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열차서 실수로 떨어지면?” 영국 철도인의 北 국내선 여행기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1-11 11: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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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소련제 고물 열차 . MSN 사이트 캡처
“만약 북한 열차에서 실수로 떨어졌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시 열차에 뛰어오를 시간은 충분하다. 그만큼 열차가 거북이 걸음으로 간다는 뜻이다.”

영국 철도회사에서 근무하다 은퇴한 60대의 마이클 도란 씨는 북한에서 철도 여행을 하던 중에 일행들과 이런 농담을 나눴다. 열차는 녹슬고 덜컹거렸다. 그리고 느렸다. 평양에서 북한 북쪽 끝 라선까지 가는데 36시간이 걸렸다. 웬만한 고속열차를 탔다면 4,5시간 걸릴 거리였다. 창 밖으로 북한의 시골 모습을 보자 마치 40, 50년 전에 시간이 멈춘 듯 했다.



도란 씨는 여행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기자와 함께 지난해 9월 북한을 방문해 철도 여행을 했다. 북한 전문여행사 고려투어스의 철도 여행 프로그램에 참가한 것. 도란 씨의 북한 철도 여행기가 8일(현지 시간) 내셔널 지오그래픽 웹사이트에 게재됐다.

외국인들이 기차를 타고 북한에 갈 때는 주로 모스크바-울란바토르-베이징을 거쳐 평양에 가는 노선을 이용한다. 국제선 열차는 외국인들이 탑승하므로 비교적 깨끗하고 열차 속도도 느리지 않다.




평양 라선 열차 선로 풍경. MSN 사이트 캡처
청진역 화물열차와 역무원. MSN 사이트 캡처
그러나 도란 씨가 탄 열차는 평양에서 청진을 거쳐 라선까지 가는 국내선이었다. 원칙적으로 외국인은 국내선 열차를 이용할 수 없다. 그러나 월 1회 정도씩 예외적으로 외국인 탑승을 허용한다. 외국인 승객을 허용한 것은 매우 최근이다. 라선행 국내선 열차의 한 량이 외국인 전용으로 꾸며졌다.

국내선 열차는 1950, 60년대 만들어진 옛 소련제 열차였다. 반세기를 넘긴 열차의 외관은 심하게 녹이 슬어 비가 올 때면 녹물이 줄줄 흘렀다.

외국인 전용칸 내부는 상태가 괜찮았다. 바닥은 깨끗했고 화장실에 휴지도 있었다. 도란 씨와 동행한 고려투어스의 닉 보너 대표는 “북한 주민들이 타는 칸은 사정이 좋지 않다. 매우 더럽다(filthy)”고 말했다. 보너 씨는 2004년 북한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이 노선을 이용했다. 지금 탄 열차가 당시에 탔던 열차란다.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없다. 열차만 더 고물이 됐을 뿐.

외국인 전용칸에 탔다고 행동이 자유로운 것 아니었다. 감시인들이 같은 칸에 타고 지켜보고 있다. 감시인들은 외국인 승객이 ‘모범적으로’ 행동했는지 나중에 당국에 보고한다. 도란 씨는 열차에서 북한 주민들과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외국인 전용칸과 북한 주민칸 사이에 문은 잠겨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중간 정차역에 잠깐 내리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외국인 승객들이 내릴 수 있는 정차역이 정해져 있다.

국내선은 시설이 열악하다보니 당연히 식당칸은 없었다. 이럴 줄 알고 도란 씨 일행은 미리 평양 슈퍼마켓에서 먹을 것과 맥주를 사왔다. 군것질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철도창밖 함흥 주민들. MSN 사이트 캡처
그렇다고 북한 철도 여행이 괴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평양을 벗어나자 개발의 손길을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보존돼 있었다. 라선으로 갈수록 자연의 절경이 펼쳐졌다. 창 밖으로 만나는 북한 시골 주민들은 외국인을 처음 봤는지 신기하게 쳐다봤다.

러시아와 중국을 접하고 있는 종착지 라선은 북한이 외자 유치를 위해 만든 경제무역지대다. 외국인들이 비교적 많기 때문에 도시 분위기도 자유로운 편이었다. 여기서 자유시간이 허용됐다. 도란 씨는 술집에 가서 맥주를 시켰다. 외국인이 왕래하는 곳인데도 여종업원이 영어를 몰라 그는 다른 손님이 마시고 있는 맥주를 가리키며 주문했다.

철도 전문가인 도란 씨는 북한이 한계 수명을 지난 열차와 철로를 그대로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철로 중간에 푹 꺼진 곳도 있어 위험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철도 연결사업을 논의하면서 북한 철도 상황에 대해 “창피하다(embarrassing)”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도란 씨는 “물론 남북간 철도 연결이 상징적 수준의 연결이기는 하다. 그래도 만약 성사될 경우 북한과 남한 사람들이 서로 열차에서 얘기를 나누는 때가 올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정미경 전문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