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협회 이사가 여중생 3명 수십차례 성폭행”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1-16 09: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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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사과” 고개 숙인 체육회장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1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심석희 선수를 비롯해 성폭력 피해를 입은 모든 선수들과 국민들께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주로 학생들을 집에 바래다준다며 태우고 갔던 승합차에서 일어났어요. 내릴 코스와 상관없이 그날 마지막으로 내릴 사람을 지정했어요. 그러고는 인근 야산으로 몰고 가…. 체육관 승합차 엔진 소리를 아직도 기억해요. 아직도 비슷한 소리를 들으면 ‘나를 잡으러 왔나’ 하는 생각에 소스라치게 놀라 주저앉곤 합니다.”

이번엔 태권도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전 유도선수 신유용 씨에 이어 태권도계에서도 피해자가 자신의 실명을 밝히며 관련 사실을 알렸다.



전 대한태권도협회 이사 A 씨가 운영하던 태권도 도장에서 태권도를 배웠던 이지혜 씨(33)는 15일 본보와 채널A의 인터뷰를 통해 피해 내용을 말했다. 이 씨는 초등학교 6학년이던 1998년부터 2002년까지 5년간 A 씨에게 폭력과 성폭력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이 씨에 따르면 당시 태권도를 배우던 많은 원생이 피해를 입었고 중학생 때부터 수십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이도 세 명이나 된다.



시민단체 “물러나라” 체육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는 이날 올림픽파크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기흥 회장이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이 씨에 따르면 A 씨는 체육관과 합숙소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성폭력을 일삼았다. 운동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신체 변화를 알아야 한다며 신체를 만지고 성폭력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A 씨와 비슷한 사람을 보면 온몸이 얼어붙는다. 늦은 밤 큰 쓰레기봉투를 보고 (A 씨인 줄 알고) 주저앉은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피해자 가운데는 당시 악몽으로 자살을 시도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이 씨를 비롯한 피해자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 사실을 알릴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자녀의 미래를 위해 관장에게 간식거리와 체육관 비품 등을 제공했던 부모님들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스스로를 자책하시겠나. 관장에게 맞아 허벅지에 피멍이 들어도 긴 바지를 입어 가리곤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평생에 걸쳐 마음을 짓누르던 일을 해결하고 싶었다고 했다. 지난해 미투 운동이 확산되면서 이들은 용기를 냈다. 이 씨를 비롯한 피해자 15명이 피해자연대를 꾸려 지난해 4월 대전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고 현재 1심 공판이 진행 중이다.

당시 피해로 인해 지금까지도 극심한 심리적 장애(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면 현재도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인정된다. 이때는 처벌이 가능하다.

A 씨 측은 성폭행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A 씨의 동생 B 씨는 “재판 중인 사항이고 결론이 나지도 않았는데 자꾸 문제 삼는 건 누군가 피해자들을 꾀어 이 일을 터뜨린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형은 결백하다고 믿는다. 성폭행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스포츠계에서 성폭력 피해 사실이 잇달아 불거지고 있지만 대한체육회는 형식적인 대응을 계속하고 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이날 “그동안 내부 관계자들이 징계·상벌에 관여함으로써 자행되어 왔던 관행과 병폐에 대해 자정 기능을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고 했다. 체육계에서 발생한 성폭력 관련 내용을 선후배 체육인들이 심의하고 징계하면서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이 벌어진 데 대해 사과한 것이다. 이어 체육인이 아닌 제3자가 신고를 받고 조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겉치레일 뿐이다.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묻자 대한체육회 측은 “성범죄가 발생할 경우 외부 여성 기관 등에 범죄의 경중을 묻고 그 결과를 전달받을 예정이다. 그 후에 징계 수위에 대해서는 대한체육회가 자체적으로 결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결국 제 식구 감싸기의 핵심 문제였던 대한체육회의 자체 징계는 계속 유지하겠다는 뜻이어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조응형 yesbro@donga.com·이원주 기자 / 이서현 채널A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