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소화기 안갖춘 국내 방탈출카페… 폴란드선 참사 현실로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1-17 12: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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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4일 폴란드 코샬린 방탈출카페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을 1월 5일 경찰이 조사하고 있다. 화재로 건물 외벽이 검게 그을렸고 유리창은 깨져 있다. 코샬린=AP 뉴시스
1월 4일(현지 시간) 오후 5시 폴란드의 북부 도시 코샬린에 있는 방탈출카페에서 화재가 나 15세 여학생 5명이 사망했다. 방탈출카페는 이용객들이 미로처럼 복잡하고 어두운 실내에 갇혀 퀴즈를 맞히며 다른 방으로 옮겨가는 놀이시설이다. 희생자들은 바로 옆방에서 불이 난 것도 모르고 게임에 몰두하다가 참변을 당했다.

국내에선 방탈출카페 140여 곳이 영업 중이지만 소방 규제를 받는 다중이용업소로 분류되지 않아 화재 무방비 시설로 방치되어 있다. 본보는 2018년 11월 29일 이 같은 실태를 상세히 지적했다. 하지만 본보 취재팀이 당시 보도했던 방탈출카페를 1월 6일 다시 둘러본 결과 현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 화재 모른 채 게임 열중하다 참변

2018년 11월 29일자 A12면.
폴란드 방탈출카페 화재는 국내에서도 비슷한 참사가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사망한 5명은 일행 중 한 명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카페를 찾은 학생들이었다. 이들이 화재 발생 사실을 모르고 게임에 빠져 있는 사이 카페 직원이 이들을 구출하려고 했지만 불길이 커져 문을 열 수 없었다.


이 직원도 구출 시도 과정에서 중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학생들은 화재 진압 이후 모두 방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인 것으로 확인됐다. 레셰크 수스키 폴란드 국가소방본부장은 “적절한 탈출 통로가 없었고 안전장치가 확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 담배 연기 자욱… 소화기, 화재경보기 없어

국내 사정은 어떨까. 1월 6일 오후 취재팀이 찾은 서울 중구 A방탈출카페 내부는 담배 연기가 자욱하게 퍼져 있었다. 주말을 맞아 손님 20여 명이 밀폐된 공간에 갇힌 후 빠져나오는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이곳은 본보가 2018년 11월 소방 실태를 점검하며 소화기가 없다고 지적했는데, 이날도 소화기는 없었다. 천장에 스프링클러가 있었지만 담배 연기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A업소는 내부 시설이 목재로 이뤄진 데다 수납장에 책 20여 권이 꽂혀 있는 등 인화성 물질이 가득했다. 담배 불씨가 순식간에 옮겨붙기 쉬운 구조다.

서울 관악구 B방탈출카페에도 소화기는 보이지 않았다. 화재경보기도 스프링클러도 없었다. 불이나 연기가 발생해도 감지할 방법이 없다. 그런데도 손님들은 자유롭게 담배를 피웠다. 곳곳에서 찌든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보건복지부가 2016년 식당, 카페 등으로 금연구역을 확대했지만 방탈출카페는 법의 테두리 바깥에 있는 ‘신종 업소’여서 제외됐다.


화재 비상 상황이 생겼을 때 탈출도 어려웠다. 직원에게 문을 열어 달라고 알리는 비상탈출 버튼은 일부 방에만 설치되어 있어 상당수 이용객은 화재를 감지해도 직원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방에 있는 노트북으로 직원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지만 연기로 앞이 보이지 않는 긴급 상황에서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정부는 뒤늦게나마 방탈출카페의 소방안전 관리를 위한 제도 마련에 착수했다. 소방청은 2018년 12월 ‘제3차 다중이용업소 안전관리 기본계획’에서 방탈출카페 같은 신종 업소의 화재 위험을 평가해 고위험군(1개 등급), 중위험군, 저위험군(이상 2개 등급) 등 5등급으로 나눠 관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후 업종별 안전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하지만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시행하겠다는 방침만 세웠을 뿐 구체적인 대책이 현장에 적용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은 방탈출카페에 대해 연기 배출 등 관련 설비 마련을 이미 의무화하고 있다.

서형석 skytree08@donga.com·최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