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 잃은 뒤 ‘목공 달인’ 된 남자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celsetta@donga.com2018-12-04 14:53:52
공유하기 닫기
사진=크리스 피셔 씨 홈페이지(christopherfisher.co.uk)
한참 왕성하게 활동할 나이인 30대에 갑자기 시력을 잃고도 꿋꿋하게 새로운 경력을 시작한 남성이 있습니다. 영국 목공 전문가 크리스 피셔(Chris Fisher)씨의 이야기입니다.

자동차 수리공으로 일하던 피셔 씨는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눈 앞이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시야가 점점 뿌옇게 흐려지자 병원을 찾은 그는 톡소플라스마 감염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증세는 급격히 악화됐고 첫 증상이 나타난 지 약 4주 만에 피셔 씨는 시력을 완전히 잃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자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사는 것 같았습니다.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것들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죠. 무엇보다 힘든 건 근심 걱정이었습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환청이 들리기도 하고 근육 경련이 오기도 했어요.”



사진=크리스 피셔 씨 인스타그램(@blindwoodturner)
가혹한 운명 앞에 주저앉아 있던 피셔 씨는 ‘아무리 그래도 인생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결심했습니다. 호러 영화 팬이었던 그는 목공을 배워 뱀파이어 잡는 말뚝을 만들어 보기로 마음먹었고, 한 번 시작하자 재미가 붙어 매일같이 매달렸습니다.

그렇게 4년이 지나자 어느 새 전문가라 불릴 만 한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그의 전문 분야는 목공선반(목재를 회전시키며 칼로 깎아 가공하는 기계) 작업입니다. 물레를 돌려 도자기를빚어 내듯 빠르게 회전하는 기계를 이용해 다양한 목공예품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목공을 통해 희망을 찾은 그는 ‘시각장애인 목수(The Blind Woodturner)’ 라는 타이틀을 자처하며 매일 바쁘게 생활 중입니다. 개인 웹사이트와 유튜브를 통해 작업 과정과 완성품을 공개하고 공방에서 목공 수업도 꾸준히 진행 중입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강연자로도 활동하는 피셔 씨. 매일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그의 든든한 지원군은 아내 니콜라(Nicola)씨입니다. 사업 컨설턴트인 니콜라 씨는 남편의 매니저 역할도 자처하고 있습니다.

피셔 씨는 “시력을 잃기 전보다 오히려 더 활기차게 살고 있습니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해도 그러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 

카톡에서 소다 채널 추가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