 일인가를. 그럼에도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 방법은 없다. 특히 감독에겐 ‘당신의 무대에서 마음껏 하라’고 해야 한다. 그래야 ‘작두’를 타니까.”
이 말을 듣던 장재현 감독은 “그래서 작두를 탔다”면서 웃었다. 작품 세계와 달리 재치 넘치고 유쾌한 성격인 감독을 두고 강 대표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처럼 감독이 나에게 ‘들어와’라고 주문을 외우는 듯했다”며 “다양한 종교와 세계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감독의 세계에 들어갔다”고 했다.



● “스마트하고 과감한 감독, 완급조절도 능란”

-제작자의 눈에 장재현 감독은 어떤 연출자인가.



“아주 스마트하고. 영특하다. 양보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과감하다. 완급조절이 능란하다. 감독은 비즈니스적인 마인드와 예술적인 취향을 갖고 있어야 살아남는다. 그런 면에서 분명 깨어 있다. 주변에서 찾아보면 류승완 감독과 성향이 흡사하다.”



-어떤 성향이 비슷한가.



“뒤끝 없는 것?”





“아니야~. 하하!”





“합이 있다. 농담을 해도 ‘쿵! 짝!’이 맞다. 류승완 감독님 아이디어를 내가 슥 취하기도 한다. 하하!”





“류승완 감독과 오래 일하면서 연출자의 외연과 내면이 확장되는 걸 보면 뿌듯하다. 물론 개인적으로, 남편으로 본다면 감독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장재현 감독 역시 성장과 성숙을 과감하게 이룬다. 보통내기가 아니지. 제작자한텐 어려운 감독이야.”



“베테랑 제작자의 힘을 확실히 느꼈다. 또한 류승완 감독님은 나의 마니아적인 세계관, 장르적인 습성에서 중심을 잡아줬다. 내가 빨간색, 류 감독님이 파란색이라면 그걸 섞은 중간을 찾아준 거다. 혼자라면 헤맸을 거다.”





“파란색과 붉은색이 섞이면 보라색이지만, 그 두 감독이 뒤섞여 태극문양이 나온 것 같은데? 음과 양의 조화를 이루면서.”

영화 ‘사바하’ 장재현 감독(오른쪽)과 제작자 강혜정 대표.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군대서 감독의 길 선택…“나에게 말도 안 되는 재능이”



장재현 감독은 군대서 비행기 정비담당으로 복무하다 감독의 꿈을 세웠다. 당시 선임병으로부터 ‘사람들 생명이 위험하니 손으로 하는 일은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다. 손재주가 없다는 지적이다.

복무하던 2002년 한 영화사에서 진행한 시놉시스 공모전을 보고 ‘바퀴벌레의 해결사’라는 제목의 시나리오를 써내 장려상과 상금 50만원을 받았다. “나한테 말도 안 되는 재능이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다. 복무하면서 다시 대입을 준비해 성균관대 영상학과에 진학했고, 2011년 영화 ‘특수본’ 연출부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장재현의 세계관은 어디서 출발했나.



“남들 안 하려고 하는 걸 찾다가 여기까지 왔다. 내가 의외로 밝다. 개구쟁이이고. 그러다보니 반대급부로 어두운 세계에 대한 동경이 있다. 덕후(오타쿠)다운 ‘덕심’도 많다.”



-‘덕심’이 가장 크게 발현될 때는.



“취재할 때. 그 뒤 시나리오는 과학적으로 접근하면서 쓴다. 연출할 땐 감각으로 찍고, 편집은 진짜 냉정하게 한다.”



-데뷔작보다 더 신나서 찍은 것 같다.



“이번에 처음으로 ‘영화 찍으면서 가끔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 싶었다. 하하! 그래봤자 영화 촬영 전체를 통틀어 한두 시간 정도다. 생각보다 잘 찍히면, 아! 쾌감이 있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사건을 설명해야 하는 장면들이 특히 그랬다. 영화가 설명하는 매체가 아닌 만큼 우리 영화엔 어떤 아킬레스가 존재한다.”


-앞으로 장재현의 세계는 어디로 이어지나.




“다 어둡다. 개인적으론 진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규모가 큰 영화는 찍을 자신도 없다. 작고 깊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외유내강의 방향은?



“개인적으론 앞서 내놓은 영화를 거치면서 스스로를 재정립했다. 그렇게 남은 딱 하나는 제작자로서 내 작품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는 거다. 내 작품을 지키기 위해 더 과감해질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흥행은 물론 여러 일에 책임지는 제작자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해보지 않은 장르도 원한다. 이를테면 진한 멜로?(웃음)”

강혜정 대표는 얼마 전 본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실험적인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를 출시하자고 할 때, 당시 영국 음반계를 좌우하던 음반사의 대표가 대중의 취향과 시장의 반응을 운운하며 가로막으려던 장면이다.

“그걸 보면서 ‘아, 내 모습이다’ 싶었다. ‘사바하’ 편집본을 보고 장재현 감독과 얘기하고 돌아설 때마다 문득 문득 그 음반사 사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 헛소리잖아.(웃음) 내가 마치 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남들 신경 쓰지 않는, 겁 없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고 발굴하고 싶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