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민 “삶의 우선순위?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

polaris27@donga.com2018-09-11 10:4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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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데뷔’ 홍지민 “‘도전’ 자체가 성공이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최근 첫 미니앨범 ‘싱 유어 송 (SING YOUR SONG)’을 발표한 뮤지컬 배우 홍지민의 도전은 이 칭찬으로 시작됐다. 2009년 ‘드림걸즈’의 ‘에피 화이트’로 캐스팅됐던 당시 뮤지컬 배우로서 한계를 느꼈고 끝없는 불안함을 느꼈다. 그 때 작곡가 헨리 크리거(Henry Krieger)는 홍지민에게 “너처럼 에피의 노래를 사랑스럽게 불러준 디바는 없었다”라고 말했고 그 말은 홍지민에게 용기가 돼 또 다른 시작을 할 수 있게 했다.

홍지민의 첫 미니앨범은 이미 9년 전 부터 준비했던, 가슴 서린 성장담이기도 하다. 앨범을 준비하면서 폐암으로 투병 중이었던 둘째 언니를 떠나보내야 했고 가정이 우선순위에 밀리면서 남편과 이혼 위기도 있었다. 마음이 회복되고 앨범을 준비하는 동안 두 딸 ‘도로시’와 ‘도로라’를 출산하기도 했다. 때문에 앨범 발매는 저절로 뒤로 미뤄졌다. 이후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를 하면서 이제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앨범 작업을 재개했고 해마다 ‘앨범 발매’라고 쓰던 자신의 꿈의 노트에 드디어 동그라미를 그릴 수 있게 됐다.

뮤지컬과 방송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길 바랐다. 홍지민은 “어릴 적 꿈은 가수고 나는 내가 가수가 될 줄 알았는데 학창시절에 연극 ‘유리동물원’을 접하고 연기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라며 “‘노래’와 ‘연기’를 둘 다 하고 싶다는 고민이 있었을 때 교수님께서 뮤지컬을 추천해주셨고 덕분에 뮤지컬 배우가 될 수 있었다. 중간에 앨범을 내자고 제안도 들어왔었는데 끝내 이뤄지진 않았다. 늘 가수의 꿈이 한켠에 머물러 있었는데 ‘드림걸즈’를 하며 배역의 목소리가 아닌 내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나는 썩 괜찮은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드림걸즈’로 그 생각이 와르르 무너졌었어요. 아무리 해도 내 노래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공포였어요. 불면증까지 시달렸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헨리 크리거가 리허설 때 오더니 ‘너처럼 잘하는 배우가 없었어!’라고 하며 스카프 선물까지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는 6개월을 아무런 걱정 없이 무대에 올랐죠.”

‘드림걸즈’로 배우 생활 15년 만에 여우주연상을 받게 된 홍지민은 트로피를 품에 안고 헨리 크리거를 만나러 미국으로 떠났다. 자신의 수상소식을 누구보다 기뻐해준 헨리 크리거에게 홍지민은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며 그 때의 감정을 노래로 담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고. 그렇게 1년 6개월이 지나고 헨리 크리거는 ‘싱 유어 송’을 홍지민에게 보냈다. 곡을 받고 앨범 작업을 시작했지만 그 사이 희로애락을 겪어야 했던 홍지민은 또 다른 자식 같은 앨범을 만날 때까지는 9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는 “오랜 시간에 걸려 앨범이 나왔으니 헨리 크리거에게 소식을 알렸다. 앨범이 나오기까지 이야기를 편지로 써서 보냈더니 그가 ‘너무 훌륭하다’라고 하더라”며 “또 내가 다이어트를 하면서 ‘핫’한 사람이 됐다고 말했다. 덕분에 앨범이 잘 될 수도 있다고 하며 ‘전과 후’ 사진을 보냈다. 헨리 크리거가 그 사진을 보고 놀라며 ‘정말 아름답다’고도 했다”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의 앨범에는 ‘Sing Your Song’을 포함해 5곡이 포함됐다. 수록곡 ‘나를 위해’는 홍지민이 작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홍지민은 “첫째 아이를 낳고 산후우울증이 왔었다. 보이는 내 이미지는 밝고 걱정 없는 사람이지 않나. 하지만 소심하고 섬세한 성격이기도 했고 아이를 낳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도 생겼다. 그 때 심경을 담아 용기를 내서 가사를 썼다”라고 말했다.

