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검 치우자”… 女수련생 때려 숨지게 하고 증거없앤 무예도장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1-25 09:41:48
공유하기 닫기
지난해 9월 16일 오후 7시경. 서울 종로구 인사동 거리의 한 건물 4층에 있는 전통무예도장 관장 문모 씨(50)가 의식을 잃은 한 여성을 들쳐 업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이 도장 수련생 이모 씨(32)였다. 도장 강사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소방대원이 이 씨를 황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결국 숨졌다.

“‘쿵’ 하는 소리가 나 도장 밖으로 나가 보니 3, 4층 사이 계단 화장실 앞에 이 씨가 쓰러져 있었다.” 관장 문 씨와 김모 씨(50·여)를 포함한 이 도장 강사 3명은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경찰에 똑같은 진술을 했다.



하지만 병원에 도착한 경찰은 등과 어깨 등 이 씨 몸 곳곳에서 멍 자국을 발견했다. 경찰은 이 씨의 죽음이 자연사나 단순한 변사가 아닐 수도 있다고 의심했다. 이 씨 사망 후 간접 증거들을 차곡차곡 쌓은 경찰은 문 씨를 이 씨에 대한 특수폭행치사 혐의로 구속했다.



○ 직접 증거 없지만 간접 증거 속속 확보


경찰은 곧바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지속적으로 가해진 신체 손상과 함께 사망 당일 강력한 외부 충격에 의해 사망했다’는 부검 결과가 나왔다. 이 씨 몸 곳곳의 멍 자국은 “끝부분이 둥글게 구부러진 가는 모양의 물체에 맞아 생긴 것으로 추정한다”는 부검의 의견도 있었다.
경찰은 이 도장에서 수련 때 목검을 사용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경찰은 문 씨가 이 씨를 폭행한 사실도 확인했다. 이 씨가 숨지기 4개월 전인 지난해 5월 강의 영상에 문 씨가 이 씨의 머리와 등, 종아리를 수차례 때리는 장면이 담긴 것. 강의에 집중하지 않고 휴대전화를 만졌다는 게 폭행의 이유였다.

“가르침을 잘 따르지 못한다고 매를 맞았다.” 문 씨의 폭행 흔적은 이 씨가 생전에 작성한 노트에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관장과 강사 3명은 모두 “화장실 밖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응급조치를 취한 뒤 구급차를 불렀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폭행 혐의를 부인했다. 경찰이 도장을 찾아 갔을 때 과거 강의 영상에서는 보였던 목검과 목검 거치대가 사라지고 없었다.

도장 안에는 폐쇄회로(CC)TV도 없었다. 다행히 건물 1층 CCTV에 수사에 도움이 될 만한 단서가 있었다. 이 씨가 병원으로 이송되기 약 1시간 전 택시에서 내린 뒤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모습이 잡힌 것. 경찰은 이 씨가 숨지기 1시간 전까지만 해도 건강하게 뛰어 들어간 것으로 봤을 때 건물 안에서 폭행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봤다. 경찰은 3층 CCTV를 통해 이 씨가 도장이 있는 4층까지 올라갔다는 것도 확인했다.




○ 관장, 치밀하게 증거인멸



관장과 강사들은 치밀하게 증거인멸을 시도했다. 지난해 10월경 경찰이 압수수색을 위해 도장을 급습했을 때 김 씨는 “옷을 갈아입겠다”며 탈의실로 들어갔다. 김 씨는 탈의실 창문 틈에 무언가를 숨기려 했다. A4 용지에 적어놓은 ‘경찰 (수사) 대응 요령’이었다. ‘목검은 부러져서 치워버렸다고 하자’ 등 입을 맞춘 정황들이 담겨 있었다.

이들은 또 이 씨 사망 직후 모두 휴대전화를 교체했다. 김 씨는 “내가 4명의 휴대전화를 모두 중고로 팔려고 갖고 있다가 택시에서 잃어버렸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은 이들이 사용하던 휴대전화를 아직 찾지 못했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9일 문 씨를 구속하면서 김 씨도 증거은닉혐의로 함께 구속했다. 증거 인멸에 가담한 나머지 두 강사도 불구속 입건했다.

서울대를 졸업한 이 씨는 숨지기 약 2년 전부터 이 도장의 수련생이었다고 한다. 문 씨는 자신이 가르치는 무예가 정신과 육체를 수련해 인간의 모든 행위를 개조한다는 전통무예라고 평소 주장했다. 경찰에 따르면 문 씨는 스스로를 단군 이전부터 내려오는 한 전통무예의 전수자라고 밝히기도 했는데, 경찰은 “평소 이 씨가 문 씨에게 정신적으로 종속돼 있었던 같다”고 했다.


김민찬 goeasy@donga.com·구특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