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기… 여전히 그리운 ‘바보의 삶’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2-11 10:4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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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16일은 김수환 추기경(1922∼2009) 선종(善終·별세를 의미하는 가톨릭 용어) 10주기다. 김 추기경은 1970, 80년대 민주화운동 산파이자 종교와 이념, 계층을 뛰어넘은 우리 사회의 정신적 지주였다. ‘고맙다, 서로 사랑하며 살라’던 바보의 삶은 40만 추모객이 몰리는 명동의 기적으로 이어졌다. 천주교서울대교구는 16일 오후 2시 명동대성당에서 염수정 추기경 주례로 추모 미사를 봉헌하는 것을 비롯해 사진전과 음악회, 심포지엄 등 다양한 행사를 연다. 김 추기경과 40년 가까운 인연을 맺은 문학평론가 구중서 씨(83)와 선종 당시 교구 문화홍보국장이자 장례위원회 홍보담당으로 활동했던 허영엽 신부(59)를 만났다.》 

허영엽 신부는 “추기경님이 강론 때마다 쓰고 남는 것을 주는 게 아니다. 소중한 것을 나누면 열매가 더 크게 맺힌다고 강조했다”라며 헌신의 삶을 떠올렸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눈높이 맞춰 낮게 소통하던 분”



장례위 홍보담당 허영엽 신부

40만 추모객 깜짝… 요즘 ‘어른의 부재’ 실감수녀원서 반찬투정 “그래야 저들도 잘 먹지”

―선종 당시 장례위원회에서 홍보를 담당했다. 벌써 10주기다.



“너무 빠르다. 사제들과 대화할 때 요즘도 김 추기경님 얘기가 자주 나온다. 선종하셨지만 사제들과 항상 같이하고 계시다.”



―명동의 기적이 생생하다.



“당시 의료진 말도 있고 해서 봄은 지날 것으로 예측했다. 교회 가장 큰 어른의 마지막 길을 잘 배웅해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그렇게 추모객이 몰릴 줄 몰랐다. 명동성당에 처음 왔다는 분들도 있었다. 신앙에 관계없이 많은 분들이 빈소를 찾아 우리 사회의 어른을 잃은 슬픔을 표현한 것 같다.”




―추기경 선종 이후 어른의 부재(不在)를 말하는 이들이 많다.



“종교와 계층에 관계없이 소통했던 추기경의 삶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어른이 없다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의 불행이다.”




―10주기 행사는 어떻게 진행하나.



“행사가 아니라 그분이 남긴 메시지를 기억하고 되새긴다는 의미로 준비하고 있다.”


―추기경의 유머와 겸손한 화법은 화제였다.




“원래는 말씀이 많지 않고 좀 무거운 분위기였다. 이게 맞는지 모르지만, 1984년 카리스마와 유머로 잘 알려진 요한 바오로 2세 방한이 변화의 계기가 됐을 것 같다. 당시 추기경이 4박 5일 동안 밀착해 교황님과 시간을 보냈다. 동료 신부에게 들은 얘기도 있다. 추기경이 청빈한 생활로 유명한 ‘작은 자매수도회’만 가면 안 하던 반찬 투정을 해서 수녀님들이 많이 긴장했다고 한다. ‘내가 투정해야 저 사람들이 고기라도 한 점 먹을 게 아니야’라는 게 추기경님 말씀이었다고 한다.”



―말년에 보수화했다는 비난은 어떻게 생각하나.



“추기경은 억압받던 시기에는 예언자적 역할이 중요하지만 민주화 이후에는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여겼던 게 아닌가 싶다. 일부의 비난에 대해 가타부타 반응은 하시지 않았다.”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닮은 점을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교황님 방한 때 잠깐 뵈었지만 주변을 편하게 해 주던 기억이 난다. 눈높이에 맞춰 낮게 소통하는 것은 두 분의 공통점이기도 했다. 우리 교회가 반성하고 배워야 할 점이다.”



