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참지 말걸… 너무 후회된다” 들불처럼 확산되는 ‘미투’

주간동아2018-02-17 1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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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30일 한 장례식장에서 법무부 장관을 수행하고 온 법무부 간부 B검사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

한 여성의 발언이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었다. 1월 29일 서지현(45)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 검사는 자신의 성추행 경험을 검찰 내부 통신망에 올렸다. 그리고 당일 한 방송사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일련의 성추행 사건을 상세히 밝혔다. 그러면서 “사과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가해자에게 찍혀 인사상 불이익을 당해왔다”고도 주장했다.

2월 5일에는 임은정(44) 서울북부지방검찰청 부부장검사도 가세했다. 검찰 내부 통신망에 2003년 대구지방검찰청 경주지청에서 근무할 때 A부장검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것. 그는 ‘회식 후 집에 데려다준다며 따라온 A부장검사가 엘리베이터에서 배웅할 때 갑자기 입안으로 혀를 들이밀어 술이 확 깼다’고 밝혔다.

일주일 사이 여검사 2명이 간부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자 공분이 일었다. 2월 1일 대검찰청은 즉각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을 위한 조사단’(조사단)을 발족했다. 조사단은 검찰 내에서 벌어진 성추행 의혹 전반을 조사한 뒤 피해 회복과 재발 방지 방안을 내놓기로 했다. 그러나 국민의 시선은 냉랭하기만 하다.



용기 내 고백하는 여성들 
서 검사와 임 검사의 고백은 일반에도 확산되고 있다. 1월 말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피해자가 더 당당해지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라는 글귀와 함께 자신의 아이디와 날짜를 적어 올리는 여성이 늘었다. 글귀 말미에는 #MeToo(미투), #WithYou(위드유), #MeFirst(미퍼스트) 등의 해시태그가 달렸다. 해당 해시태그에는 ‘나도 당했다’ ‘당신과 함께한다’ ‘나부터 동참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자신의 성추행·성희롱 피해 경험을 올리는 이도 상당수다. ‘옆 반 여자애와 하는 꿈을 꿨다고 자랑하듯 말하던 같은 반 남자애의 얘기를 듣자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지하철 변태가 치마 속을 찍어 고소해도 네가 치마를 입어서 그렇다고 한다. 치마를 입고 다니면 남자들이 내 치마 속을 몰래 찍어도 되는 건가’ ‘중학생 때 내 가슴을 온갖 과일에 비유해 불러대던 남자애들, 대학생 때 모임 끝나고 택시로 데려다준다며 부축하는 척 가슴을 만지던 놈들, 아빠보다 나이 많으면서 오빠라고 불러보라던 상사, 모든 게 악몽이다’ 등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직장 내 성희롱·성추행은 생각보다 만연해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6년 12월 발간한 ‘성희롱 실태분석과 형사정책적 대응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인 1150명(여성 698명, 남성 452명)을 대상으로 성희롱 피해 경험을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45%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여성은 52%가 유경험자였다.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사례를 찾기 힘들 것이란 예상과 달리 직장생활을 해본 적이 있는 여성은 대부분 한 건 이상 성희롱 경험이 있었다. 특히 술자리에서 성희롱·성추행이 많았고, 피해를 당한 시기는 대부분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년병일 때였다. 또 대학 시절 동급생 혹은 선후배로부터, 취업 과정에서 면접관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다음은 자신의 경험담을 솔직하게 고백한 여성들의 이야기다.  

#미투운동에 불을 지핀 서지현 검사(왼쪽)와 임은정 검사. [뉴스1, 뉴시스] 
“태어나서 처음 겪은 ‘사정주(射精酒)’, 트라우마 생겨”
지방 검찰청 소속 30대 여검사

5년 전 회식자리를 떠올리면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 검사로 임용되고 몇 해 지나지 않은 때였다. 하루는 회식자리에서 부장검사로부터 ‘사정주(射精酒)’를 마시라는 강요를 받았다. ‘사정’의 뜻 그대로 ‘남성의 생식기에서 정액을 쏘듯’ 입으로 술을 뿌리든, 흘리든 조금 내뱉은 뒤 원샷을 하라는 거였다. 술자리에는 나 말고도 신임 여검사 4명이 더 있었다. 그날 회식자리에 있던 여검사 모두가 ‘사정주’를 마셨다. 그때 느꼈던 모멸감을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나고 울분이 차오른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분명 성희롱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처지에 이를 문제 삼겠다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문제제기 후 돌아올 불이익이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 일로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검사 생활 내내 ‘이런 조직에서 어떻게 정의를 운운할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한 번 안아드려’라던 여상사가 더 싫어”
공기업 입사 6년 차 30대 여성

