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각장애 학우도 즐길 수 있는 OT 기획한 연세대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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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2019-02-18 12:4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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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각 장애를 가진 김하선 씨가 2018년 11월 17일 기말고사 준비를 위해 점자교과서를 들고 서울 종로구 서울맹학교를 나서고 있다. 동아일보DB
“‘간장공장 공장장’ 빨리 말하기 게임은 하선 학우에겐 어렵지 않을까?”

“그럼 2라운드에 ‘촉감으로 상자 속 물건 맞히기’ 게임을 넣자.”



“오리엔테이션(OT) 상황을 점자로 전달하려면 누군가가 타자를 빨리 쳐야 할 텐데, 누가 속기사 역할을 맡을래?”

“18학번 8, 9명이 속기사를 자청했어. 세션별로 돌아가며 맡기면 될 것 같아.”

이달 초 연세대 19학번 신입생 OT를 기획하던 이 학교 교육계열 학생들은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OT를 준비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연세대 개교 이래 처음 입학하는 시청각장애 학우인 김하선 씨(19)를 맞이하기 위해서다.


김 씨는 2018년 대학수학능력시험 당일 전국에서 가장 늦은 오후 9시 43분까지 점자 수능 문제지를 풀어 화제가 됐다(본보 2018년 11월 19일자 A2면 참조). 그는 수시전형으로 이 대학 교육학과에 합격했다.

연세대 교육계열 학생 대표를 맡고 있는 3학년 허나연 씨는 “기사를 통해 하선 학우가 우리 과에 들어온다는 걸 알게 됐다”며 “함께 즐길 OT 및 새내기배움터(새터)를 위해 미리 하선 학우를 만나 여러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통상 신입생 OT는 게임과 응원, 학교 프로그램 안내 등으로 구성된다. 비장애 학생들은 미처 알지 못하지만 장애 학생들로서는 참여하기 힘든 내용이 많다.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면 행사 진행 내내 ‘외딴 섬’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면 누군가가 실시간으로 현장 상황을 텍스트로 입력한 뒤 점자화해 알려줘야 한다. 그나마 김 씨는 왼쪽 귀의 청력이 조금 남아 있어 누군가가 귀에 대고 큰 소리로 말해주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김 씨는 “OT 때 따로 속기사를 구할까도 생각했는데 다른 학우들이 거리감을 느낄 것 같아 고민이 많았다”며 “그런데 학교 선배들이 미리 연락을 주고 속기까지 해줘 무척 고마웠다”고 말했다.

연세대에는 2018년까지 장애 학생 72명이 재학 중이었다. 허 씨는 “가장 신경 쓰는 건 우리가 몰라서, 미처 생각지 못해서 하선 학우가 배제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라며 “개학에 앞서 이런 고민을 같이 공유하고 함께 답을 찾는 분위기가 만들어져 다행”이라고 말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15년간 서울맹학교만 다닌 김 씨에게 대학생활은 그 자체가 도전이다. 맹학교는 현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몇 개인지, 복도 어디쯤에 전기 스위치가 있는지 모두 꿰고 있다. 모든 시설이 장애를 고려해 갖춰져 있다. 하지만 대학은 전혀 다르다. 특히 연세대는 신입생들이 1학년 때 모두 송도캠퍼스에서 기숙생활을 한다. 김 씨에겐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맞는 ‘날것 그대로의 세상’인 셈이다.

연세대 측도 처음 맞는 시청각장애 학생을 위한 준비에 분주하다. 이삼현 연세대 인권센터 장애학생지원실장은 “장애 학생들에게 학습에 필요한 대필, 이동보조, 식사보조 등 인력지원을 하는데, 시청각 장애가 있는 하선 학생에게는 2명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의시간 중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실시간으로 점자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당 가격이 600만 원인 점자전달단말기도 필기용과 읽기용으로 2대를 지원한다. 이 실장은 “지난 학기 한 청각장애 학생이 학점 4.3으로 만점을 받았다”며 “필요한 지원을 하면 장애 학생들의 학업적 성취에 한계가 없다”고 말했다.

임우선 imsun@donga.com·김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