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팥이 10개라면 9개는 떼어줄텐데…”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1-06 11: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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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얘기가 알려져 한 사람이라도 더 장기기증을 선택해 생명을 살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신장 순수 기증을 앞두고 있는 안병연 씨(59)가 1월 2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기자들과 만나 밝힌 바람이다. 순수 기증은 가족이나 친척이 아닌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장기를 기증하는 것을 말한다. 안 씨는 2001년부터 만성신부전으로 투석을 받아 온 장모 씨(60)에게 1월 3일 신장을 기증할 예정이었으나 장 씨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수술이 미뤄졌다.



안 씨가 신장 기증이라는 쉽지 않은 선택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엔 먼저 세상을 떠난 누나가 있었다. 2002년 7월 교통사고로 숨진 누나 병순 씨(당시 63세)는 신장과 각막 등을 4명에게 기증했다. 생전의 누나에게 장기기증을 알게 해 준 사람이 바로 안 씨였다. 안 씨는 “1998년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당한 뒤 운동이나 하자고 올라간 산에서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플래카드를 보고 장기이식에 대해 알게 됐다”며 “내가 먼저 본부에 사후 장기기증 희망 등록을 했다. 이 사실을 얘기하니 누나가 좋은 생각이라며 ‘나도 하고 싶다’고 했다”고 말했다. 안 씨는 누나가 떠난 뒤 자원봉사·헌혈 등 나눔의 삶을 이어오다 지난해 신장이식을 결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안 씨 같은 이들이 줄고 있다. 1월 3일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따르면 지난해 뇌사 장기기증자는 449명으로 2016년(573명), 2017년(515명) 이후 계속 줄고 있다. 타인에게 신장이나 간을 기증하는 순수 장기기증자도 2013년 19명에서 2014년 6명으로 감소한 뒤 매년 한 자릿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 환자 가족 간의 ‘릴레이기증’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2010년 장기이식법 개정에 따라 이식 대기자 접수가 병원에서만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릴레이기증을 주선해 온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같은 민간단체가 새로운 환자와 기증자를 찾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장기기증이 줄고 있는 데는 불신도 한 원인이 되고 있다. 실제로 2017년 한 대학병원에서 뇌사자의 장기를 적출한 뒤 이후 시신 수습 등을 유가족에게 떠넘겨 뇌사자 아버지가 직접 시신을 수습한 사건이 알려졌고 이후 장기기증 서약 취소가 이어졌다.

국가는 장기이식법에 따라 뇌사 장기기증자의 장제비와 진료비 명목으로 360만 원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유족들은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했다는 인정과 지지’라고 입을 모은다.

운동본부 관계자는 “뇌사 장기기증자 유족들은 ‘돈을 받고 기증한 것 아니냐’ 같은 주변의 발언과 시선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며 “추모공간 설립처럼 ‘여러분이 좋은 일을 했다’는 사회적 인정과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한이식학회 이사를 맡고 있는 안규리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스페인처럼 뇌사자가 발생하면 평소 장기기증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힌 경우가 아니라면 장기기증을 할 수 있게 하는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기 기증자들의 만족도는 높다. 2009년 3월 신장을 기증한 백창전 씨(61·여)는 “기증자·이식인 모임에서 ‘기증해 주신 신장 덕분에 소변을 볼 수 있어 감사하다’는 말을 듣자 남은 삶을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며 “기증자들 중에는 ‘신장이 10개 있다면 9개를 떼어주고 싶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