―김 추기경 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핵심은 사람이다. 부딪치는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종교에 관계없이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이 어른은 먼저 다가오는 분이었다. 인사를 드려야 하나 마나 망설일 때 ‘자기 본당이 어디였지’라며 말을 먼저 꺼냈다. 말이 되지 않는 얘기도 무시하는 법 없이 끝까지 듣고 대꾸했다. 평신도 단체에서 주관한 ‘내 탓이오’ 운동도 그분 캐릭터와 연결돼 큰 반향을 얻었다.” 

명동시대의 기억을 더듬고 있는 구중서 문학평론가. “추기경은 교회와 시대적 사명에 충실했지만 가난한 이웃들이 있는 시골 성당 신부 시절을 그리워했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인간존엄 정신 사회서도 추구” 문학평론가 구중서 씨



‘창조’ 발행인-편집주간으로 만나 40년 인연… 말년에 변해? 그런말 하는 사람들이 정치적

―최근 ‘김수환 추기경 행복한 고난’(사람이야기) 증보판을 냈다.


“큰 틀은 바뀌지 않았지만 남북 정상이 만나는 화해와 평화의 시대에 맞춰 그 의미를 짚었다. 1971년 잡지 ‘창조’ 창간사에서 한 추기경의 말씀이 핵심이다. ‘이데올로기를 떠나 인간회복의 정신으로 이 땅의 진실한 역사 창조에 우리 모두가 이바지해야 한다.’”



―‘창조’ 발행인과 편집주간으로 만나 40년 인연을 맺었다. ‘김수환 추기경 정신’은 무엇인가.



“추기경 삶의 일관된 방향은 성서의 복음정신에 따른 인간존엄이다. 이 가치가 교회뿐 아니라 사회에서 이뤄지게 하기 위해 헌신한 삶이었다.”



―책에는 인간 김수환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 적지 않다.



“저에 대한 추기경의 호칭은 항상 ‘구 선생님’이었다, 최고위 성직자이고 15년 가깝게 연상이었는데도. 안동성당 주임신부 시절에는 고해소에서 신자들에게 필요한 만큼 돈을 쥐여주기도 했다. 단, 얼마 받았다는 얘기는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일부에서 추기경이 말년에 변했다, 정치적이라고 비난한다.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교회를 위한 교회가 아닌 세상을 위해 봉사하는 교회가 되라’는 게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년)의 정신이다. 독일 유학 시절 공의회를 접한 추기경은 누구보다 이 정신에 충실했다. 민주화 이후 특정한 정치적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렇게 비판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정치적이다.”



―그 비난에 대한 추기경 반응은….



“‘세상이 원래 그런 거야’ ‘인생은 고해(苦海)’라며 웃으시더라. 추기경은 자신을 비판하고 싫어하는 사람과도 대화했다. 인간이 오류를 범하더라도 존엄성은 남아 있다는 게 추기경 생각이었다.”



―추기경은 자신을 바보로 자처하기도 했다.



“가톨릭 신자나 비신자, 가진 것이 많거나 적거나 상관없이 눈높이에서 사람들을 대하는 겸손이 몸에 배어 있었다. 말년에는 더 경청하고 자주 웃고 유머도 많아졌다. 설악산 등산 때 일화다. 하산 길에 누군가 모자 쓴 점퍼 차림의 추기경에게 ‘많이 뵌 얼굴’이라고 하자 추기경은 ‘저도 추기경 닮았다는 얘기 종종 듣습니다’라고 대꾸했다. 서울 삼선교의 한 식당에 모시고 갔는데 초등학생이 사인을 받으러 왔다. ‘○○는 하느님도 예뻐하실 거야’라고 써 주시더라.”



―10주기를 맞는 소감은?



“생전에 곤욕을 치르면서 주장하던 화해와 평화의 역사가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되고 있으니 추기경이 보여준 모범과 실천이 새삼 존경스럽고 그립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