이어 “가사를 쓰는 건 정말 힘들었다. 분명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었는데 앨범 하나를 만드는 게 녹록치 않더라. “무에서 유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됐다. 이 경험으로 가수 분들이나 글 쓰는 분들 등 뭔가를 새롭게 만드는 사람들을 존경하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번 작업을 하면서 알지 못했던 자신의 목소리의 나쁜 습관들을 발견하게 됐다고도 말했다.

“‘도레미파솔라시도’부터 다시 배웠어요. 박자도 다시 배웠고요. 그만큼 무대에서 부르는 노래와 녹음할 때 노래는 또 다르더라고요. 이렇게 해도 아니라고 하고 저렇게 해도 아니라고 하니 중간에 때려치우고 싶었어요. (웃음) 사실 노래하는 것이 제 일이기 때문에 쉬울 줄 알았는데 완전히 다른 목소리로 불러야 해서 힘이 들었죠. 앨범을 준비하며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고 신인의 마음으로 도전했어요.” 

그가 끝까지 도전을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과 지인들의 적극적인 응원 덕분이다. 특히 남편 도성수 씨는 그의 재능을 적극 살려 아내의 앨범 재킷을 디자인했다. 홍지민은 “신랑이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줬다. ‘슈퍼스타 홍’이라 불러주는 남편이 내가 일하는 것에 대해 지지를 보내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홍지민의 선택을 말리는 이들도 있었다. “왜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를 쏟나”며 나무라는 사람도 있어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는 “사람들이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결과물이 잘 안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도 신경을 쓴다. 하지만 나는 도전 자체가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분들이 작고 큰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시도하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홍지민의 ‘자아실현 프로젝트’는 여기가 끝이 아니다. 이번 앨범은 국내에서 뿐 아니라 해외에도 유통을 한다. 또 정기적으로 음원을 내진 못하겠지만 틈틈이 작업해 가수로서 한 걸음씩 나아가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 10년 후에는 앨범 수록곡을 모아 개인 콘서트를 열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바라는 점이 있다면 한 곡 정도는 인기곡이 돼서 내가 마이크를 넘기며 관객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제 앨범을 함께 해 준 최재광 선생님께서 ‘네가 여배우들의 롤모델이 됐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여배우들이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는데 제가 뮤지컬 배우로서 다양한 도전을 하는 것 자체로 많은 후배들에게 자극이 됐으면 좋겠다고요. 제 모습을 보면서 ‘저 나이에도 저런 도전도 할 수 있구나’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하시며 더 열심히 연습하고 정신 차리라고 하셨어요.(웃음) 듣다 보니 그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잘하려고요, 더 열심히 하고요.” 

1996년 서울예술단에 들어가 배우 생활을 시작한 홍지민은 어느덧 23년차가 됐다. 서울예술단 ‘애랑과 배비장’(1996)에서 물동이 드는 여인 역부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특별공연이었던 ‘넌센스’에서 허버트 원장 수녀 역을 맡았다. 홍지민은 “당시만 해도 나는 서울예술단이 뽑는 단원 기준에 맞지 않았던 사람이었다”라고 말했다.

“서울예술단 단원을 보면 보통 클래식 음악, 무용 전공자가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뽑혔던 시기가 과도기였던 것 같아요. 성악 전공이 아닌 제가 뽑힌 게 이례적이라고 하더라고요. 발성도 완전 다르기도 했고 외형적으로도 서울예술단 단원들과는 다른 모습을 갖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넌센스’ 공연 때 ‘허버트 수녀’역을 맡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란 생각을 해요.”