입사한 지 1년 남짓 됐을 때다. 그때는 회식자리에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식사만 하다 집에 갔을 정도로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다. 하루는 부 회식에 이사님이 참석해 거국적으로 한잔하게 됐다. 평소에도 회식 분위기를 주도하길 좋아하고 아슬아슬한 멘트로 분위기를 싸하게 하던 부장이 그날은 유독 더 나서서 보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부장은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러브샷을 하게 했는데, 제일 어린 여직원이던 나를 이사님과 짝지어줬다. 그러면서 러브샷에 3단계가 있는 거 아느냐며 1단계는 팔로 팔을 감아서, 2단계는 팔로 목을 감아서, 3단계는 팔로 허리를 감아서 마시는 거라고 설명했다. 부장은 나에게 “이사님 한번 안아드려라”며 3단계를 주문했고, 내가 당황해하자 이사님이 그냥 러브샷을 해 넘어갔다. 그 부장은 여자였고, 여직원을 함부로 대하는 걸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반면 남자 직원들 사이에서는 평판이 나쁘지 않았고 조직 내에서도 신임을 받는 편이라 나서서 말 한마디 못 했다. 다른 여직원들도 위로하며 참으라고 할 뿐이어서 인사이동이 있기 전까지 매우 힘들었다.


“여직원을 노래방 도우미처럼 대하는 상사들”
중소기업 입사 4년 차 20대 여성

회식 후 노래방에 가는 게 일상 코스인 회사다. 남자와 여자의 비율이 5 대 1 정도 된다. 여직원은 결혼하면 퇴사하는 분위기라 20, 30대가 대부분이고 직장 상사는 전부 남자다. 그렇다 보니 노래방만 가면 노래를 시키는데, 꼭 “도우미들 노래해봐” “한번 좀 흔들어줄래” “신청곡 좀 불러줘” 등 참기 힘든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 한 번은 그 ‘도우미’라는 말이 너무 듣기 싫어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고 하자 상사가 “쟤 때문에 기분 망쳐서 집에 간다”며 나가는 시늉을 했다. 부하직원들이 상사의 팔을 잡아 진정시키면서 “어서 노래 불러”라고 해 결국 분위기를 바꾸려고 노래를 불렀다. 다른 여직원들은 “그냥 좋게 좋게 넘어가”라며 나를 예민한 사람 취급을 해 더 힘들었다.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에게 들으니, 거기는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때 피해자가 상부에 보고해 가해자가 좌천됐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능력이 모자라 이런 회사를 다니는 내가 잘못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났다.



검찰 내 성추행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전국 동시 기자회견이 2월 1일 오전 대구지방검찰청 앞에서 열렸다. [뉴스1] 
“상사의 나쁜 손버릇에 밤새 두려움에 떨어”
여행사 입사 15년 차 40대 여성

10년 전 해외에서 한 여행사 대표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당시 나는 해당 여행사 신입 직원이었는데, 해외 리조트 시찰을 위해 대표를 포함해 몇몇 상사와 함께 출장길에 올랐다. 사건은 저녁식사 자리에서 벌어졌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대표가 어깨와 허리, 엉덩이 등을 만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일부 직원이 자리를 비운 사이 귀에 대고 “오늘 밤에 (호텔) 방으로 갈게”라고 속삭였다. 소스라치게 놀라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긴 했지만 밤새 대표가 정말 방으로 찾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당시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상사들은 ‘저 양반 또 저러네’ 하는 눈빛만 보낼 뿐 아무도 대표를 제지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대표는 이미 업계에서 손버릇이 나쁘기로 유명했다. 그 길로 여행사를 그만뒀는데 그때 제대로 문제제기를 못한 게 지금도 천추의 한으로 남는다.


“웃으며 성희롱 발언하던 면접관 얼굴 아직도 생각나”
금융권 입사 10년 차 30대 여성

10여 년 전 방송사 취업을 준비하며 직종을 가리지 않고 면접을 보러 다닐 때였다. 지방 한 방송사에서 프로그램 진행자를 모집하는 공고가 떠 지원했다. 운 좋게 면접을 볼 수 있었는데, 끝날 때쯤 간부급으로 보이는 사람이 “여름에는 좀 시원하게 입고 방송할 수 있나. 탱크톱 같은 거?”라고 물었다. 주변에 있던 다른 면접관들은 킥킥대며 웃었다.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이었다. 그런 옷은 입을 수 없다고 대답하면 탈락할 게 뻔해 “가능합니다.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답하고 뛰쳐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렇게까지 해서 취업해야 하나’ 싶어 한숨이 나왔다. 지금은 다른 일을 하지만 가끔 그때 기억이 떠오르면 인상을 쓰게 된다.



