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고 난 뒤 왜 저만 설거지해야 하죠?” 며느리의 반란

주간동아2018-05-01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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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30, 40대 여성 사이에서 가장 핫한 대화 주제는 며느리의 ‘시집살이’다. 시집살이란 말 자체가 왠지 구시대적 느낌이 강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고부갈등은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숙제임이 분명하다.

최근 ‘며느리’를 소재로 삼은 다양한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면서 시집살이가 새로운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지난해부터 연재되고 있는 웹툰 ‘며느라기’를 비롯해 다큐멘터리 영화 ‘B급 며느리’, 책 ‘며느리 사표’ 등은 과거와는 사뭇 다른 며느리상을 보여준다. ‘여성의 삶을 옥죄는 며느리란 굴레를 벗어던지고 당당하게 자신의 인생을 찾아라’는 도발적 메시지들이다.

[ⓒ수신지]
4월 19일 첫 방송된 MBC 교양프로그램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서서히 타오르던 며느리들의 ‘봉기 의식’에 제대로 기름을 끼얹었다. ‘전지적 며느리 시점’을 표방하는 이 프로그램은 대한민국이라는 ‘이상한 나라’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대물림되고 있는 며느리들의 고군분투를 다룬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지만, 화면에 등장하는 세 며느리는 여전히 ‘시월드’로부터 유형, 무형의 억압을 받고 있다.

특히 출연자 중 개그맨 김재욱의 아내 박세미 씨에 대한 누리꾼의 반응이 뜨겁다. 박씨는 출산을 앞둔 만삭의 몸으로 시집에서 힘겨운 명절을 보내는가 하면, 시아버지로부터 억지스럽다 싶을 정도로 자연분만을 강요받는다. 이런 상황에 김재욱이 아내와 부모 사이에서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자 시청자는 시부모와 남편을 향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심지어 일부 누리꾼은 김재욱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찾아 악플을 쏟아냈고 결국 그는 SNS를 폐쇄했다.

더욱 씁쓸한 건 방송에 등장하는 갈등의 면면이 우리 현실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점이다. 정도 차이가 있을 뿐, 결혼한 여성이라면 누구나 시집과의 갈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는 여전히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1년에 두 번씩 빠지지 않고 미디어에 등장하는 ‘명절증후군’ 얘기며, 집집마다 방식이 다른 제사에 얽힌 갈등, 손자에 대한 시부모의 집착 등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유형의 고부갈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누가 피해자인지, 누가 가해자인지 구별하기 쉽지 않다. 갈등 당사자인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물론이고, 아내와 부모 사이에서 제대로 처신하지 못해 원망을 듣는 남편도 일면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수신지]
결혼 8년 차인 40대 최모 씨는 지난해부터 시집에 가지 않고 있다. 명절에도 남편과 아이만 시집으로 보낸다. 최씨가 시집에 발길을 끊은 결정적 이유는 시부모가 아들 부부의 경제적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씨는 신혼생활을 시부모 소유의 빌라에서 시작했다.

1층에는 시부모가, 2층에는 최씨 부부가 살았는데, 같은 건물에서 생활하다 보니 시부모의 간섭이 심했다. 특히 아이가 태어난 뒤 양육방식을 두고 심한 갈등을 겪었다. 결국 최씨는 분가를 결심했고, 남편과 상의 끝에 시부모에게 나가 살겠다고 말했는데 그때부터 전쟁이 시작됐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전세 주고 그 돈으로 독립 자금을 대주길 바라는 최씨 부부와 달리 시부모는 자신들과 함께 살거나 이혼해 며느리만 따로 나가 살라고 했다.

“며느리 한 명만 사라지면 모든 게 행복해지리라 믿는 분들 같아요. 분가 얘기와 함께 이혼 얘기가 나올 무렵 시부모님이 난데없이 남편에게 외제 스포츠카를 사주더라고요. 평소 남편이 갖고 싶어 했지만 제가 반대해 못 샀거든요. 마치 시부모님이 남편한테 ‘이혼하면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줄게’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사탕발림으로 어린아이를 꼬드기는 것도 아니고, 정말 어이없었죠.

아무리 갖고 싶던 차라도 그걸 냉큼 받아온 남편을 용서하기 힘들었어요. 정말 이혼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남편이 월세를 살더라도 나가자고 해 분가를 할 수 있었어요. 그래도 남편은 부모와 인연을 끊지는 못하겠다고 해서 원할 때면 언제나 아이와 함께 시집에 가요. 물론 저는 빼고요.”

