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차관보가 ‘핵심은 국가채무비율 덜 떨어뜨리는 것’ 지시”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1-02 11:3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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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이 1일 공개한 기재부 재정 담당 차관보와의 카톡 대화록 화면. 고파스 캡처
기획재정부가 정권교체기인 2017년에 박근혜 정부의 국가채무가 상대적으로 많아 보이게 하려고 국채 조기상환을 미루고 신규 적자국채를 발행하려 했다는 정황의 카카오톡 대화록이 공개됐다.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은 1일 고려대 커뮤니티 ‘고파스’에 당시 기재부 차관보가 2017년 국가채무비율을 가급적 낮추지 말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내용의 대화록을 올렸다. 이는 전날 구윤철 기재부 제2차관이 신 전 사무관의 주장을 반박하며 “적자국채 발행은 대내외 불확실한 상황을 감안해 검토했을 뿐 국가 채무비율을 높이려 한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과 배치된다. 신 전 사무관은 “공개 기자회견을 준비 중”이라며 이번 주중 추가 폭로를 예고했다. 기재부는 2일 신 전 사무관을 공무상 기밀 누설 혐의로 검찰에 고발할 예정이다.





○ “당시 차관보, 국가채무비율 덜 떨어뜨리라 주문”



신 전 사무관이 1일 공개한 카카오톡 대화록에 따르면 2017년 11월 14일 대화명 ‘(기재부) 차관보’는 단체 채팅방에서 신 전 사무관에게 “핵심은 17년 국가채무비율을 덜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했다. 당시 기재부의 재정 담당 차관보는 조규홍 현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이사다.


신 전 사무관은 이날 올린 글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채무비율을 덜 떨어뜨리라는 이야기는 최대한 (국채를) 발행하라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앞서 신 전 사무관은 2017년 세수가 많아 국채를 발행할 필요가 없는데도 청와대와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가 그해 하반기 발행한도인 8조7000억 원까지 국채를 발행할 것을 지시했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 임기가 포함된 2017년 말 기준 국가채무비율을 의도적으로 높여 현 정부의 재정건전성이 상대적으로 양호해 보이도록 ‘통계 마사지’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신 전 사무관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차관보는 또 다른 카톡 대화에서 “우리 2안처럼 계산하면 2021년 국가채무비율(이 어떻게 되는지) 좀 계산해 보라”고 신 전 사무관에게 지시했다. 2021년은 차기 대선(2022년)을 앞둔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해다. 그 해의 경제지표가 선거에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 신 전 사무관은 이 카톡 이미지를 추후 언론 인터뷰에 활용한다면서 삭제했다.



○ 국채 이자는 고스란히 세금으로 충당해야




적자국채는 세수가 지출보다 적을 때 재정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발행한다. 국채 발행이 많아지면 채권값 하락으로 시장금리가 올라가 대출자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정부도 국채이자가 늘어나고 국가채무비율이 높아져 재정건전성에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적자국채 발행에 따른 국가채무비율 상승은 정치적 공격의 대상이 돼 왔다. 박근혜 정부 때도 복지예산을 늘리고 추경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총 160조 원이 넘는 적자국채를 발행하자 현재 여당인 당시 야권이 이를 비판했다.

이번 정부는 기초연금 인상과 아동수당 신설 등 대규모 재정이 드는 복지정책을 잇달아 추진해 시간이 지날수록 재정이 악화될 우려가 크다. 현 정부 입장에서는 2017년 국가채무비율을 미리 높여놓으면 임기 말에 나라 재정을 악화시켰다는 비판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정학자는 “경기가 나빠지는 상황에서 국채를 발행하거나 조기상환을 늦추면 투자와 소비가 위축돼 경기를 악화시킨다”면서 “정부의 조치는 경제적 논리가 아닌 다른 논리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신 전 사무관의 주장처럼 청와대와 기재부가 국채 8조7000억 원 발행을 강행했다면 1년 이자부담만 2000억 원에 이른다. 이 비용은 고스란히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기재부는 1일 “적자국채 발행을 통해 박근혜 정부의 국가채무비율을 높이려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국채 발행과 관련해 청와대의 의견 제시는 있었지만 강압은 없었다”고 공식 해명했다.


세종=최혜령 herstory@donga.com·김준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