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에 스무 가지 맛…한여름이 제철인 민어

주간동아2018-08-12 12: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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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 맛의 하이라이트인 부레, 숙성이 잘돼 핑크빛이 도는 민어회, 다디단 맛이 나는 민어전. (왼쪽부터) 
초복과 중복을 간신히 넘기며 더위를 견디고 또 견디다 보니 입추가 코앞이다. 그래서인지 뜨거운 햇볕에 땅은 절절 끓어도 파랗게 펼쳐진 하늘을 보면 더위를 향한 원망이 조금 누그러진다. 파란 하늘에 느릿느릿 흘러가는 흰 구름을 보고 있자면 결국 몸서리처지는 더위가 물러가고 여름은 가을에 자리를 내줄 테니 마음 졸일 일도 없지 싶다. 그러다 문득 여름을 가장 여름답게 해주는 민어 한 마리가 바다 같은 하늘에 둥둥 떠다닌다.

민어는 비늘과 쓸개를 빼고 다 먹을 수 있는 생선이다. 게다가 우리가 식당에서 맛보는 민어는 생후 3~4년 된 것으로 1m 내외 길이에 무게도 5~8kg에 달하니 먹을 것이 얼마나 많겠는가. 한 마리 잡으면 부위별로 다양하게 요리해 7~10명은 배불리 먹을 수 있다. 민어가 특별한 이유는 무더운 여름에 유난히 더 맛있는 바다 생선인 데다 반드시 여럿이 모여야 그 맛을 골고루, 제대로 볼 수 있어서다.

민어는 잡자마자 죽기 때문에 바로 피를 빼고 얼음에 싱싱하게 보관해 유통한다. 민어 살코기의 제맛이 살아나기까지는 15시간가량 걸린다. 즉 활어보다 숙성회가 훨씬 맛이 좋고 대개 그렇게 손질해 식탁에 올린다. 잘 숙성된 민어 살코기는 연한 분홍빛이 감돈다. 맛있게 먹기 좋기로는 수놈을 더 쳐주는데 암놈은 아무래도 영양분이 제 살집보다 알로 몰리기 때문이다.

민어의 커다란 몸통에 붙은 살은 먼저 회를 뜬다. 회는 널찍하고 큼직하게 저며 내야 잘 숙성된 살코기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생선이 크니 등살, 뱃살, 꼬릿살, 뒷목살 등 부위별로 맛이 다르다. 특히 뱃살은 수놈에서만 나오는 부위로 기름진 풍미가 좋은데, 커다란 생선 특유의 웅숭깊은 맛이 난다. 살코기 몇 점은 잘게 썰어 무침회로 먹어도 맛있다. 유난히 두툼한 몸통 한두 토막은 남겨놨다 소금을 뿌려 석쇠에 굽거나, 간장 양념에 재워 불고기처럼 구워 먹기도 한다. 구이와 회를 뜨고도 남는 살코기는 포를 뜬 뒤 달걀물을 묻혀 지진다. 이때 껍질 붙은 살코기로 전을 부치면 씹는 맛과 고소함이 더해 별미다.

사실 힘들게 날 잡고, 사람 불러 민어 한 마리를 통째로 먹고자 하는 진짜 이유는 부속 삼총사 때문이다. 바로 껍질, 뼈다짐, 부레다. 껍질은 비늘을 긁어내고 따로 벗겨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뒤 차갑게 식혀 꼬들꼬들해지면 먹기 좋게 썬다. 뼈다짐은 아가미 쪽에 붙은 살과 뼈를 함께 곱게 다져 송송 썬 파, 마늘, 고추, 통깨를 약간 넣어 무쳐 낸다. 부레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민어가 천 냥이면 부레가 구백 냥’이라는 말이 있듯 부레는 민어 맛의 하이라이트다. 녹듯이 부드러운 첫맛 뒤에 쫄깃하게 씹히는 맛까지 다른 식재료와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풍미를 선사한다. 길이 30cm 이상의 큰 부레로는 순대를 만들기도 한다. 이들 민어의 부속은 대부분 참기름, 소금과 함께 먹는다. 부속 삼총사에 하나를 더한다면 바로 간이다. 민어 알은 숭어 알처럼 어란으로 만들기도 한다.

내장과 살코기, 먹을 수 있는 뼈까지 다 발라낸 민어로는 탕을 끓인다. 민어는 크기가 커서 사골처럼 우러나는 맛도 풍부하다. 콩나물, 미나리만 넣고 소금으로 간해 맑게 끓이기도 하고, 호박을 숭덩숭덩 썰어 넣은 뒤 된장과 고춧가루를 풀어 매운탕을 만들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배를 갈라 내장을 빼고 소금을 뿌려 바닷바람에 꾸덕꾸덕 말린다. 반건조 민어는 일 년 내내 입맛 돋우는 최고 반찬이다.

김민경의 미식세계|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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