아들에 대한 시부모의 기대와 집착이 강한 경우에도 고부갈등은 피할 수 없다. 지난해 결혼한 30대 초반의 강모 씨는 진지하게 이혼을 고민 중이다. 중매로 치과의사와 결혼한 강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걸려오는 시어머니의 전화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다.

“몸은 떨어져 있지만 시어머니의 모든 관심사는 오로지 남편에게 맞춰져 있어요. 아침 7시만 되면 시어머니의 전화가 잠을 깨워요. ‘어제 ??가 술을 먹고 왔으니 아침에 시원하게 콩나물 해장국을 끓여라’ 식으로 명령을 내리죠.

점심때면 또 전화해 남편이 밥은 잘 먹고 갔는지, 옷은 깨끗이 입혀서 보냈는지 일일이 확인하세요. 심지어 남편에게까지 전화해 제가 한 말과 남편이 한 말이 맞는지 맞춰본다니까요. 저녁쯤 되면 저녁 반찬으로 뭐가 좋다며 잔소리를 늘어놓으세요. 그러면서 ‘너는 운이 좋은 줄 알아라. 의사 남편 얻기가 어디 쉽냐. 남편 몸 상하지 않게 네가 잘 해라’ 등 기분 상하는 말을 마구 쏟아내죠.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암담해요. 어머니 전화에 꼬박꼬박 답하는 남편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어머니와 남편 사이에 제가 들어갈 틈이 전혀 없는 것 같아요.”

[ⓒ수신지]
실제로 고부갈등이 이혼으로 번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심지어 시어머니를 상대로 위자료를 청구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현행 민법 제840조 3호와 4호는 본인이 시부모나 장인, 장모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또는 본인의 직계존속(부모·자식)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를 재판상 이혼 사유로 정하고 있다.

신은숙 이혼전문 변호사는 “상담하다 보면 부부관계 파탄의 원인이 결국 시부모인 경우가 상당히 많다. 대부분 아들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며느리를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 갈등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이혼 사유를 시어머니에게도 묻고 싶다면 남편에게 위자료를 청구하면서 시어머니를 ‘피고 2번’으로 지정하면 된다. 이 경우 남편과 시어머니가 함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온다”고 말했다.

반면 고부갈등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시어머니도 많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희생을 시집살이로 매도한다는 불쾌함의 표출이다. 심지어 며느리 눈치 보느라 속앓이를 하는 시어머니도 적잖다. 60대 후반인 시어머니 박모 씨는 처음 며느리가 인사하러 온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들이 한 명이라 며느리에 대한 기대가 내심 컸어요. 그런데 처음 며느리를 만난 날 며느리가 대뜸 ‘어머니, 저희는 명절을 어떻게 지내요?’라고 묻더라고요. ‘남들 하는 것처럼 지낸다’고 했더니 결혼하면 설과 추석 중 한 번은 자기네들끼리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는 거예요. 그 자리에서 ‘안 된다’고 하면 개념 없는 시어머니가 될 것 같아서 ‘나중에 천천히 다시 얘기하자’고 했는데, 결혼하고 난 뒤 정말로 그 말을 행동으로 옮기더군요.”

“또 명절날 아들이 평소 좋아하는 음식을 좀 싸주려고 하면 손사래를 쳐서 이제는 아예 ‘가져갈래?’라고 물어보지도 않아요. 아들 집에 가는 건 엄두도 못 내죠. 주변 친구들 보면 아들네 아파트 비밀번호를 다 알고 있던데, 저는 그런 생각조차 못 했어요. 며느리가 불편하면 제 맘도 편치 않아서 최대한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해요. 덕분에 아직까지 며느리와 큰 갈등은 없지만 가끔은 ‘이렇게 며느리 눈치 보려고 아들 키웠나’ 싶어 우울할 때가 있어요. 이제 나도 나이가 드는지 깐깐한 며느리가 왠지 무섭네요.”

특히 60, 70대 여성은 과거 자신은 혹독한 시집살이를 감내하고도 정작 자신이 시어머니가 된 지금에는 며느리에게 큰소리는커녕 도리어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아직까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경우라면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서 이중고를 겪기도 한다. 현재 96세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70대 중반의 고모 씨는 “위아래로 치이니, 힘들어 못 살겠다”고 푸념한다.

