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10년 지났지만… 서울 곳곳 아직도 ‘재개발 화약고’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1-21 09: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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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사업을 위해 철거를 앞둔 서울 중구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구역(세운3구역)’의 한 점포 셔터문에 ‘용산참사 잊었느냐’라는 철거 반대 문구가 쓰여 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용산참사가 눈앞에 현실로 돌아왔다! 청량리에서 참사가 난다면 ○○건설 때문이다.”

1월 17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성바오로병원 인근 폐건물. ‘588집창촌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회원 2명이 옥상에 올라 10년 전 ‘용산참사’(2009년 1월 20일)가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 명은 목에 쇠사슬을 묶어 전봇대와 연결해 놓고 있었다. 건물 아래에 있던 비대위 회원 20여 명은 재개발에 따른 강제 철거를 규탄했다.



서울 용산구 용산4구역 재개발 현장에서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10년이 지났다. 당시 남일당 건물을 점거한 철거민들이 경찰과 대치하던 중 화재가 나 시위를 벌이던 전국철거민연합회 소속 회원 및 세입자 5명과 경찰관 1명 등 모두 6명이 숨졌다. 이후 재개발과 철거를 둘러싸고 빚어지는 충돌을 막기 위한 제도들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철거현장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약고처럼 곳곳에 산재해 있다.



○ 재개발 갈등 평행선


588집창촌 비대위 회원들은 13일부터 옥상 시위를 시작했다. 이들은 휘발유 등 인화물질을 갖고 건물 위로 올라갔다. 비대위는 세입자들에 대한 보상액을 문제 삼았다. 조철민 청량4지구연합 비대위원장은 “터무니없는 보상을 해주고 세입자들을 몰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청량리4구역 도시환경정비추진위원회는 당초 정해진 대로 보상을 진행했고,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을지면옥’ ‘양미옥’ 같은 오래되고 이름난 가게들이 있는 서울 중구 세운3구역도 재정비사업을 앞두고 세입자들과 재정비 추진위원회 측의 대립이 심하다. 17일 철거구역 내 점포 셔터에는 ‘용산참사를 잊었느냐’란 문구가 빨간 글씨로 쓰여 있었다. 상인들은 ‘단결투쟁’ ‘생존권 수호’라고 적힌 조끼를 입고 일했다. 재정비 추진위원회 측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구용모 세운3-1구역 지주공동사업추진위원회 사무장은 “새로 지은 건물에서도 장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없애는 것이 아니다. 규정대로 땅주인 75%의 동의를 얻고 진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재건축구역에서는 철거민 박준경 씨가 강제퇴거를 당한 뒤 2018년 12월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 제도 바뀌었지만 화약고는 ‘진행형’


용산참사 이후 재개발 현장을 둘러싼 법과 제도가 많이 바뀌었다. 경찰이 주도하는 강제 진압은 사실상 없어졌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상 철거지역 상가 세입자에 대한 휴업보상금도 기존 3개월 치에서 4개월 치로 늘렸다. 경비업법도 경비업 허가기준을 강화하고 관련 전과자의 고용을 막는 등 용역폭력 방지 방안을 담아 개정됐다. 서울시는 2013년 ‘주거시설 등에 대한 행정대집행 인권매뉴얼’을 만들어 철거 사실을 미리 알리도록 했다.

하지만 보상 과정에서 감정평가액이 실거래가를 반영하지 못하고,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법의 보호를 받게 된 ‘권리금’이 재개발 사업에서는 인정되지 않는 등의 문제가 남아있다. 서울시 인권매뉴얼은 서울시와 시 산하기관에만 구속력이 있고 서울의 25개 자치구 행정대집행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용산참사 때나 지금이나 토지 주인들로 구성된 조합에서만 사업을 추진하고 나중에 통보하는 식이다 보니 뒤늦게 세입자들과 전철연 등 외부 단체가 얽혀 문제가 불거진다”며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사업 초기부터 세입자들까지 참여하는 협의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자현 zion37@donga.com·이윤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