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소설 작가로 변신한 현직 형사 ‘설득력 100%’

이예리 기자
이예리 기자2019-01-29 18: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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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켄트 주에 거주하는 리사 커츠(Lisa Cutts·47) 형사는 평소 책을 그리 가까이 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어릴 적 소설을 즐겨 읽기는 했지만 형사가 된 뒤로는 살인, 강도, 납치 등 강력사건을 해결하느라 퇴근하면 독서는 커녕 침대에 쓰러져 잠들기 바빴습니다.

그런 커츠 씨가 글을 쓰기로 결심한 것은 2011년 남편과 함께 그리스로 휴가를 떠났을 때였습니다. 평소에 못 읽었던 책들을 바리바리 챙겨 휴가지로 떠난 그는 범죄분석 전문가였던 베스트셀러 작가 엘리자베스 헤인즈(Elizabeth Haynes)가 쓴 스릴러 소설을 읽고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는 미러(Mirror)등 현지 언론에 “첫 장을 읽자마자 매혹됐다. 헤인즈 씨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같은 분야에 종사했다는 걸 알게 되니 친근감이 들었다. 나도 수사 경력을 살려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휴가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커츠 씨는 헤인즈 씨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소감을 전하고 자신도 책을 쓰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헤인즈 씨는 매우 기뻐하며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동경의 대상이었던 헤인즈 씨의 격려에 힘입어 커츠 씨는 정말로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간의 형사 생활을 토대로 니나 포스터(Nina Foster)라는 형사 캐릭터를 창조한 그는 매일 저녁시간과 주말을 이용해 짬짬이 소설을 써 내려 갔습니다.


“해리포터 작가인 J.K. 롤링처럼 유명한 사람도 무명시절에는 출판사로부터 수십 번 퇴짜를 맞았다는 이야기도 위로가 됐다. 거절당해도 상심할 필요 없다고 마음먹었더니 훨씬 편해졌다.”

리사 커츠 씨가 집필한 소설들. 사진=lisacutts.co.uk
놀랍게도 커츠 씨의 소설을 출판하고 싶다는 출판사가 곧 나타났습니다. 그레이엄(Graham) 사로부터 출판 제의를 받은 그는 낮에는 형사, 밤에는 추리소설 작가로서 흥미 넘치는 인생을 살게 됐습니다. 2019년 현재 커츠 씨는 니나 포스터를 주인공으로 한 추리소설 다섯 권을 출판했습니다.

추리소설 작가로 이름을 얻었지만 형사 일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커츠 씨. 소설을 쓰다가 막히면 ‘현장’으로 돌아가 사건을 해결하며 다시금 추진력을 얻는다는데요.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오히려 한 번 컴퓨터 앞에 앉았을 때 더욱 집중해서 작업할 수 있다고 합니다.

실제 수사 경험을 토대로 쓴 덕에 그의 소설은 현실적이고 생동감 있습니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만능 형사는 없으며 현장감식반 등 다른 팀과 협동을 해야만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확실히 하는 점, 인간과 정의에 대한 믿음이 글 속에 살아있다는 점 등이 호평 받습니다.

그렇다면 형사 겸 작가로서 어려운 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커츠 씨는 “실제 있었던 사건에서 소설의 소재를 떠올리기는 하지만, 혹시라도 범죄 피해자들이 상처받는 일이 없도록 현실과 소설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두려고 늘 노력한다”고 말했습니다. 범죄는 추리소설의 소재이기 이전에 엄연히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때로는 현실이 소설보다 더 충격적이고 슬프다. 불치병에 걸린 배우자를 자기 손으로 살해한 사람, 아동 학대 사건, 이성을 잃고 자식을 살해한 어머니 등 안타까운 사건을 겪으며 많은 것을 느꼈다”며 형사로서의 진중함을 글에도 녹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