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물품보관함에 짐 맡겼다가… “문 안열려 낭패”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1-28 12: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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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서울지하철 2호선 삼성역에서 한 시민이 물품보관함 ‘해피박스’를 이용하려고 서 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직장인 김모 씨(28·여)는 두 달 전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당황스럽다. 소지품을 넣어뒀던 지하철 역내 물품보관함이 비밀번호를 눌러도 열리지 않았다. 평상시 쓰던 번호를 잘못 쳤나 싶어 주변 숫자까지 조합해 눌러봤지만 계속 ‘비밀번호 오류’ 메시지가 떴다. 물품보관함 겉면에 적힌 콜센터로 전화를 건 김 씨는 더욱 당황했다. 전화를 예닐곱 번이나 했지만 통화 중이거나 신호음이 한참 가다 저절로 끊어져 버리곤 했다.

마음이 다급해진 김 씨는 역내 고객안내센터를 찾아갔다. 하지만 고객안내센터에서는 “물품보관함은 외부 업체가 관리해서 우리는 열 방법이 없다”는 답변만 했다. 다시 친구와 번갈아가며 콜센터에 10여 차례 전화한 끝에 겨우 통화할 수 있었다. 그는 “콜센터에서 원격으로 보관함 문을 열어주기까지 40분 넘게 걸렸다. 지하철역에 있는 보관함인데 역에서 ‘나 몰라라’ 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지하철 역내 물품보관함 ‘해피박스’는 27일 현재 270개 지하철역의 332곳에 있다. 각 보관함 개수로 따지면 약 1만 개다. 해피박스는 서울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가 아니라 교통공사의 자회사인 서울도시철도엔지니어링이 관리한다. 교통공사는 지난해 초 외주로 운영하던 물품보관함을 직접 운영하려고 해피박스를 기획했다. 그러나 역무원 업무 부담이 너무 커지는 데다 따로 전담 부서를 만들 여력도 없어 그해 9월 역내 시설물을 관리하는 도시철도엔지니어링에 맡겼다. 이때 물품보관함의 비상키나 마스터키를 역사에 비치하지 않게 됐다.

그러다 보니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속수무책인 경우가 생긴다. 지난해 11월 KT 서대문구 아현지사 지하 통신구 화재로 일대 통신이 마비되자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물품보관함도 시스템 오류를 일으켜 문이 열리지 않았다. 출국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짐을 꺼내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지만 통신 마비로 콜센터와도 연결되지 않았다. 결국 역무원이 사물함 문을 부숴야 했다.

이 사건 이후 교통공사와 도시철도엔지니어링은 대책을 논의했다. 지난해 12월 도시철도엔지니어링 측은 각 역에 마스터키를 하나씩 놓자고 제안했지만 교통공사 측은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역무원 부담과 책임이 커지고 물품보관함을 도시철도엔지니어링이 관리하는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교통공사 측은 “역내 자판기가 돈을 삼켜서 고객이 항의할 때가 있지만 역에서 책임지지 못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도시철도엔지니어링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7일∼올해 1월 17일 콜센터에 걸려온 문의 전화는 평일 평균 280건, 주말 평균 452건 등 1만1000여 건이었다. 문의 전화 대부분은 사용법을 묻는 장·노년층이 걸었고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내용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 중 콜센터가 바로 받지 못한 전화는 408건이었다. 이들에 대해서는 늦어도 10분 이내 콜센터 측이 다시 전화를 걸었다. 콜센터에서는 주간 7명이 근무하며 야간에는 두세 명이 일한다. 도시철도엔지니어링 측은 “물품보관함 운영을 시작한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아 시스템이 안정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 계속 개선해 나가고 있다”며 “주말에 전화가 몰리면 콜센터에서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해명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