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창살 잡고 “살려주세요”… ‘텍사스촌’ 화재 탈출구가 없었다

donga@donga.com2018-12-24 09:58:59
공유하기 닫기
22일 발생한 화재로 사상자가 발생한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한 성매매업소. 2층에 설치된 창문은 쇠창살로 막혀 있어 피해자들의 탈출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원 안).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2층 왼쪽에서 두 번째 방이에요. 큰 방 앞에 있어요.”

12월 22일 오전 11시 10분경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이른바 ‘천호동 텍사스촌’ 2층 건물 안. 쇠창살을 붙잡은 20대 여성 A 씨가 울먹이며 다급한 목소리로 밖에 있던 소방관에게 구조를 호소했다. 가로세로 폭이 각각 1m가 채 되지 않는 창문의 쇠창살 사이로 시꺼먼 연기가 새어나왔다. 바로 옆방 창문에서도 쇠창살을 붙잡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건물 내부에 진입한 소방대원들은 온몸이 연기와 재로 뒤덮인 여성을 업고 빠져 나왔다. 쇠창살을 뜯어내자 건물에 갇혀 있던 한 여성은 사다리로 빠져나왔다. 건물 밖에서는 소방대원들이 의식을 잃은 여성들에게 심폐소생술(CPR)을 했다.



○ 피해 여성들, 업소서 숙식



12월 23일 서울 강동경찰서에 따르면 22일 오전 11시 4분 이 건물 1층에서 화재가 발생해 16분 만에 진화됐다. 한 목격자는 “1층에서 ‘펑’ 소리와 함께 불길과 연기가 치솟았다”고 말했다. 이 화재로 2층에 있던 여성 6명 가운데 성매매 업소 업주 B 씨(50)와 업소 여성 B 씨(46)가 사망했다. 2명은 중태, 1명은 경상이고, 1명은 귀가했다. 건물 주변에는 2층 건물 내부에서 떨어진 인형이 불에 검게 그을려 있었고 조각 난 창살과 김치통 등이 흩어져 있었다.

화재가 난 건물은 성매매 업소로 운영됐다. 이 업소 여성들은 평소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6, 7시까지 일을 한 것으로 알려졌고 화재 당시 잠을 자고 있었다. 경찰은 피해자들이 잠을 자다가 신속히 대피하지 못해 피해가 커진 것으로 보고 있다.

1968년 지어진 이 건물은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었고, 탈출구가 없었다. 업소 운영을 위해 불법적으로 방을 복잡하게 쪼개놓은 점도 탈출을 어렵게 만든 요인으로 파악된다.

천호2지구 재건축 지역에 속해 있는 이 건물은 11월 30일이 이주 마감시한이었고 조만간 철거될 예정이었다. 해당 지구 내 223가구 가운데 이 건물을 포함한 18가구만 생계 등을 이유로 이주하지 않고 남아 있는 상태다. 소방 관계자는 “불이 출입구로 올라오고 창문은 쇠창살로 막혀 있어 마땅한 탈출구를 찾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철거 예정 건물이라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점도 피해를 키웠다”고 말했다

피해를 입은 업소 여성들은 20세부터 40대까지 다양했다. 인근 주민들은 이들이 생계를 꾸리기 위해 이 건물에서 숙식을 했다고 전했다. 인근에서 20년간 가게를 운영해온 주민은 “생활에 여유가 있는 여성들은 출퇴근을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숙식을 하며 돈을 모은다고 한다”고 전했다.



○ 방화 가능성 낮은 듯



경찰은 업주 B 씨가 여성들을 깨우려다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구조된 여성은 ‘잠을 자던 중 B 씨로 추정되는 사람이 “불이야”라고 외치는 목소리를 듣고 소방관의 도움으로 창문으로 탈출했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이 지역 상인회장 이차성 씨(64)는 “B 씨는 건물에서 숙식하지 않고 출퇴근을 한다. 직원들을 깨우러 돌아다니다 안타깝게 본인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12월 22일 진행된 1차 감식에서 화재가 1층에서 시작된 것을 확인했다. 1층에 주방시설이 있고 연탄난로를 사용한 점 등을 고려해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결과 방화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파악했다. 화재 원인뿐 아니라 건축법상 위반 여부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