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화장실에 설치된 11억짜리 황금변기에 이렇게 깊은 뜻이?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1-10 09:4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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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리치오 카텔란 ‘아메리카’, 2016년.
1917년 마르셀 뒤샹은 가게에서 산 남자 소변기에 서명을 한 후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 뉴욕의 한 전시회에 출품했다. 예술가가 직접 그리거나 만들지 않고 어떤 것을 선택하는 행위만으로도 예술이 될 수 있는지를 질문한 것이었는데, 수많은 논쟁 끝에 평단은 그의 손을 들어 줬다. 뒤샹은 ‘레디메이드’라 명명한 기성품도 작가의 선택에 따라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걸 최초로 증명한 예술의 혁신가였다.

약 100년 후 이탈리아의 악동 예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18K 황금으로 변기를 만들어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5층에 설치했다. 뒤샹이 평범한 변기를 미술관에 가져와 감상의 대상으로 만들었다면, 카텔란은 값비싼 황금에 변기 기능을 부여해 체험형 예술로 탄생시켰다. 0.1% 상류층 집에나 있을 것 같은 초호화 황금변기를 미술관 공공화장실에 설치해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작가는 작품의 의미 해석을 관객들 몫으로 돌리지만 ‘아메리카’라는 제목을 통해 세계 경제대국 미국에서 일어나는 경제 불균형, 부의 세습,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 등을 통렬하게 풍자하고 있다.



황금변기가 설치된 이듬해, 구겐하임미술관은 빈센트 반 고흐의 풍경화 한 점을 빌려 달라는 백악관의 요청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 부부의 침실을 장식할 용도였다. 미술관 수석큐레이터는 ‘고흐 그림은 대여 불가하나 원하면 카텔란의 황금변기를 빌려줄 수 있다’고 회신했다. 아울러 변기로서도 완벽하게 기능하는 예술품이며 재료비만 100만 달러가 넘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고흐 그림은 소수 권력자나 부자의 침실 벽에 걸리는 것보다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미술관에 있어야 한다는 게 미술관의 판단이었다. 작가 역시 황금 장식을 좋아하는 부호 출신 미국 대통령에게 이 작품을 영구 제공할 뜻을 밝혔으나, 백악관에서는 이후 어떤 답도 보내오지 않았다고 한다. 100여 년 전 뒤샹의 변기가 미술의 개념을 질문했다면, 카텔란의 변기는 우리 시대 미술의 역할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