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고도 너희가 다 보여… 참 유니크한 선생님이지?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2-06 13: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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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삼열 교사가 1월 29일 서울 강남구 수서중 301호 자신의 국어교실에서 웃고 있다. 제 교사가 손에 들고 있는 건 늘 곁에 있는 시각장애인용 점자정보단말기다. 단말기에는 입력 키보드와 점자 출력 패드가 있다. 이걸로 출석부에 학생 특징을 입력하고 수업을 준비한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제는 눈 감고도 갈 수 있지만…. 소리로 길을 그려야 하는 나에게는 아득해지는 순간도 있었다. 2015년 처음 이 학교에 왔을 때도 뛰어다니는 녀석들 틈에서 교실을 찾느라 얼마나 마음 졸이며 헤맸던가. 오랜만에 학교에 들어서니 귀가 웅웅 울린다.

‘계단 15칸 올라간 다음 오른쪽으로 두 걸음, 꺾어지는 부분이 나오면 끝까지 간다.’



4년 전부터 수없이 외웠던 나만의 공식이 아득하기만 하다. 29일 서울 강남구 수서중학교에서 만난 제삼열 교사(34)의 이야기다. 시각장애인 1급인 제 교사는 국어 선생님이다. 1월 25일 개학을 해 시끌벅적한 학교와 달리 그는 고요히 새 학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아이들을 보며 학창시절을 떠올린다. 마음껏 읽지 못하니 더 읽고 싶었다. 서울맹학교를 졸업한 그가 대구대 국어교육과에 간 이유다. 제 교사는 국어 선생님을 꿈꿨다. 하지만 임용시험 스트레스로 안압이 높아져 눈 수술을 반복했다. 안압이 올라가 엄청난 통증에 시달렸다. 임용시험 공부를 잠시 접어야 했던 그는 3년간 기업에서 직장인들 어깨를 풀어주는 헬스키퍼로 일했다. 그래도 교사의 꿈을 접을 순 없었다. 재수 끝에 2014년 임용시험에 합격한 순간 잘 보이지 않는 그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제 교사가 경기지역의 중학교를 거쳐 2015년 수서중에 부임한다고 하자 학교는 낡은 복도 바닥을 뜯었다. 학교 건물에 들어서 1층 교무실과 엘리베이터를 타는 곳까지 점자블록을 깔았다. 딱딱딱. 흰 지팡이로 조심스럽게 바닥을 내디디며 학교에 도착한 제 교사의 입에 미소가 번졌다.

“선생님의 불편한 점은 뭘까? 1번 눈, 2번 코, 3번 입!”

이번에도 이런 질문을 던져볼까…. 제 교사는 다가올 3월 첫날 자기를 어떻게 소개할지 고민 중이다. 새 학기마다 가장 긴장되는 일이다. 초등학교를 막 졸업한 아이들에게 제 교사의 모습은 낯설다. 선천성 녹내장을 갖고 태어난 제 교사는 윤곽 정도는 보이지만 눈을 거의 뜨지 못한다.



일부러 말 걸어 아이들 개성 기억


시각장애 선생님을 처음 만나는 학생들에게 무작정 ‘궁금한 게 뭐냐’고 물으면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시각장애인용 흰 지팡이를 들고 “이게 뭘까”라고 물어야 “지휘봉”, “사랑의 매”란 답이 돌아오면서 분위기가 자연스러워진다. “장애를 진지하게 설명하지 말자는 게 교사로서 제 원칙이에요.” 제 교사가 말했다.

그는 스스로를 “유니크한 교사”라고 소개한다. 제 교사의 교실에서 ‘선생님은 다 알아’가 통하지 않는다. 수업이 시작되면 제 교사는 아이들에게 “안 온 친구들 누가 있지?”라고 묻는다. 장애인 교사 보조원에게는 “전자칠판 화면을 열어 주세요”, “제가 불러드리는 걸 칠판에 써주세요”라고 부탁한다.

“언어폭력 관련해서 오늘 뭘 했는지 선생님에게 말해줄래?”

토론 수업 때면 제 교사는 매번 20명 남짓 되는 학생들에게 일일이 묻는다. 교과서를 덮고 조별활동 내용을 채점할 때가 많다. 보이지 않아도 제 교사 앞에선 진실만 통한다. 누군가 거짓말을 하면 학생들이 언제든 “얘 거짓말해요”라고 알려준다.

‘김민지(가명). 뽀로로를 닮았다고 함. 아나운서가 꿈. 엄마한테 잔소리를 들어서 기분이 안 좋음.’


새 학기가 시작되면 제 교사가 매일 들고 다니는 ‘시각장애인용 점자정보단말기’ 속 출석부의 아이들 이름 옆에는 세세한 특징이 기록된다. 그가 학생 200여 명의 목소리와 이름을 기억하는 방법이다. 1학년 때 가르친 후 한동안 못 봤던 학생이 복도를 지나가면서 “저 누군지 아세요”라고 할 때도 있다. 그는 대번 “○○구나”라며 웃는다.

“○○이 떠들고 있지? 선생님이 조금 전에 뭐라고 했어?”

소곤거렸을 뿐인데 제 교사가 귀신같이 알아채면 학생들은 깜짝 놀란다. 장난꾸러기는 일부러 떠들고 “선생님! 저 떠들었는데 뭐라고 안 하세요”라고 묻는다. 제 교사는 “말하기 좋아해서 떠드는 애는 절반도 안 된다. 일부러 말을 건다”고 했다.



점자교과서 늘 늦게 나오니 난감

그는 교과서 진도를 순서대로 나가지 않고 학생들에게 말할 기회부터 준다. 특히 3월 초에는 자기를 소개할 그림을 그려서 설명해보라고 한다. 제 교사는 “말을 잘 안 한다고 개성이 없는 건 아니다”며 “관심을 가지면 기억하게 된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방학 때면 더 바빠진다. 겨울방학에 열심히 준비해야 5월 5일 어린이날 전까지 수업할 분량을 만들 수 있다. 5∼7월 수업할 내용은 3, 4월에 열심히 준비한다. 더 빨리 하고 싶어도 새 교과서용 점자 교과서가 늦게 나오니 초조하다.

국립특수교육원이 시각장애인 교사에게 필요한 교과서를 조사해 일괄적으로 점자책을 만들어준다. 하지만 보통 개학 열흘 전에야 교과서의 첫 단원을 보내준다. 최종 점자 교과서는 3월 말에야 나온다. 제 교사는 교사용지도서를 가족이나 보조원에게 읽어달라고 해서 중요한 부분을 기억한다.

2018년 12월 마지막 수업. 제 교사가 말했다. “너희들이 운이 나빠서 나하고 만났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전체 인구의 10%가 장애인이잖아. 대학생 되고 직업 갖게 되면 어차피 만날 사람을 미리 만났으니 좋은 쪽으로 도움될 거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지체장애 아내와 여행책 쓰기도

제 교사는 학교 바깥의 사람들에게도 장애를 알리고 있다. 2014년 지체장애 1급 아내와 서로의 눈과 다리가 돼주겠다고 약속했다. 아내와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해 국내와 유럽을 여행한 경험을 담아 지난해 ‘낯선 여행, 떠날 자유’라는 책을 썼다. 2016년에는 헬스키퍼로 일한 경험을 가지고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산문부 대상을 받았다.

그는 오늘도 ‘나는 아이들에게 몇 점짜리 선생님일까’를 고민한다. 내 자리에 다른 선생님이 왔다면 아이들이 덜 불편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아리다. 제 교사는 “그런 생각을 해봐야 나한테도 좋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며 “나를 ‘유니크한 선생님’으로 기억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