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영정사진을 남기지 못한 사진기자

동아일보
동아일보2018-06-08 0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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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야 아버지. 아 아버지 사진 맞아요. 이게 어렸을 때 제 사진이고, 세상에…. (흐느끼며) 북에서 넘어올 때 아버지 사진 한 장 못 챙기고 내려왔는데, 아버지 사진을 이제야 볼 수가 있네요.”

지난달 말 취재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남측 혈육 상봉 현장. 태 공사는 혈육이 건네준 앨범을 보다가 아버지 사진을 발견하고 눈물을 흘렸다. 취재가 끝나고 현장을 나오며 태 전 공사는 기자에게 아버지 사진을 카메라고 찍어 인화해 줄 것을 부탁했다. 빛바랜 사진 한 장이 그에게는 값을 따질 수 없는 보물이었다.



태 전 공사를 보면서 갑자기 내 생각이 들었다. ‘난 보물이 하나 없구나.’

사진 기자로 15년, 대학 전공 기간 4년을 더하면 19년 동안 카메라를 잡았다. 그동안 찍은 유명 연예인부터 정치인까지 수만 장의 취재원 사진이 컴퓨터 외장 하드에 빼곡하다. 크고 작은 사건에서 ‘물을 먹고(낙종)’ 아쉬워한 적은 많지만 크게 후회 한 적은 없다. 그런데 몇 년 전 입원하고 한 달 만에 곁을 떠난 어머니 영정사진이 내게 없다. 사진 기자 아들이 어머니 웃음 한 장 남기지 못하고 다른 이들의 사진만 보물인양 가지고 있다.
 

어머니의 젊은 간호사 시절, 아버지와 웃고 있는 신혼 때, 운동회 때 형을 업고 뛰는 모습, 분식집 할 때 앞치마 두른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조합해 영정 사진을 대신했다. 늘 곁에 있을 거라고 방심했고, 어머니를 앵글에 담는 게 왠지 쑥스러워 촬영을 미루기를 반복한 게 지울 수 없는 후회가 됐다. 잘 못 찍은 사진은 취재원을 설득해 다시 찍으면 되는데 어머니는 이제 연락이 닿지 않는다. 대체한 영정 사진을 액자에 담는 데 액자 가게 주인이 이렇게 위로를 건넸다.


“남의 액자 만드는 저도 제 가족사진은 액자로 못 만들었어요. 결국 마누라가 가족사진 액자를 다른 데 가서 만들어왔더군요. 사는 게 다 그래요.”

이제는 사진 속으로 들어간 어머니, 하지만 지금도 철없는 아들과의 대화를 멈추질 않는다. 집을 나서고 들어설 때면 거실 TV 위에 계신 어머니와 늘 대면한다. 일이 안 풀려 술에 취해 들어올 때 사진 속 무표정한 표정은 어느새 미간을 찡그리며 꾸짖고 있다.

몇 해 전 사진학과 지망생들에게 강의한 적이 있다. 강의가 끝날 때 즈음이 돼 사진에 대해 조금 알게 된 수강생들은 뭔가를 찍고 싶은 욕망에 불탄다. 하지만 나는 카메라 사주고 수강료 내주며 자식의 미래를 응원하는 부모님 사진부터 찍어 보라고 했다. 어머니 사진에 관한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이다.

멋지고 아름다운 다큐멘터리는 천상에 있지 않다. 곁에 있다. 유명한 사진작가가 오더라도 가족을 가장 잘 찍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성능이 좋아서 장비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쑥스럽더라도 휴대전화나 카메라를 들고 부모님의 하루라도 젊고 웃는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보길 권한다. ‘시청 앞에서의 키스’(1950)라는 사진으로 알려진 프랑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로베르 두아노는 ‘사진이야말로 인생을 기록하는 가장 이상적인 매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셀카사진, 아이사진, 음식사진, 풍경사진, 친구사진이 넘치지만 부모님 사진은 보기 쉽지 않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처럼 ‘내리 사진’은 있어도 ‘치 사진’은 드물다. 배우 박보검도 초등학교 때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다가 제대로 된 가족사진을 남기지 못했다며 울먹였다고 하지 않나.


‘어른이 되어서 현실에 던져진/나는 철이 없는 아들이 되어서/이 곳 저 곳에서 깨지고 또 일어서다/외로운 어느 날 꺼내본 사진 속 아빠를 닮아있네.’ 김진호의 노래 ‘가족사진’ 생각나는 요즘이다.

※사진부 기자들이 취재현장에서 느낀 점과 카메라 앵글에 담지 못한 이야기를 담은 칼럼 연재를 시작합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