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사이트 차단…샛길로 가지 뭐” 인터넷에 이미 우회접속법 떠돌아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2-19 10:4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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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캡쳐 
‘https 차단 우회 방법 안내.’

정부가 해외에 서버를 둔 음란물 및 도박 사이트 895곳을 차단한 2월 12일 밤 한 음란물 사이트에는 이런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게시글에는 안드로이드, 아이폰, PC에서 정부의 사이트 접속 차단을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이 적혀 있었다. 이해하기 쉽도록 우회 방법을 안내하는 관련 이미지가 함께 나와 있고 우회하는 데 필요한 파일을 내려받을 수 있는 사이트 주소도 함께 링크돼 있었다. 게시글이 올라 있는 사이트 운영자는 ‘인터넷 검열이 심해지고 있다. 이에 대응해 우회 접속 방법을 알려드린다’고 설명했다. 이런 글은 음란물 사이트 외에 일반 블로그나 커뮤니티 사이트에도 올라 있다.



정부가 ‘서버네임인디케이션(SNI)’ 기술을 통해 해외에 서버를 둔 음란물 사이트 접속을 차단하고 나섰지만 이용자들은 각종 방법을 동원해 정부 차단을 우회하고 있다. 조모 씨(34)는 “정부가 음란물 유통을 규제하는 강도 높은 정책을 시행했다고 했지만 차단이 된 사이트는 소수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뚫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번 차단 조치 이후 아예 음란물 유통을 비공개로 하는 모임도 늘어나고 있다. 네이버 밴드 등 소규모 모임 사이트에서 회원제로 음란물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다. 이 같은 모임의 수는 네이버에서만 4000개 넘게 검색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차단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사회적 갈등만 불러일으켰다는 지적 역시 나오고 있다. 정모 씨(26)는 “차단을 해도 음란물을 볼 방법은 수도 없이 많은데 정부가 보여주기식 정책을 펼쳤다가 욕만 먹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해외에 서버를 둔 음란물 사이트 ‘텀블러’처럼 정작 불법 몰카의 온상지로 지목돼 온 곳은 이번 차단 조치 대상에서 제외됐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내부 심의를 해 유해물이 일정 비율 이상인 사이트를 통보하는데 이 경우에만 사이트 전체 접속이 차단된다”며 “텀블러는 이 비율을 넘지 않아 차단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말했다.


음란물 유통의 원조 격인 웹하드 사이트 역시 차단되지 않았다. 국내에 서버를 둔 웹하드 사이트의 경우 특정 검색어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자체 규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음란물을 연상하는 단어를 입력하면 ‘법률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문구가 뜨는 식이다. 하지만 검색어를 조금만 비틀어도 음란물 수천 건이 화면에 뜬다.

2월 18일 오후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https 차단 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 청원에는 24만여 명이 동의했다. 20만 명 이상이 동의한 청원에 대해선 정부가 답변을 해야 한다. 권헌영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이번 같은 (차단) 방식은 처음에는 잠깐 효과가 있더라도 결국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며 “오히려 시민사회를 위축시키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훈 hun@donga.com·한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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