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쉼터 갈등… ‘묘책’ 없나요

phoebe@donga.com2018-07-05 09: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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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맘 전모 씨가 2년 전부터 서울 종로구 동순라길 종묘 담벼락에 갖다 놓고 관리해온 길고양이 쉼터 박스에 지난해 말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가 있는 모습(왼쪽 사진). 그러나 두 달 전 쉼터 박스 일부가 훼손된 채 발견됐다. 전모 씨 제공
‘종묘 담벼락 아래 길고양이 쉼터는 누가 없앴을까.’

서울 종로구 종묘 주변에 길고양이를 위한 임시 쉼터를 만들어 놓은 직장인 전모 씨(29·여)는 최근 두 달 남짓 이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인근 원남동 사거리 부근 직장에서 일하는 전 씨는 길고양이를 돌보는 ‘캣맘’(영어로 고양이를 뜻하는 ‘캣’과 엄마인 ‘맘’의 합성어)이다.

전 씨는 2년 전 가로세로 30∼40cm 검은색 상자 모양 플라스틱 쉼터 약 10개를 사서 종묘 담벼락 아래 늘어놓았다. 가격은 개당 1만5000원 정도지만 계절마다 갈아줘야 해 비용이 만만치 않다. 사료도 통에 듬뿍 담아줬다. 찾아오는 고양이는 자주 바뀌지만 쉼터 관리를 위해 가보면 항상 서너 마리는 쉼터에 있었다.

그러던 5월 10일경 쉼터 박스 3개가 사라졌다. 먹이통은 전부 부서져 나뒹굴고 있었다. 전 씨는 인근 상점 폐쇄회로(CC)TV까지 보며 누가 그랬는지 추적했다. 영상에는 공무원으로 보이는 남성이 쉼터 박스 주변에 접근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종로구에 확인을 요청했다. 그러나 구와 종묘관리사무소 측은 “쓰레기만 수거했을 뿐이다. 쉼터를 건드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쉼터가 파손된 경위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전 씨는 “작은 생명이지만 사람과 공존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랄 뿐이다”라고 힘없이 말했다.



자료사진 출처 | ⓒGettyImagesBank
서울시에 따르면 시내 길고양이는 지난해 기준 약 13만9000마리로 파악됐다. 20만 마리에 이르던 2015년보다는 줄었다. 시는 2008년 시작한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의 효과로 보고 있다. 개체 수는 줄었다고는 하지만 길고양이를 둘러싼 주민들 간의 크고 작은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동물권(權)’에 더 민감해진 젊은층이 많아지면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강동구에서는 지난해인 2016년 2월 구청 별관 옥상에 만든 ‘고양이 어울쉼터’를 두고 최근 구 공무원노동조합과 동물보호단체가 갈등을 빚었다. 노조 측은 “고양이로 인한 악취와 털 날림 등으로 휴식을 취하기 어렵다”며 올 4월경부터 구에 시설물 이전을 요구했다. 구는 쉼터를 인근 카페형 유기견 분양기관이 있는 건물로 옮기기로 했다.

그러나 쉼터를 운영하는 고양이 보호 시민단체 ‘미우캣’은 옮기게 되면 안정적으로 쉼터를 운영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지난달 19일에는 미우캣 회원 약 20명이 구청 앞에서 이전 반대 집회를 열었다.

같은 공동주택에 사는 사람들끼리도 의견이 달랐다. 길고양이가 객사(客死)하지 않도록 밥이라도 주자는 의견과 사료를 주니까 고양이가 몰려든다는 주장이 맞섰다. 강북구 미아동의 한 빌라에 사는 정모 씨(35·여)는 최근 생면부지인 동네 남성과 말다툼을 벌였다. 정 씨가 평소 사료를 주던 길고양이를 향해 이 남성이 “재수 없게 자꾸 찾아온다”며 돌멩이를 던지는 모습에 욱한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중성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치면서 시민 인식을 개선하는 정책도 함께 벌이고 있다”며 “캣맘과 주민 사이의 갈등은 서로 잘 협의해 풀어 나가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기범 kaki@donga.com·박광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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