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스파이라인 맡은 ‘코드명 존 플레밍’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1-25 12: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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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비핵화 협상이 교착 국면이던 2018년 12월 초. 승용차 2, 3대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으로 잇따라 들어섰다. 한국계 미국인이 긴장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판문점 북-미 물밑접촉을 위해 극비 방한한 앤드루 김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KMC)장이었다. 북-미 고위급 회담이 무산되고, 공식 외교채널이 흔들리자 ‘스파이 라인(CIA-북한 통일전선부)’이 다시 가동된 것. 김 전 센터장 뒤에는 50대 백인 남성이 따르고 있었다. 김 전 센터장은 북측 인사들에게 이 백인 남성을 자신의 후임이라고 소개하면서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했다고 한다. 2017년 5월 창설된 KMC를 이끌면서 북-미 막후조율을 주도한 그가 퇴임을 앞두고 신임 센터장을 북한에 알리면서 인수인계를 하는 자리였다.

1월 24일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앤드루 김의 뒤를 이은 후임 코리아미션센터장 이름은 ‘존 플레밍’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정보 요원 특성상 가명일 수도 있지만 CIA 내에선 이 이름으로 불린다”고 전했다. 1966년생으로 CIA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중동 지역에서 주로 활동했다고 한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서 현장요원을 시작으로 정보분석관과 지부장을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센터장은 지나 해스펠 CIA 국장에게 플레밍을 후임으로 추천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 낙점했다고 한다. 또 다른 정보 소식통은 “해스펠 국장과 플레밍 센터장이 과거 한 부서에서 근무해 서로 잘 아는 사이”라고 말했다. 김 전 센터장의 뒤를 이어 북-미 물밑접촉을 이끌 실무 책임자에 해스펠 국장의 신임이 두터운 인물이 기용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난해 12월 판문점에서 북측 통전부 라인과 안면을 튼 플레밍 센터장은 최근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일행과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얼굴 등 추가적인 신상 정보는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김 전 센터장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행적이 노출된 데 부담을 느낀 CIA가 신임 센터장의 보안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몇몇 정보 분야 전문가는 플레밍의 이름이 영화 ‘007’ 시리즈의 원작자인 이언 플레밍과 같다는 점 등을 거론하며 CIA가 신임 센터장을 북핵 무대에 데뷔시키며 아예 ‘코드명’을 이렇게 정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또 다른 외교 소식통은 “CIA의 해외 공작 요원들은 신분을 세탁한 ‘블랙 요원’인 경우가 많다. 필요할 경우 진짜 정체를 감추는 것은 다반사로 있는 일”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선 플레밍 신임 센터장이 북핵보다는 중동 전문가인 만큼 직접적인 북핵 실무 협상 못지않게 북 수뇌부의 의도를 분석하고, 협상 결렬 시 ‘플랜B’ 같은 대응전략 수립에도 주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한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