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욕 세종, 경호 인력만 5만 명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1-14 09:5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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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중국을 61년간(1661∼1722년) 다스린 청나라 황제 강희제는 온천욕에 일가견이 있었다. 특히 병을 치료하는 ‘좌탕(坐湯)’에 대해 그는 “좌탕요법을 잘 아는 민족은 만주와 조선뿐”이라고 했다. 실제 조선왕조실록에는 ‘온천욕이 조선 조정의 오래된 전통’이라는 기록이 등장한다. 일본 대마도 태수 종정국(宗貞國)이 부산에 와서 온천욕을 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며 “동래(東萊)의 온천은 바라보기만 해도 병이 벌써 낫는 듯하다”고 말했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왕실은 온천욕을 좋아했는데, 특히 세종 부부는 마니아였다. 세종 21년 기록에는 ‘등에 부종(浮腫)이 나서 움직이지 못하다가 계축년에 온천욕을 하고 조금 나았다’고 쓰여 있다. 왕비가 온천욕으로 병이 나아 너무 기쁘다는 내용도 나온다.

왕실의 온천욕에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갔다. 현종 6년 온양온천 거둥(임금의 나들이) 기록에 따르면 왕의 근접 경호에 군인 3000명, 주변 경호에 1만 명이 동원됐다. 기간도 한 달 이상 걸렸다. 그래서일까. 세종은 한양 근처 온천을 찾으려 애썼다. 한양과 가까운 경기 부평에 주목한 세종은 관리를 여러 번 보내 조사를 하고 온천 발견자와 그 후손을 포상하는 제도까지 만들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온천을 찾지 못하자 세종은 부평을 부(府)에서 현(縣)으로 강등시켜 버렸다. 과도한 온천 사랑이 빚은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세종의 온천치료법에는 과학을 숭상한 그의 지혜가 녹아있다. ‘세종은 눈병이 생기자 여러 온천의 물을 가져와 일일이 저울에 달아본 후 가장 무거운 경기 이천 갈산 온천물에 목욕했는데 큰 효험이 있었다.’(지봉유설)

온천욕으로 가장 큰 치료 효과를 본 왕은 현종이다. 피부병과 안질로 고생하던 왕은 치료를 위해 온양온천으로 떠난다. ‘왕이 질병이 있어 오래도록 낫지 않자 조정과 백성이 모두 근심하고 두려워했다. 4월에 왕이 온천행궁(溫泉行宮)에 거둥해 수개월 동안 목욕하니 몸이 나았다.’(현종 재위 6년 4월)

온천물 안에는 유황이 많다. 유황천은 피부의 각질을 녹여 탄력을 높인다. 또 피부 신진대사기능을 활발히 해 새 상피세포의 형성을 촉진시킨다. 피부 질환으로 고생을 한 조선의 왕들이 온천을 찾은 건 이런 의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피부병을 심하게 앓았던 세조도 온양온천을 즐겨 찾았다.


부작용도 있었다. 무리한 온천욕은 피로를 높이고 체력을 떨어뜨린다. 성종 1년 3월의 실록은 ‘대왕대비께서 온천물에 목욕하신 후 기체(氣體)가 피로해 음식을 드시지 못한다’고 썼다. 류성룡과 선조도 온천욕을 두고 논쟁을 벌였다. 류성룡이 “온수에서의 목욕은 땀을 빼서 몸의 진액을 크게 소모시키니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하자, 선조는 “조종조(祖宗朝)에서 늘 해온 일인데 지금 못할 이유가 뭐냐”고 반박했다.

온천욕은 근육의 피로를 해소하고 이완시키는 한편 피부의 기초 신진대사를 증진시킴으로써 재생 기능을 극대화하는 등 긍정적 효험이 크다. 그러나 갑자기 수축된 말초혈관을 확장시켜 저혈압을 유발하므로 심혈관 환자는 주의가 필요하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