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탐구하는 장르소설… 거부감 내려두고 즐기세요”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1-02 09: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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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소설 ‘룬의 아이들’의 저자 전민희 작가는 “젊은 독자가 많아야 판타지 장르의 미래도 있다. 휴대전화 기반의 웹소설 등 매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 새로 당면한 과제”라고 말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더라도 내 입맛에 맞는 걸 찾는 것과 같아요. 순문학이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인생의 숨겨진 본질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라면, 장르소설은 개인의 취향과 즐거움이죠.”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판타지 소설 ‘룬의 아이들’의 작가 전민희(44)는 장르문학의 의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국형 판타지를 다루는 논문이나 서적에서 비슷하거나 높은 연배의 이영도, 이우혁과 함께 거론되는 유일한 여성 작가다.

그는 최근 1부 ‘윈더러’, 2부 ‘데모닉’에 이은 ‘룬의 아이들’ 시리즈 3부 ‘블러디드’를 11년 만에 공개했다. 실종된 오빠에 얽힌 비밀을 밝혀내려는 공녀 샤를로트의 이야기로, 출간 첫 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0위권 안에 진입하기도 했다.



1990년대 PC통신 시절부터 ‘전민희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그는 특히 유려한 문체와 극중 세계관을 세세하게 짜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전 작가는 “한국 사회는 여전히 즐거움 추구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나 죄책감이 있는 것 같다”면서 “가성비가 좋은 취미 생활만 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즐거움에 대해 아는 것도 중요하다”며 안타까워했다.



룬의 아이들’을 읽으며 청소년기를 보낸 팬들은 벌써 30, 40대 직장인이 됐다. 이번 신작을 두고 남성 팬들 사이에선 “이젠 나이가 들어 공개적으로 읽기에 조금 민망하니 표지를 바꿔줄 수 없느냐”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엘릭시르 제공
전 작가가 판타지 소설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20여 년 전. 외환위기 때문에 대학 졸업 뒤 일찌감치 취업을 포기하면서였다. 그 대신 PC통신 동호회에서 활동하며 아마추어 소설 게시판에 글을 썼다. 1999년 첫 소설 ‘세월의 돌’을 출간하며 마니아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몇몇 콘텐츠 회사가 새로 출시할 게임 콘셉트와 세계관을 만들어 달라고 연락이 올 정도였다.


전 작가는 온라인 동호회에서 비슷한 관심사를 나누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글을 ‘판타지’라고 부른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됐다”고 회고했다. 학창 시절엔 북유럽 신화를 모티브로 한 토베 얀손의 동화 ‘무민 시리즈’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삐삐 시리즈’를 사랑하는 소녀였다. 이후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그리고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원작인 ‘얼음과 불의 노래’에 빠져들었다.

“판타지 세계를 이루는 설정들은 사실 현실에 전혀 없는 새로운 것이 아니에요. 다만 작가가 독창적으로 혼합을 하는 거죠. 현실을 반영하는 소설이나 영화에도 화자가 등장해 만드는 사람의 시각을 대변하는 것과 같아요. 판타지는 현실의 시공간을 더 크게 확장한 것입니다.”

해외 판타지 작품이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흥행에 성공하면서 판타지 장르를 바라보는 국내 인식도 20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전 작가는 “국내 판타지 소설은 아직 세계 시장에서 다른 작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엔 시장 규모가 미미한 수준”이라고 했다.

“지금까진 해외의 것을 수입해 마니아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우리만의 창작물이 나오기 시작한 수준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국내에서도 웹툰과 게임 분야에서 판타지 모티브가 확장되고 있어요. 조만간 꽃을 피울 토양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