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테스크한 연출-생생한 좀비 묘사로 공포감 극대화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1-24 1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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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괴질이 유행하여 서쪽에서부터 들어왔는데 열흘 사이에 도하에서 발생한 사망자의 수효가 수만 명에 달하였다.’ 2011년 김은희 작가는 조선 23대 임금 ‘순조실록’의 한 구절을 보고 백성들이 좀비로 변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3년 뒤 만화 ‘버닝헬(신의 나라)’에 이 이야기의 일부를 풀어낸 김 작가가 마침내 넷플릭스를 만났다.》 

세계 27개국 언어 자막과 12개국 더빙으로 제작한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은 25일 6회분을 한꺼번에 공개한다. 역병이 번진 동래 의원 지율헌의 의녀가 좀비로 변해 버린 백성들에게 물어뜯기는 장면. 넷플릭스 제공
1월 25일 세계 190여 개국 가입자 1억3900만 명에게 공개되는 6부작 드라마 ‘킹덤’은 15, 16세기 조선에서 권력에 밀린 세자가 역병의 비밀을 파헤치는 좀비물이다. 국내 최초로 넷플릭스에서 제작된 이 드라마는 방영 전부터 시즌2 제작이 확정돼 화제를 모았다.



조정의 실세인 영의정 조학주(류승룡)가 임금이 머무는 강녕전 출입을 금하자 세자 이창(주지훈)은 임금이 죽었다는 소문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호위무사 무영(김상호)과 함께 부산 동래로 길을 나선다. 임금의 병을 치료했던 의원을 찾아 동래의 지율헌에 당도하지만 마을에는 죽은 이들의 시신만 가득하다.

‘킹덤’은 시작부터 상반된 이미지의 충돌을 통해 충격을 극대화한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답게 그로테스크한 연출도 볼거리. 좀비가 된 임금이 곤룡포를 입고 쇠사슬에 묶여 포효한다.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든 고요한 연못 아래에는 나무에 묶인 시체들이 우글거린다. 지율헌에서 좀비 떼가 사람을 물어뜯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쌓는 장면은 압권. 김 작가는 “이 드라마를 온전하게 구현할 수 있는 플랫폼은 넷플릭스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만큼 생생한 좀비 묘사에 심혈을 기울였다. 스산한 음향과 함께 흘러나오는 좀비의 기괴한 소리에 흠칫 놀랄 때가 많다. 미국을 제외한 국가의 드라마 중 가장 많은 제작비인 회당 20억 원을 투입해 좀비 특수분장과 컴퓨터그래픽(CG)에 공을 들였다. 온몸의 관절이 꺾이며 좀비로 변해 가는 배우들의 연기는 리얼함을 넘어 두려움을 준다. 김성훈 감독은 “가장 동양적인 이야기지만 외피는 서구에서 나온 좀비 장르다. 이 둘의 융합이 신선하게 다가갈 것”이라고 했다.


좀비물이기 이전에 ‘킹덤’은 굶주림에 관한 이야기다. 동래의 초가집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지율헌의 의녀 서비(배두나)는 백성들이 임금에게 물려 시신으로 돌아온 아이를 삶아 먹었다는 사실을 알고 오열한다. 권력을 향한 욕망도 또 다른 배고픔 중 하나. 김 감독은 류승룡에게 “세자를 반역죄로 몰아 권력을 잡으려 하는 조학주를 연기할 때,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년)에서 자신의 대의를 위해 괴물로 변해 가는 허균을 열연했던 기억을 떠올려 달라”고 주문했다. 류승룡은 “배고픔, 권력에 대한 탐욕은 시공간적 제약을 벗어나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줄 것”이라고 했다.

대작 드라마답게 2017년 10월부터 6개월간 경기 포천시, 전북 고창군 등 전국을 누볐다. 실감나는 좀비들의 추격 장면을 찍기 위해 일주일 동안 1300여 명의 배우, 스태프들이 산속에서 횃불을 들고 촬영에 임했다. 배우 주지훈은 발목에 골절상을 입었고 김 감독은 카메라에 설경을 담다가 차를 폐차해야 할 정도로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제작진의 노고(?)와는 별개로, 조선시대 상황을 설명하는 드라마의 초반 전개가 다소 장황하다. 좀비가 된 임금, 역병에 맞서는 세자 등 기본 설정은 지난해 개봉한 영화 ‘창궐’을 떠오르게 한다. 사전에 공개된 예고편만 보고도 “소재가 신선하지 않다”는 팬들의 반응이 잇따랐다. 공교롭게도, 감독도 동명이인. 그럼에도 영화 ‘끝까지 간다’(2014년), ‘터널’(2016년) 등 익숙한 이야기를 박진감 넘치게 풀어낸 김 감독의 첫 드라마 도전의 결말이 궁금해진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