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자본보다 강한 ‘영화의 힘’…한국영화가 가야 할 길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1-11 11: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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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사진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 1000만 앞으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역주행이 남긴 교훈

싱얼롱 상영관과 반복관람 ‘강한 팬덤’
스크린 811개서 최대 1300개로 확대
팬덤 만드는 건 자본 아닌 영화의 힘
대작 연연 한국영화계에 신선한 충격




“20대, 팬덤 그리고 입소문!”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 CJ CGV가 분석한 지난해 영화시장의 굵은 흐름이다. CGV는 2018년 12월 영화산업 미디어포럼에서 10월 자사 회원 1081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발표하며 지난해 한국 영화산업이 “20대와 팬덤, 입소문”의 힘에 기댔다고 설명했다. 그룹 퀸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그 뚜렷한 증거가 된다. 입소문의 확산과 그에 힘입은 20∼30대 중심의 폭넓은 관객층, 그들의 감성에 다가간 마케팅 전략 등이 어우러져 ‘보랩 열풍’을 이끌어내며 10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영화를 무려 네 번이나 봤다는 20대 대학생의 시선은 이를 방증한다. 한국 음악영화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 속에서 향후 가능성도 내다본다.

사실 20대는 영화의 주 관객층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이지만 지난해 그 비중은 더욱 커졌다. CGV는 “2013년 18%에서 지난해 22%로 늘었다”고 밝혔다. ‘팬덤’은 특정 영화를 재관람하는 등 관람 문화를 주도했고, 입소문 역시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하며 초반 인지도가 낮았던 작품을 장기 흥행작 목록에 올려놓았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사진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 “영화의 힘”


‘보헤미안 랩소디’는 지난해 영화산업의 이 같은 흐름을 제대로 입증한 작품이 됐다.

영화는 2018년 10월31일 개봉하면서 한국영화 ‘완벽한 타인’에 뒤져 박스오피스 2위로 출발했다. 그룹 퀸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만 알려진 영화는 20여일 만에 1위에 오르며 박스오피스 ‘역주행’했다. 강력한 입소문이 그 힘이었다.

팝음악 세대인 40∼50대 등 중장년층의 초반 관람 행렬은 이내 20∼30대 등 젊은층을 이끌었다. 이들은 다양한 콘텐츠의 배경음악으로 쓰인 노래를 영화로 재확인하며 퀸의 존재를 제대로 알게 됐다. CGV리서치센터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6일까지 ‘보헤미안 랩소디’의 20∼30대 관객은 57.2%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영화를 보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싱얼롱’ 관람 문화로 이어졌다. 한 영화 홍보마케터는 “싱얼롱 상영과 반복관람을 뜻하는 ‘N차 관람’ 등으로 영화 관람 패턴을 바꾸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CGV에 따르면 ‘보헤미안 랩소디’의 재관람률은 8%로, 웬만한 흥행작의 수준을 뛰어넘으며 ‘팬덤’을 이뤘다. 이승원 CGV 마케팅 담당은 “싱얼롱 상영관과 스크린X 등의 객석점유율이 일반상영관의 2배였다”고 분석했다.

‘보헤미안 랩소디’와 나란히 개봉한 ‘완벽한 타인’의 성공 역시 시사하는 바 크다. ‘완벽한 타인’은 순제작비 38억원 규모에 ‘보헤미안 랩소디’와 함께 극장가 비수기인 늦가을 개봉했지만, 신선한 기획과 탄탄한 구성, 배우들의 호연과 감독의 연출 감각 등이 어우러지며 530만 관객을 동원했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홍보마케팅사 영화인의 신유경 대표는 “영화만 좋으면 비수기 개봉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확인시켰다”고 말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사진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 “한국영화, 이제 다시”

나아가 두 편의 영화가 과시한 힘은 향후 한국 영화시장업의 흐름을 뒤바꿀 작은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기대감 섞인 전망을 내놓는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주요 외화들의 흥행 추이와 두 영화의 행보를 비교하면 이런 기대감은 더욱 커진다.

첫 1000만 외화였던 2009년 ‘아바타’는 극장가 성수기인 12월17일 600여개 스크린에서 개봉했다. 당시로써는 작지 않은 규모였다. 개봉 19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2018년 4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무려 2460개 스크린에서 선보였다. 2015년 흥행작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도 개봉 초반 1700여개 스크린을 확보했다. 이처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물론 한국영화 기대작은 개봉 초반 특히 첫 주말 스크린 장악을 통해 대규모 물량공세에 기대 흥행 가도를 달렸다.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을 계열사로 둔 대기업 투자배급사의 영화가 ‘스크린 독과점’ 논란을 모으는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보헤미안 랩소디’는 811개, ‘완벽한 타인’ 1081개 스크린에서 관객을 만났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이후 1위에 오른 11월19일을 기점으로 최대 1300여개 스크린으로 상영 공간을 확대하는 힘을 발휘했다. 영화의 힘과 관객이 이끌어낸 성과였다.

그만큼 관객의 감성에 다가가는 기획과 스토리, 이를 대중적으로 드러내 보일 홍보마케팅 전략의 중요성이 더욱 커져가는 분위기다. 특히 2018년 추석과 연말연시 개봉한 한국영화 기대작의 잇단 대중적 실패는 새해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각성의 기회를 안겨주고 있다고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한 영화관계자는 “대규모 자본에 기대거나 톱스타급 배우와 감독의 힘만으로 관객을 움직일 수 없게 됐다는 점을 확인했다”면서 “향후 한국영화의 새로운 흐름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