앞서 말했듯, 홍지민의 어릴 적 꿈은 가수였다. 그랬던 그가 연기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교회를 같이 다녔던 오빠와 연극 ‘유리동물원’을 보러 간적이 있었다. 그 작품 때문에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서울예술대학 연극과에 들어갔다. 이후 한창 진로를 고민하고 있을 때 교수님께서 뮤지컬을 해보라고 추천을 해주셨다”라고 말했다.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일본 극단 사계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보고 나서예요. 그런 공연은 처음 봐서 큰 충격을 받았어요. 일주일동안 그 공연만 생각이 났죠. 이후에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에 교수님께서 서울예술단을 들어가면서 뮤지컬 배우로 살아가게 됐어요.”

극단을 나온 후 홍지민은 뮤지컬 ‘메노포즈’, ‘톡식히어로’, ‘브로드웨이 42번가’, ‘캣츠’, ‘맘마미아’, 드라마 ‘조선에서 왔소이다’, ‘온에어’, ‘태희혜교지현이’, ‘광고천재 이태백’, ‘미스코리아’, ‘무림학교’ 등 활발한 연기 활동을 펼쳤다. 콘서트나 토크쇼 등에서도 입담을 펼치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내기도 했다.

연기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물었다. 어떤 작품이든 다 어렵지만 뮤지컬 ‘스위니 토드’(2007)만큼 어려웠던 적이 없었다고 한 홍지민은 “연습도 어려웠지만 내가 유명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이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스티븐 손드하임 작품이 정말 어렵잖아요. ‘스위니 토드’는 리듬을 익히는 것도 참 어려웠어요. 러빗 부인은 대사도 많은데다 불협화음인 듯 아닌 듯 노래를 불러야 했어요. 정말 모든 작품을 통틀어 가장 열심히 하고 힘들게 했던 작품이 ‘스위니 토드’였어요.(웃음) 그리고 그 때 제가 인지도를 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만 해도 저희 작품이 대중적인 작품은 아니어서 제가 뭐라도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제가 지금처럼 알려진 배우는 아니어서 큰 효과는 없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죠. 그 이후에 방송을 출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홍지민은 ‘워킹맘’이기도 하다. 두 딸을 키우고 있는 그는 예전에는 ‘일’이 우선순위였다면 지금은 ‘나’와 ‘가족’이 먼저라고 말했다. 그는 “둘째 언니가 세상을 떠나고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일도 중요하지만 내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라며 “나 자신을 사랑하고 가족을 돌보는 것에 신경을 쓰게 됐다”라고 말했다.

“요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의미인 ‘Work-life balance’의 준말)’이라고 하잖아요. 예전에 어떤 책을 봤는데 배우가 건강하게 일을 하려면 일과 일상이 분리가 돼야 한다고 쓰여 있더라고요. 무릎을 탁 쳤죠. 예전 제 삶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이후에는 무대 위에서는 배우 홍지민으로 집에서는 아내이자 엄마 홍지민 그리고 사람 홍지민으로 살기 시작했어요. 현명하게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홍지민의 인생 목표를 물으니 ‘몸 건강, 마음 건강’이란다. 최근 약 30kg 감량으로 화제가 됐던 그는 “단순히 살을 빼려고 다이어트에 도전했다면 실패했을 것이다. 그런데 건강해지려고 하니 다이어트가 되더라”고 말했다.

“일을 더 많이 하고 돈을 더 많이 벌수도 있겠지만 건강한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요즘 많은 분들이 제게 다이어트를 많이 물어보세요. 방송에서도 말했지만 칼로리 계산해서 먹으면서 살을 뺐거든요. 그런데 제 목표는 건강해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먹고 싶은 게 있어도 ‘이건 건강에 안 좋아’라고 생각하면 안 먹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체중을 줄일 수 있게 된 것 같고요. 그리고 제가 많은 일을 겪으면서 마음이 건강한 것도 참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요즘 뉴스 보면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잖아요. 그래서 우리 모두가 건강해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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