말투만 바꿔도 고부갈등 사라진다
한편 고부갈등에서 뭐가 도대체 문제인지 판단하지 못하는 남편도 있다. 이 경우 아내 처지에서는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40대 주부 민모 씨의 얘기다.

“시어머니로부터 받은 부당함을 남편에게 얘기하면 그게 왜 문제냐는 듯이 바라볼 때가 있어요. 그럴 땐 나 혼자 망망대해에 떠 있는 것처럼 외롭고 서럽기까지 하죠.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 싶어서요. 흔히 남편은 ‘남의 편이어서 남편’이라고 하잖아요. 사실 남편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라지도 않아요. 단지 ‘당신이 기분 나빴겠네’ ‘어머니는 도대체 왜 그러시냐’ 이 정도만 호응해주면 충분한데, 모든 갈등의 원인이 마치 나에게 있는 것처럼 얘기하면 도대체 누굴 믿고 살아야 하나 싶어요.”

사진=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방송화면.
가족관계 전문가들 역시 고부갈등 해결의 열쇠를 쥔 사람은 바로 ‘남편’이라고 입을 모은다. 조창현 나우미가족문화연구소장은 “남편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고부갈등이 쉽게 잠잠해지기도, 반대로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악화되기도 한다. 아내가 남편로부터 듣고 싶은 것은 ‘우리 엄마는 그런 사람이니까 그냥 당신이 참아’가 아니라, 아내의 기분을 같이 공감하고 위로해주는 말들이다. 아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건 남편으로서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또한 결혼과 동시에 원 가족으로부터 분리독립을 이뤄야 한다. 부모 역시 자식이 새로운 가정의 가장으로서 설 수 있도록 간섭을 최소화하고 모든 결정권을 자식에게 넘기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는 결국 ‘우선순위’ 문제로 귀결된다. 결혼 전에는 부모와 관계가 1순위였다면, 결혼 후에는 부부가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조 소장은 “내 아내가 힘들어하는 점이 뭔지, 내 남편이 싫어하는 것이 뭔지를 생각하면 문제는 의외로 간단해진다. 둘 중 어느 누구도 가족 간 갈등에서 방관자가 돼서는 안 된다. 어떤 경우에라도 배우자를 최우선 순위에 놓고 방어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는 의사 표현 방법도 매우 중요하다. 모든 갈등의 시작은 말에서 비롯된다. 조 소장은 “보통 시어머니가 처음 며느리를 맞을 때 범하는 가장 큰 실수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다는 것이다.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며느리에게 ‘남편한테 이것 해줘라, 저것 해줘라’ 하고 명령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며느리가 알아서 결정할 문제들이다. 시어머니는 키우면서 알게 된 아들의 장점, 단점만 얘기해주면 된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 해도 상대방 기분을 상하게 하는 표현은 자신에게도 똑같이 돌아오게 돼 있다”고 말했다.

며느리의 발칙한 반란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B급 며느리’. [사진 제공·캡처]
며느리 역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고 정확하게 시부모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그때 어머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라고 쏘아붙일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셔서 많이 속상했어요.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시면 좋겠어요”라고 풀어서 설명하라는 것. 조 소장은 “가족 상담을 하다 보면 상견례에서 시어머니가 했던 말 한마디 때문에 평생 시어머니를 증오하며 살아온 며느리도 있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속에만 담아두지 말고 적극적으로 상대에게 표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고부갈등을 더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시각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부갈등의 근본 원인은 양성평등이 실현되지 못하는 현실에 있기 때문이다.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제작진은 방송에 앞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여러 문제 가운데 여성 차별은 그 뿌리가 너무 깊다. 며느리이기에 느끼는 부당함은 결국 여자이기 때문에 겪는 불평등과 맞물린다”고 말했다.

영화 ‘B급 며느리’ 속 주인공 김진영 씨도 시부모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이 집안에 어른이 넷인데, 밥 먹고 나면 왜 저만 설거지를 해야 하죠?”

명절날 며느리, 남편, 시어머니, 시아버지 할 것 없이 순번을 정해 설거지를 하는 아름다운 풍경이 이제는 현실에서도 일어나야 한다.

김유림 기자

<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3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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