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총자살 시도 뒤 살아남은 여성 “나 같은 사람 도우며 살 것”

celsetta@donga.com2018-01-29 15:3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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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전 크리스텐 씨. 사진=크리스텐 씨 페이스북(@christen.mcginnes)
2010년 10월 어느 날 아침, 당시 41세였던 미국 여성 크리스텐 맥긴스(Christen McGinnes)씨는 방에 가만히 앉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던 그는 거실과 주방을 깨끗하게 정리하기로 마음먹고 집안을 말끔히 정돈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텐 씨가 집을 청소한 이유는 손님맞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대인관계도 좋았고 번듯한 직장을 다녔으며 마음이 잘 통하는 남자친구도 있던 크리스텐 씨는 한 순간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다니던 직장에서 갑자기 정리해고됐고 남자친구와도 헤어진 뒤 그는 경제적 어려움과 우울증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랑하는 할머니도 돌아가셨고, 그 뒤를 따르듯 반려견까지 숨을 거뒀습니다.

안 좋은 일이 자꾸 겹치면서 크리스텐 씨는 정상적인 판단력을 잃어 갔습니다. 당장 룸메이트와 같이 쓰고 있는 집 월세를 내기조차 힘든 상황에 처하자 그는 ‘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여기게 됐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은 여전히 크리스텐 씨를 사랑하고 지지했지만 한 번 우울증에 발목을 잡히자 자기 자신이 짐덩이처럼 느껴졌습니다.

우울증으로 몇 달 동안 고통받던 크리스텐 씨는 집안을 싹 정리한 뒤 룸메이트가 없는 틈을 타 권총으로 목숨을 끊기로 마음 먹은 것입니다. 천성이 선한 그는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 와중에도 혹시나 자기 죽음이 남들에게 폐를 끼칠까 봐 전전긍긍했습니다.

방 침대 위에서 방아쇠를 당기면 피가 튀어 남들이 청소할 면적이 넓어질 거라 여긴 그는 크리스마스 트리 위에 걸려 있던 천사 모양 장식을 손에 꼭 쥐고 발코니로 나갔습니다. 호신용 권총 총구도 배나 가슴에 대지 않고 오른쪽 턱 밑에 가져다 댔습니다.

“장기기증 서약을 했기 때문에 가능하면 장기 손상을 최소한으로 하고 싶었어요.” 크리스텐 씨는 영국 미러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심경을 고백했습니다.



사진=크리스텐 씨 페이스북(@christen.mcginnes)
짧은 기도를 올린 뒤 방아쇠를 당겼지만 총알은 발사되지 않았습니다. 총알 다섯 개를 끼울 수 있는 총에 네 발만이 장전돼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하늘이 준 마지막 기회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행운이었지만 이미 마음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던 크리스텐 씨는 그마저도 ‘역시 나는 마지막까지 되는 일이 없구나’라고 받아들이고는 다시 한 번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탕 하고 큰 소리가 났고 곧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됐습니다. 그렇게 죽음을 받아들이려 하던 크리스텐 씨는 옆 방에 있던 룸메이트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평소였다면 집에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을 시간이었지만 그날 따라 룸메이트가 외출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벌어진 모든 일을 아주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룸메이트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고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렸어요. 그 뒤 정신을 잃었습니다.”

응급 치료를 받고 3주 만에 눈을 뜬 크리스텐 씨. 오른쪽 아래 턱뼈와 치아 세 개는 완전히 날아갔고 부비강과 오른쪽 안구도 손상됐습니다. 천만다행히도 총탄은 두개골을 뚫지 못했고 그 덕에 크리스텐 씨는 살아서 다시 한 번 눈을 뜰 수 있었습니다.



사진=크리스텐 씨 페이스북(@christen.mcginnes)
정신을 차린 크리스텐 씨는 놀라운 사실 두 가지를 알게 됐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지난 3주 동안 아주 많은 친구들이 방문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병원 규정상 한 번에 두 명씩만 환자를 면회할 수 있었기에 다들 한참 기다려야 했지만 친구들은 크리스텐 씨를 위해 기꺼이 기다렸습니다. 눈을 떴을 때 크리스텐 씨 주변에는 친구들이 놓고 간 편지와 선물들이 가득했습니다.

두 번째는 권총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 중 살아남은 이들은 고작 3%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방아쇠를 당겼을 때 총알이 발사되지 않은 것도 행운이었지만, 그 행운을 무시하고 다시 한 번 총을 쏘고도 살아남은 것은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크리스텐 씨는 비로소 ‘살아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40여 차례가 넘는 수술을 거치면서도 그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얼굴의 반쪽이 날아갔습니다. 말을 할 수도, 밥을 먹을 수도, 물을 마실 수도 없었어요. 배에 직접 튜브를 연결해 영양을 공급받았습니다. 외모도 건강도 다 잃었지만 그래도 살아있어서 다행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진=크리스텐 씨 페이스북(@christen.mcginnes)
사고 3년 뒤 어느 정도 회복된 크리스텐 씨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돕기 위해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자해한 뒤 병원에 실려온 소년을 만나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도 자기 속을 보여주지 않았던 소년은 크리스텐 씨에게만은 진심을 털어놓았습니다.

크리스텐 씨는 “저와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위로하고 그들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과정에서 오히려 제가 치료받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직 우울증의 그림자는 크리스텐 씨를 따라 다니고 있고 남은 평생 부상 후유증을 안고 살아야 하지만 그는 훨씬 더 강해졌습니다.

“매일 눈을 뜨면 이렇게 생각해요. ‘와, 오늘은 누굴 도와줘야 할까?’라고요. 2010년 그 날의 저를 만난다면 ‘제발 혼자 고민하지 말고 아버지께 전화드리렴’이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근심걱정과 우울증에 파묻히면 아무리 날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눈 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거든요. 하지만 도움의 손길은 언제나 사방에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살아볼 만 한 가치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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