묵인하고 외면했지만 변화하는 남성들
1월 3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 자리에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앞줄 가운데)를 비롯한 여성 의원들이 성폭력 폭로 운동 ‘미투’ 캠페인을 지지한다는 뜻으로 검은 옷을 입고 참석했다(왼쪽). 지난해 12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올해의 인물’로 성추행 또는 성폭행 피해를 폭로한 ‘미투운동’ 참여자들을 선정했다. [뉴시스]  
1월 3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 자리에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앞줄 가운데)를 비롯한 여성 의원들이 성폭력 폭로 운동 ‘미투’ 캠페인을 지지한다는 뜻으로 검은 옷을 입고 참석했다(왼쪽). 지난해 12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올해의 인물’로 성추행 또는 성폭행 피해를 폭로한 ‘미투운동’ 참여자들을 선정했다. [뉴시스]

성희롱·성추행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이를 보는 남성들의 시각은 어떨까. 서지현 검사의 고백 후 SNS에서 가장 화제가 된 남성은 문유석(49) 서울동부지방법원 부장판사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서 검사 지지 의사를 밝히며 ‘눈앞에서 범죄가 벌어지는데 그깟 출세가 뭐라고 애써 모른 체한 자들도 공범이다. 단 한 명이라도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하며 제지한다면 이런 일은 없다. 나부터 그 한 사람이 되겠다. 앞으로 더 노골적으로 가혹하게 선동적으로 가해자들을 제지하고 비난하고 왕따 시키겠다’고 공표했다. 해당 글은 4000여 명이 공감을 표했고 700여 차례 공유됐다.

문 판사의 의견에 동의하는 남성이 많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는 게 남성들의 해명이다. 10년 차 공무원 이재혁(38) 씨는 “회식자리에서 직장 상사, 선배 혹은 후배가 여직원에게 선을 넘는 행동이나 말을 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그런데 사적으로 친한 사이가 아니면 회식자리 이후에도 ‘어제 그 행동은 좀 아닌 것 같다’는 애기를 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특히 상사에게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동기나 후배가 그렇게 해도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어 얘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용기 있는 행동은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씨는 “한 번은 친한 선배가 술자리에서 취하기만 하면 자꾸 여자 후배들의 허벅지를 만지는 게 보였다. 안 되겠다 싶어 날을 잡아 둘이 있는 자리에서 ‘그러지 않는 게 좋겠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선배는 ‘내가 그랬느냐’며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다음 술자리에서부터는 안 그러더라. 진짜 기억을 못 했던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스스로도 조심하게 됐다고. 그는 “평상시 출근해서도 남자건 여자건 선후배에게 옷차림을 칭찬한다던가, ‘오늘 예쁘네’ 혹은 ‘오늘따라 잘생겨 보인다’ 같은 얘기를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듣는 사람 처지에서 불쾌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성희롱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표현은 집에서 자기 사람한테만 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희롱·성추행이 발생하는 여러 원인 가운데 우선적으로 꼽히는 것이 남성우월주의 사회문화, 가부장적인 가족문화 등이다. 이는 개인이 마음먹고 하루에 고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차원의 노력뿐 아니라 집안에서 자녀교육을 통해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딸, 아들을 둔 20년 차 직장인 박준우(46) 씨는 “지금은 사회적 공분을 사지만 한 달만 지나면 묻힐 가능성이 높다. 변화를 위해서는 우리부터 자녀를 잘 이끌어야 한다. 딸에게 ‘만약 그런 일을 당하면 그 자리에서 싫다고 말해’라고 가르치고, 혼자 힘으로 맞설 수 없다면 주변과 가족, 기관에 도움을 청하라고 할 것이다. 아들에게는 여성의 의견을 존중하고 항상 선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걸 가르치고 싶다. 우리 아이들이 피해자도, 가해자도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서지현 검사의 고백을 시작으로 촉발한 미투운동을 보는 사회적 시선은 다양했다. 그러나 가해자의 행위가 ‘잘못된 일’이라는 데는 모두가 동의한다. 사회 각계 인사들도 한 목소리로 사회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변혜정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원장은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문제의 50%는 해결된다. 쌓였던 마음의 병이 치유되고 사회적으로도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경고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50%는 그동안 성희롱·성추행을 방관하고 묵인한 사람들도 ‘너와 함께한다’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또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등에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 피해자 편에 서서 신뢰를 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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